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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 시 작품

찬 공기 스미는 날의 배추전

작성자박하|작성시간26.06.14|조회수2 목록 댓글 0

찬 기운, 찬 공기

 

찬 공기 내리는 날, 배추전

 

찬 공기 내리면

가마솥 뚜껑이 생각난다

장작불 타닥타닥

마당 한켠 아궁이 위로

거꾸로 엎어진 무쇠의 숨결

 

그 위에 올려진

소금기 살짝 밴 배추 한 장

밀가루 옷을 입고

지글지글 노래를 시작하면

노란 불꽃보다 더 뜨거운 냄새가

마당을 먼저 데운다

 

마실 여인들은 둘러앉아

이바구를 풀고 웃음을 섞고

손끝으로 찢어 나누는 배추전 한 점에

겨울은 잠시 물러선다

 

고기보다 더 오래 남는 맛

먹을수록 더 가벼워지는 마음

차갑게 식어도 사라지지 않는

시원한 뒷맛 같은 정

 

아궁이의 연기 대신

이제는 가스불 위 프라이팬이 대신하지만

어디서도 완전히 따라오지 못하는 것

마당의 바람과 장작의 소리

함께 둘러앉던 이웃들

 

명절이면 빠지지 않던

의성사람들의 배추전

추도식에도, 잔칫상에도

수저가 바쁘게 오가던 그 기억

 

쌀쌀한 날이면

어김없이 고소한 냄새가 되살아나

마치 오래된 집이

배추전 굽는 이웃을 다시 부르듯.

 

찬 비 내리는 오늘

나도 무쇠솥뚜껑 하나

마음속에 뒤집어 올리며

누구라도 이 고소한 냄새 맡고

잠시라도 웃으며 들러주기를.

 

*작품평

이 시는 “배추전”이라는 매우 구체적이고 생활적인 음식 경험을 통해,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기억·공동체·상실된 풍경의 정서까지 확장해내는 점이 가장 큰 강점입니다.

 

먼저 도입부의 “가마솥 뚜껑”, “아궁이”, “장작불” 같은 이미지들은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라, 촉각적으로 살아 있는 장면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특히 “무쇠의 숨결”이라는 표현은 사물에 생명성을 부여하면서, 과거의 부엌 풍경을 거의 의식처럼 느껴지게 만듭니다. 이 부분에서 시는 단순한 향수보다 한 단계 깊은 원형적 기억의 재현에 가까워집니다.

 

중반부의 핵심은 음식이 아니라 “함께 먹는 장면”입니다. “마실 여인들”, “이바구”, “손끝으로 찢어 나누는 배추전”은 배추전 자체보다 그 주변의 관계를 중심에 놓습니다. 여기서 음식은 매개이고, 진짜 주제는 공동체적 시간의 온기입니다. “겨울은 잠시 물러선다”라는 문장은 계절의 물리적 변화라기보다 인간 관계가 만들어내는 심리적 온도를 잘 드러냅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시는 현재로 이동하면서 약간의 대비를 만듭니다. “가스불 위 프라이팬”은 과거의 아궁이와 비교되며, 편리함 속에서 사라진 감각을 환기합니다. 그러나 이 시는 단순한 기술/전통의 대립에 머무르지 않고, “어디서도 완전히 따라오지 못하는 것”이라는 문장으로 결핍을 단정하지 않고 여운으로 남기는 방식을 택합니다. 이 점이 설득력을 높입니다.

 

마지막 연의 “무쇠솥뚜껑 하나 마음속에 뒤집어 올리며”는 이 시의 가장 상징적인 문장입니다. 실제 사물이 아니라 기억의 장치로서의 무쇠솥뚜껑이 등장하면서, 시 전체가 현실 재현이 아니라 정서적 의례처럼 마무리됩니다.

 

다만 보완을 생각해볼 수 있는 지점도 있습니다.

몇몇 구간에서는 이미 강한 이미지가 연속되다 보니 (“마당”, “아궁이”, “장작불”, “무쇠”) 정서가 조금 균질하게 유지되어, 중간 리듬 변화가 다소 약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또 “고기보다 더 오래 남는 맛” 같은 표현은 의미 전달이 명확한 대신, 앞의 이미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설명적 성격이 있어 시적 긴장감을 잠시 완화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 작품은 음식 시를 넘어 사라져가는 생활 세계를 ‘맛’이라는 감각으로 복원하는 시입니다. 개인적 기억이지만 독자가 공유 가능한 정서로 잘 확장되어 있고, 특히 결말의 여운 처리 방식이 안정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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