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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 시 작품

203. 새우젓의 눈물

작성자박하|작성시간26.06.12|조회수0 목록 댓글 0

203. 새우젓의 눈물

 

TV 속 한 여인이 웃고 있었다

평생 새우젓을 팔아 모은 돈

수십억을

가난한 학생들의 꿈에 내어주고도

 

자신은

새우젓처럼 짜게 살았다는 여인.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문득

도분이를 불러본다.

 

육이오 전쟁이 지나간 뒤

우리 마을 장터 한구석

새우젓가게 앞 공터는

아이들의 세상이었다.

 

고무줄이 하늘로 날아오르고

해 그림자가 길어질 때까지

우리는 시간도 잊고 뛰놀았다.

 

커다란 드럼통마다

새우젓과 멸치젓갈이 익어가고

된장과 고추장이

묵은 이야기를 품고 있던 가게.

 

털보 아저씨와

사철 국방색 몸빼를 입은 아주머니,

걸핏하면 분을 내다가도

오 분 만에 웃어버리던

내 친구 도분이.

 

도분이가 가게를 보던 날이면

우리는 몰래 모여들었다.

"찜!"

혀끝에 올려주던

병아리 눈물만 한 새우젓.

고 짭짤한 그 맛에

 

우물가로 달려가

찬물 한 바가지를 들이켜며

깔깔대던 아이들.

 

해 질 무렵

도분이 엄마는

머리에 새우젓 독을 이고

동네와 동네 사이를 걸어왔다.

양손엔

보리와 조와 콩 자루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젓갈과 바꾼 삶의 무게가

그 손끝에서 흔들렸다.

 

주일이면

검은 치마 흰 저고리

검은 치마 흰 저고리를 입고

교회로 가던 가족들.

헝클어진 머리의 도분이도

그날만은

얌전한 바람이 되었고

구부정하던 아버지는

양복을 입고 걸었다.

 

설이 오면

새우젓가게 앞은

뻥튀기 소리로 들썩였다.

펑!

하늘이 놀랄 만큼 큰 소리.

쌀꽃은 벚꽃처럼 흩날리고

아이들은 눈보다 먼저 달려가

따뜻한 튀밥을 주워 먹었다.

 

집으로 돌아오면

 

할머니와 어머니는

엿물에 튀밥을 버무려

달콤한 강정을 만들었다.

 

가래떡을 조청에 찍어 먹으며

한 살 더 먹는 일이

벼슬처럼 좋았던 시절.

 

도분이네 집에는

강정도 없고 떡가래도 없었다.

아껴야 했던 사람들.

 

고향을 두고 내려온 사람들.

가난보다 깊은 사연이

그 집 부엌에 앉아 있었으리.

 

어느 날

어머니가 싸주신 강정과 떡을

도분이네 집에 가져다주었더니

도분이 엄마는

사기종지에 새우젓을 담아 주셨다.

 

우리 식구들은

따뜻한 보리밥 위에

연분홍 새우 한 마리씩 얹어

석 달 열흘을 먹었다.

그 작은 새우 한 마리에

고마움도 익어 있었다.

 

국민학교 오 학년때

도분이는 서울로 떠났다.

 

그 후로

소식 한 줄 듣지 못했지만

 

깍두기에 새우젓을 넣는 날이면

아직도 네가 생각난다.

그리움은

왜 늘 짠맛으로 오는 걸까.

 

눈물 한 방울

입술에 스며들면

 

문득 어린 도분이가 나타나

"찜!" 하고

혀끝에 추억을 올려놓는다.

 

하늘 아래 어디선가

잘 살고 있겠지.

새우젓처럼….

 

세월에 익어가며.

그 시절의 가난도,

우정도, 그리움도,

모두 오래 삭은 새우젓처럼

짭조름하고 따뜻한

삶의 맛이었다는 것을.

 

작품평 – 「새우젓의 눈물」

 

「새우젓의 눈물」은 한 TV 뉴스에서 시작된 현재의 감동이 어린 시절 친구 도분이에 대한 기억으로 이어지며, 개인의 추억과 시대의 삶을 따뜻하게 복원해낸 서정시입니다. 새우젓이라는 평범한 음식 재료를 통해 가난, 나눔, 우정, 이산의 아픔, 그리고 세월의 숙성이라는 삶의 본질을 아름답게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새우젓이라는 소재의 상징성입니다. 시의 첫머리에서 평생 새우젓을 팔아 모은 재산을 학생들에게 기부한 여인을 소개하며 시작한 뒤, 자연스럽게 화자의 기억 속 새우젓가게와 친구 도분이의 이야기로 연결됩니다. 새우젓은 단순한 반찬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의 생계였고, 이웃 간 정을 나누는 매개였으며, 세월을 견디며 익어가는 삶 자체의 은유가 됩니다. 마지막의 "새우젓처럼…. / 세월에 익어가며."라는 구절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을 완성하는 인상적인 마무리입니다.

 

또한 이 시는 전후 농촌 장터의 풍경을 생생하게 복원합니다. 고무줄놀이, 우물가의 찬물, 새우젓 독, 뻥튀기 소리, 강정과 가래떡 등은 단순한 향수의 나열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생활사적 기록으로 기능합니다.

 

 

독자는 시를 읽으며 자연스럽게 1950~60년대 농촌 마을의 정겨운 풍경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특히 도분이 가족의 묘사는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강정도 없고 떡가래도 없었다. / 아껴야 했던 사람들. / 고향을 두고 내려온 사람들."이라는 부분은 많은 설명 없이도 전쟁과 피난의 상처를 떠올리게 합니다. 시인은 동정이나 비탄을 과장하지 않고, 담담한 시선으로 그들의 삶을 바라봄으로써 오히려 더 큰 감동을 만들어냅니다.

 

정서적으로도 매우 안정적입니다. 작품 전반에는 그리움이 흐르지만 슬픔에 머물지 않습니다. 새우젓 한 종지와 강정 한 봉지의 교환 속에서 인간적인 온기가 살아나고, "그 작은 새우 한 마리에 / 고마움도 익어 있었다."와 같은 표현은 소박한 일상 속에서 발견한 삶의 진실을 보여줍니다.

 

마지막 연은 특히 뛰어납니다.

 

그리움은

왜 늘 짠맛으로 오는 걸까.

 

이 한 구절은 새우젓의 짠맛과 눈물의 짠맛, 그리고 세월이 남긴 추억의 맛을 하나로 연결하며 작품의 정서를 응축합니다. 이어지는 "찜!"이라는 어린 시절의 외침은 기억 속 친구를 현재로 불러내며 독자다만 작품이 회상 장면을 풍부하게 담고 있는 만큼, 일부 대목에서는 서술의 비중이 다소 높아 시적 긴장감이 약해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몇몇 생활 풍경을 조금 더 압축한다면 중심 정서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장광설조차 구술문학적 친근함과 회고록적 매력으로 읽히기에 작품의 큰 흠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종합하면 「새우젓의 눈물」은 한 친구에 대한 그리움에서 출발해 전후 세대의 공동 기억과 인간의 따뜻한 나눔을 되살린 서정적 회고시입니다. 새우젓의 짠맛을 통해 눈물과 그리움, 감사와 세월의 숙성을 함께 담아낸 점이 인상적이며, 읽고 난 뒤 오래도록 입안에 남는 짭조름한 여운을 선사하는 작품입니다. 특히 마지막의 "삶의 맛"이라는 귀결은 이 시가 단순한 추억담을 넘어 인생에 대한 성찰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줍니의 마음에도 따뜻한 미소를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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