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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 시 작품

코스모스피면 한 조각 그리움

작성자박하|작성시간26.06.13|조회수2 목록 댓글 0

코스모스 피면 흰 구름의 그리움 시

 

코스모스 피어 있던 동촌역에서, 사라지지 않는 이름 하나

 

기억은 늘 계절을 타고 돌아온다

바람의 결을 따라

오래된 사진처럼 바랜 이름 하나

불현듯 피어난다

 

수첩 귀퉁이에 눌러쓴 듯한 이름

이명환

 

그 이름을 부르는 순간

먼지처럼 가라앉았던 시간들이

한꺼번에 흔들려 일어난다

 

그는 지금 어디쯤

어떤 얼굴로 살아가고 있을까

왜 이제 와서

이런 물음이 파도처럼 밀려오는지

 

반세기 전의 장면 하나가

느리게 되감기는 필름처럼

마음속 어둠을 밝힌다

 

큰언니는

외출할 때마다 나를 데리고 다녔다

 

1963년 겨울

아양교 입구

 

그는 형수가 적어 준 쪽지를 내밀며

다음날 칠성시장에 함께 가자 했다

 

김장 재료들

고춧가루, 새우젓,

 

그런 것들이 빼곡한 종이 한 장

 

그의 오버포켓에서

군밤이 나와 내 손에 놓였다

 

따뜻했다

그의 웃음은

흰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여름밤이면

강둑 위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

 

나는 멀찍이 떨어져

가장 빛나는 별 하나를

내 것이라 이름 붙이며 바라보았다

 

집에 늦게 들어가도

언니와 함께라는 이유로

아버지의 꾸중은 멀어졌다

 

언니는

나의 보호막이었다

 

작은 세계였다

 

다락에는

보물상자가 있었다

 

경북여고 졸업장과

축복의 문장들

 

등대

오아시스

촛불

 

그리고

몰래 읽던 연애편지들

 

30촉 전구 아래

귓불까지 붉어지던 문장들

 

샤리, 간밤에 함박눈이 내려

온 세상이 하얗습니다

 

사랑은

그때

종이 위에서만 피어났다

 

어느 날 나는

남동생의 손을 잡고

K2 공군부대 근처로 갔다

 

그의 집

라디오에서는 노래가 흘렀다

안다성의 목소리처럼

 

나는 말했다

 

아버지가 그분을 보고 싶어 하신다

 

거짓인지 장난인지 모를 말은

어느새 현실이 되었다

 

강둑을 걷던 그와

우리 집 대문 앞의 침묵

 

아버지 앞에 앉은 그는

심문받는 사람처럼 정중했다

 

나는 문틈 사이로

숨을 죽였다

 

그날 이후

언니의 자유는 닫혔다

 

외출금지

직장 사직

 

창살 없는 방

말라가는 시간

 

강둑의 사랑은

질서 앞에서

조용히 꺾였다

 

어느 날

아버지가 비운 틈

 

언니는 그를 만나러 나갔다

 

그러나 결국

발각되었다

 

마당에 장작이 흩어지고

공기는 날카로워졌다

 

아버지는 단호했다

 

사랑보다 질서

감정보다 현실

 

그리고

언니는

그 길을 따랐다

 

그리고

그 장면

 

코스모스 피어 있던 동촌역

 

중앙선 원주행 열차

 

흰 바지, 흰 점퍼

 

난간에 기대 선 그의 얼굴

 

조용한 눈빛

 

기차가 움직이고

기적이 울리고

 

그는 손을 흔들었다

 

플랫폼 위의 언니는

끝내 고개를 들지 못했다

 

꽃잎 사이로

그의 뒷모습은 멀어졌다

 

나는 꽃밭 속에 숨었다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살아버린 듯한

이상한 착각 속에서

 

조용히 울었다

 

시간은 흘렀고

언니는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

 

안정

조건

미래

 

그 모든 단어가

사랑을 대신했다

 

