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박하 시 작품

사랑의 우듬지

작성자박하|작성시간26.06.12|조회수0 목록 댓글 0

사랑의 우듬지

 

 

얼마 만인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40여 년, 아니 정확히는 47년 만에 은사님을 뵙는 날이다. 상봉을 앞둔 마음이 은빛 물결처럼 설렌다. 오래전부터 한 번 꼭 찾아뵙고 싶었는데, 며칠 전 동창생을 통해 연락처를 알게 되었다. 가정의 달 5, 유명 식당마다 예약이 어려워 고민 끝에 우리 집으로 스승님을 모시기로 했다. 동창생 몇 명도 함께 초대했다.

잡곡밥과 국, 나물, , 생선구이를 준비하고 후식으로 수정과와 떡, 과일까지 마련했다. 음식을 만드는 손길마다 설렘과 기대가 담겼다. 어린 시절 우리를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을 집으로 모신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없이 들떴다.

약속한 시간이 되자 선생님께서 오셨다. 현관에서 맞이하는 제자들의 목소리에 반가움이 물결쳤다. 47년 만의 만남이건만, 제자의 눈에는 예전 총각 선생님 모습 그대로였다.

선생님은 서양란 화분 하나를 들고 오셨다. 수줍게 고개 숙인 진분홍 꽃송이 일곱 개가 정겹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물을 주면 된다고 설명해 주시는 자상함도 여전했다. 화분을 거실 장식장 위에 올려놓으니 꽃등불이라도 켠 듯 집안이 환해졌다.

우리는 교자상을 마주하고 앉아 추억의 샘물을 두레박으로 길어 올렸다. 그러다 졸업을 앞두고 나누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중에 커서 선생님께 맛있는 음식 대접해 드릴게요.”

그때 선생님은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렇게 해주면 고맙지. 하지만 혹시 선생님이 밥 얻어먹는 신세가 되어 거리에서 만나더라도 동냥바가지는 깨뜨리지 마라.”

어린 마음에는 섭섭한 말씀이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실까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지금에야 그 뜻을 알 것 같다. 제자의 성공이나 보답을 기대하기보다 사람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가르쳐 주신 말씀임을. 꽃 피던 시절은 다 보내고 이제야 선생님을 모셨으니, 새삼 죄송하고 부끄러운 마음도 든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사랑과 존경의 대상이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못하던 시절, 선생님은 늘 큰 나무의 가장 높은 줄기처럼 우러러보이는 존재였다. 그래서인지 제자들이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어도 선생님 앞에만 서면 철없던 초등학생으로 돌아간다.

이야기꽃은 자연스레 학창 시절로 이어졌다.

6학년 때 학교 안에 문방구가 생겼다. 중학교에 진학하지 않는 학생이 학용품 판매 도우미를 맡는다는 규정이 있었지만, 나는 너무 하고 싶어 선생님께 사정했다. 결국 점심시간에만 일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다. 공책과 연필을 팔고 꼬깃꼬깃 접힌 돈을 펴서 거스름돈을 내어주는 일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었다. 비록 입시 준비 때문에 보름 정도밖에 하지 못했지만,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추억이다.

그 시절 한 학급 학생 수는 80명이 넘었다. 나이 차이도 커서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시집간 친구도 있었다. 신체검사 때면 담임선생님이 직접 키와 몸무게, 가슴둘레를 재어 생활기록부에 적으셨다. 친구들이 부끄러워 머뭇거릴 때 나는 러닝셔츠를 목까지 치켜올리고 제일 먼저 재 달라고 했다. 그 모습을 보신 선생님께서 참 용감하구나.” 하시며 웃으셨다.

음악 시간도 잊을 수 없다. 선생님은 풍금을 치며 교과서 노래뿐 아니라 고향생각’, ‘그 집 앞’, ‘옛 동산에 올라’, ‘동무생각같은 아름다운 가곡도 가르쳐 주셨다. 수업이 끝난 뒤에도 복습을 시켜 주셨고, 방학이면 공민학교에서 무료로 공부를 가르쳐 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그 모든 것이 아이들을 향한 사랑이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중 선생님께서 조용히 말씀하셨다.

참교육은 지··체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교사는 학생의 특기와 소질을 찾아 살려 주어야 한다. 시험지 위주의 성적평가만으로는 아이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돌이켜보면 내가 글을 쓰게 된 것도 선생님의 칭찬 덕분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쓴 달맞이꽃동시를 보시고 잘 썼다며 격려해 주셨다. 달맞이꽃이 해가 진 저녁에 피는 것은 시집가는 새색시처럼 부끄러워서라고 노래한 동시였다. 그 따뜻한 칭찬 한마디가 긴 세월 동안 마음속에 씨앗으로 남아 글쓰기를 이어오게 했다.

