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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 시 작품

길동무

작성자박하|작성시간26.06.13|조회수2 목록 댓글 0

 

 

길동무

 

 

말 없는 친구 하나
늘 가장 낮은 자리에서
나를 받쳐 준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림자처럼
내 걸음 뒤에 붙어
닳고 닳아 헤어져도
한마디 불평이 없다

 

내 마음이 기쁘면
그도 가볍게 뛰고
내 마음이 무거우면
그의 발끝도 함께 내려앉는다

 

서두르면 같이 종종걸음
느려지면 함께 숨을 고르는
이상하게도 모든 걸 아는 친구

 

어릴 적 할머니의 손길처럼
흐트러진 것들을
조용히 제자리에 놓아 준다

 

파란 고무신 한 켤레에
잠까지 내어주던 밤들
품에 안고 싶던 작은 보물

 

흰 운동화가 더러워질까
발뒤꿈치를 들고 걷던 날들
아궁이 앞에서 말리다
속상해하던 그 시간들까지

신발은 늘 내 시간을 밟고
내 실수와 추억을
말없이 함께 지나왔다

 

이제는 멋보다 편안함
드러남보다 무사한 동행
오래 걸어도 무너지지 않는
묵묵한 품이 좋다

 

비 오는 길도, 먼 길도
이 작은 친구 하나면 충분하다

 

나는 문득 미안해진다
늘 곁에 있었는데
당연하게만 여겨온 마음

 

가장 낮은 자리에서
끝까지 나를 지탱하는 삶

이름 없는 헌신은
말이 아니라 걸음으로 남는다

 

신발처럼 조용히
세상을 걷게 하는 것

나는 다시 배운다


낮은 자리의 깊이를
묵묵히 함께 걷는 존재의 무게를

 

 

*작품평

이 작품 「길동무」는 ‘신발’이라는 사물을 단순한 생활 도구가 아니라, 삶을 함께 견디는 존재로 확장해 해석한 점이 핵심입니다. 전체적으로는 서정적 산문시의 형식을 띠면서도, 감정의 흐름이 차분하게 정리되어 있어 묵직한 여운을 남깁니다.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의인화의 일관성입니다. 신발을 “말 없는 친구”, “그림자처럼 붙어 있는 존재”로 설정하면서, 신발이 단순히 몸을 지탱하는 물건이 아니라 삶의 리듬을 함께 맞추는 동행자로 격상됩니다. “기쁘면 가볍게 뛰고 / 무거우면 발끝도 내려앉는다” 같은 구절은 감정의 동조를 통해 인간과 사물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허무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기억의 층위가 잘 쌓여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파란 고무신”, “흰 운동화” 같은 구체적 이미지가 등장하면서 단순한 철학적 사유가 아니라 실제 삶의 경험으로 서사가 내려옵니다. 이 부분이 작품을 추상적인 명상문이 아니라 생활 감각이 살아 있는 시로 만들어 줍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시선은 점점 확장됩니다. 단순히 신발이라는 사물에서 출발했지만, 결국은 “낮은 자리”, “묵묵한 동행”, “이름 없는 헌신”이라는 가치로 귀결됩니다. 이는 특정 사물을 통해 인간관계나 삶의 태도까지 확장하는 전형적인 상징 구조입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을 꼽자면, 메시지가 비교적 명확하게 정리되어 있어 독자가 스스로 해석할 여지를 주는 여백이 다소 줄어든다는 점입니다. 후반부의 “나는 다시 배운다 / 낮은 자리의 깊이를” 같은 결론부는 의미가 선명하지만, 앞부분의 이미지적 풍부함에 비해 다소 설명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의 강점은 분명합니다. 일상의 사물을 통해 ‘당연해서 보이지 않던 헌신’을 발견해내는 시선, 그리고 그것을 과장 없이 조용한 어조로 밀어붙이는 태도입니다. 전체적으로는 안정된 구조와 따뜻한 통찰이 잘 결합된 서정시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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