지금의 언니는

평온하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그 가을을 지난다

 

흔들리던 코스모스

멀어지는 기적 소리

돌아설 수밖에 없던 뒷모습

 

세월은 많은 것을 지운다

 

그러나 어떤 장면은

지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또렷해진다

 

코스모스가 피어날 때마다

나는 다시 그 역에 선다

 

이미 오래전 사라진 이름을

조용히 불러본다

 

이명환

 

바람이 그 이름을 스치고

아주 잠깐 흔들릴 때

 

나는 문득 안다

 

돌아오지 못한 것들이

오히려 오래 남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 끝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채로

코스모스 사이 어딘가에서

조용히 흔들리고 있다

 

 

 

 

코스모스 피면 흰 구름의 그리움

 

기억은 늘 계절을 타고 돌아온다

바람의 결을 따라 피어난다

 

수첩 귀퉁이에 눌러쓴 듯한 이름

 

그 이름을 부르는 순간

먼지처럼 가라앉았던 시간들이

한꺼번에 흔들려 일어난다

 

그는 지금 어디쯤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왜 이제 와서 그 이름이 파도처럼 밀려오는지

 

반세기도 훨씬 전의 일이

추억의 영상으로 마음속 어둠을 밝힌다

 

엄격한 아버지의 시선을 피하려고

큰언니는 외출할 때마다 여고생 나를 데리고 다녔다

 

1963년 겨울, 아양교 입구

그는 형수가 적어 준 쪽지를 언니에게 내밀며

칠성시장에 함께 가자고

김장 재료 고춧가루, 새우젓, 빼곡한 종이 한 장

 

그의 오버포켓에서 군밤이 내 손에 놓였다

따뜻했다. 가지런한 흰 치아를 보이던 웃음

 

여름밤이면 강둑 위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

나는 멀찍이 떨어져 밤하늘에 가장 빛나는 별 하나

내 별 이름 붙이며 바라보았다

 

집에 늦게 들어가도 언니와 함께라서

아버지는 아무 말 없으셨다

 

언니는 나의 보호막이며 작은 세계였다

 

다락에는 언니의 보물상자가 있었다

경북여고 졸업장과 졸업식에서 받은

축복 사인이 그려진 문장들

등대 오아시스 촛불

몰래 읽던 언니의 연애편지

30촉 전구 아래 귓불이 수줍어졌지

샤리, 간밤에 함박눈이 내려

온 세상이 하얗습니다

 

사랑은 그때 종이 위에서만 피어났다

 

어느 날 나는 남동생의 손을 잡고

K2 공군부대 근처로 갔다

그의 집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노래

사랑이 메아리칠 때안다성의 목소리

문득 나는

아버지가 그분을 보고 싶어 하신다

선한 거짓말이 어느새 현실이 되었다

 

강둑을 걷던 그와 우리 집 대문 앞의 침묵

아버지 앞에서 심문받는 사람처럼 정중했던 그

나는 문틈 사이로 숨을 죽였다

 

그날 이후 언니의 자유는 닫혔다

외출금지 직장 사직

창살 없는 방 말라가는 시간

 

어느 날 아버지가 잠시 비운 틈

언니는 그를 만나러 나갔다

결국 발각되어 마당에 장작이 흩어지고

공포 속 공기는 날카로워졌다

 

떠돌이에다가 임시 직장

대학도 중퇴 외동아들 서울 사람

아버지 마음에 하나도 들지 않았다

얌전히 있다가 좋은 혼처자리에

시집가라는 주장이셨다

강둑의 사랑은 아버지의 질서 앞에서

조용히 꺾였다

 

아버지는 단호했다

사랑보다 질서 감정보다 현실

언니는 맏딸로서 아버지의 순종을 따르며

그와 헤어지겠다고

 

코스모스 피어 있던 동촌역 중앙선 원주행 열차

흰 바지, 흰 점퍼 기차 난간에 기대 선 그의 얼굴

기차가 움직이고 기적이 울리며

그는 손을 흔들며 멀어져갔다

 