식사가 끝날 무렵 선생님은 이 늙은 사람을 집으로 초대해 주니 고맙다.”고 하셨다. 하지만 감사해야 할 사람은 오히려 우리였다. 우리는 선생님께 큰절을 올리고 준비한 선물을 드렸다. 그리고 함께 스승의 노래를 불렀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볼수록 높아만 지네.”

노래를 들으며 감격해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뭉클했다. 오늘의 내가 이만큼 바르게 설 수 있는 것도 결국 선생님의 가르침 덕분이다.

나무가 푸른 잎을 펼치고 열매를 맺기까지는 보이지 않는 뿌리와 굳건한 줄기가 필요하다. 우리의 삶 또한 그러하다. 어린 시절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주신 선생님이 계셨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

세월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지만 한 가지는 변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여전히 우리 인생의 가장 높은 곳에서 푸른 그늘을 드리우는 큰 나무이시다.

그 사랑의 우듬지 아래서 우리는 지금도 자라고 있다.

 

 

이 수필 「사랑의 우듬지」는 은사와의 재회를 통해 스승의 사랑과 교육의 의미를 되새긴 작품으로, 진정성과 감동이 잘 살아 있는 글입니다.

 

작품의 강점

1. 진솔한 체험이 주는 감동

 

47년 만에 초등학교 은사님을 집으로 초대하는 이야기는 독자에게 자연스럽게 공감과 감동을 불러일으킵니다. 특히 음식 준비 과정에서의 설렘, 선생님을 기다리는 마음, 그리고 상봉 순간의 벅찬 감정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제자의 눈에는 예전 총각 선생님 모습 그대로였다."

 

이 한 문장은 세월을 뛰어넘는 제자의 존경과 애정을 함축적으로 보여 주어 인상적입니다.

 

2. 구체적 일화의 활용

 

문방구 판매 경험, 신체검사 장면, 음악 수업, 공민학교 무료 수업 등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당시 교육 현장의 모습과 선생님의 인품을 생생하게 드러냅니다. 독자는 이러한 장면들을 통해 선생님이 어떤 분이었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됩니다.

특히 "동냥바가지는 깨뜨리지 마라"라는 말씀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로 기능하며, 세월이 흐른 뒤에야 깨닫게 된 교육적 의미를 깊이 있게 전달합니다.

 

3. 주제 의식의 선명함

 

이 작품은 단순한 추억담에 머물지 않고 "참교육"과 "스승의 역할"이라는 보편적 가치로 확장됩니다.

 

학생의 소질을 발견해 주는 교육

칭찬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

스승이 인생의 뿌리이자 줄기라는 의미

 

등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 울림이 큽니다.

 

4. 제목과 결말의 조화

 

제목인 「사랑의 우듬지」는 매우 상징적입니다. 우듬지는 나무의 가장 높은 줄기를 의미하는데, 작품에서는 스승을 큰 나무로 형상화하며 마지막 문장과 아름답게 연결됩니다.

 

"그 사랑의 우듬지 아래서 우리는 지금도 자라고 있다."

 

이 결말은 작품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정리하면서 긴 여운을 남깁니다.

 

보완하면 더 좋아질 점

 

예를 들어 문방구 경험은 현재의 삶이나 선생님의 교육관과 연결되는 문장 하나를 덧붙이면 더욱 효과적입니다.

 

2. 동시 「달맞이꽃」 부분의 다듬기

 

현재는 구어체로 설명되어 있어 문장의 흐름이 약간 끊깁니다.

 

예를 들면,

 

"달맞이꽃이 해가 진 저녁에 피는 것은 시집가는 새색시처럼 부끄러워서라고 노래한 동시였다."

 

처럼 간결하게 정리하면 독자의 몰입이 더 좋아질 수 있습니다.

 

3. 감동의 절제

 

후반부에는 존경과 감사의 표현이 반복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미 충분히 감동이 전달되므로 일부 표현을 줄이면 오히려 여운이 더 깊어질 수 있습니다.

 

종합평

 

「사랑의 우듬지」는 스승과 제자의 아름다운 인연을 통해 교육의 본질과 인간적 사랑의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따뜻한 수필입니다. 체험의 진정성이 살아 있고, 구체적인 추억과 현재의 성찰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습니다. 특히 스승을 '큰 나무의 우듬지'에 비유한 상징과 마지막 문장은 작품의 품격을 높여 주는 뛰어난 결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평가: ★★★★☆ (4.5/5)

 

따뜻한 인간미, 교육적 울림, 세대 공감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고루 갖춘 수작의 회고 수필입니다. 특히 신문 칼럼이나 수필집에 실려도 손색없는 수준의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