플랫폼에서 언니는 끝내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나는 코스모스 꽃밭에 숨어서 조용히 울었다

 

이듬해 언니는 중매로 만나 청년은

최고학부로 나와 두뇌가 명석하여

포항제철에 스카웃된 유망한 자

온 친척과 마을의 축하를 받는 결혼식장에서

아버지의 웃음꽃이 피어났다

3남매 두고 저택에서

행복꽃 피우며 살고 있다

부모님께 효도하며

철철이(계절마다) 드실 것, 용돈 챙겨드리는 언니

아버지는 우리 효녀 장녀라고 흡족한 미소

 

내가 왜 이럴까

코스모스꽃 계절이 돌아오면

그 사람이 흰구름의 그리움으로 내 맘에 흘러간다

 

 

 

 

 

이 작품은 한 사람의 개인적 기억을 중심으로 하되,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가족 질서와 개인의 사랑이 충돌하는 구조를 서정적으로 밀도 있게 풀어낸 서사시적 산문에 가깝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코스모스흰 구름이라는 이미지가 핵심 축으로 반복되면서, 지나간 사랑을 현실 밖의 시간(구름, 바람, 계절)으로 밀어 올리는 방식이 인상적입니다.

 

가장 큰 미덕은 기억의 재현 방식입니다. 이 작품은 사건을 순차적으로 설명하기보다, 현재의 그리움이 과거를 끌어당기면서 장면들이 파편적으로 열립니다. 1963년 아양교 입구, 칠성시장, 동촌역, 기차 난간 같은 구체적인 지명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기억의 좌표처럼 기능합니다. 덕분에 독자는 한 시대의 공기특히 1960~70년대 한국의 가족 질서와 통제적 부권를 자연스럽게 체감하게 됩니다.

 

또 하나 돋보이는 점은 인물 구도의 선명함입니다.

아버지는 질서와 현실의 상징으로, 언니는 순종 속에서 꺾인 개인의 사랑으로, 화자인 는 그 사이에서 목격자이자 죄책감과 기억을 동시에 지닌 존재로 놓입니다. 이 삼각 구조가 작품 전체의 긴장을 유지합니다. 특히 선한 거짓말이 어느새 현실이 되었다같은 문장은 화자의 윤리적 모호함을 압축적으로 드러냅니다.

 

언어적으로는 감각적 이미지가 강점입니다.

군밤의 따뜻함”, “가지런한 흰 치아”, “코스모스 꽃밭에 숨어서 우는 장면같은 구절들은 감정 설명 없이 감각으로 감정을 전달합니다. 또한 흰 바지, 흰 점퍼”, “흰 구름”, “흰 눈처럼 흰색이미지가 반복되며 순수함과 상실감을 동시에 쌓아갑니다.

 

다만 구조적 측면에서는 한 가지 특징이자 한계도 보입니다. 서사가 강하게 흐르면서도 문단 간 긴밀한 인과보다는 정서적 점프가 많아, 독자에 따라서는 후반부의 결혼 이후 언니의 삶서술이 다소 요약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앞부분의 장면 묘사가 매우 생생한 것에 비해, 결말부는 서정적 정리로 빠르게 닫히는 인상이 있습니다. 이 부분을 조금 더 장면화하면 작품의 여운이 더 깊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의 핵심 성취는 분명합니다.

개인의 첫사랑 기억을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가족 제도와 시대 윤리 속에서 꺾이고 재배열된 삶의 흔적으로 확장해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의 코스모스 꽃 계절이 돌아오면이라는 문장은 단순 아니라, 반복적으로 되돌아오는 시간의 구조 자체를 상징하게 됩니다.

정리하면 이 작품은
사랑의 기억이 아니라 사랑이 허용되지 않았던 시대의 기억을 다루는 서정 서사이며, 그리움의 미학이 매우 안정적으로 구축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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