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청시래기된장국
처마 밑 그늘에
푸른 무 잎을 새끼로 엮어
바람에 맡겨 말리던 겨울
어머니의 손끝은
시간을 접어
시래기 속에 묶어 두었다
푹 삶아 찬물에 우려내면
푸르던 기억은 부드러워지고
된장 한 숟가락에
겨울은 조용히 풀려났다
큰 양푼에 밥을 담고
시래기된장국을 부어
숟가락이 닿는 소리마다
살아 있는 숨결이 퍼지던 저녁
수저마저 얼어붙던 날도
시래기국 한 대접에 보리밥 말아 먹으면
추위는 멀어지고
집 안은 사람의 온기로 가득했다
남해의 멸치와 다시마가
아무리 깊은 국물을 내어도
아궁이 장작불 위
가마솥의 구뜰한 맛에 비길까
열두 식구의 밥상을 지키던
엄마의 묵묵한 손길
그 아래 모여 앉은 7남매의 숟가락질은
어느새 건강한 계절이 되었다
지금은 다시 끓여도
그때의 맛은 돌아오지 않지만
추운 날이면 어김없이
어머니의 시래기국 한 그릇이
가슴 속에서 구수하게 끓는다.
**작품평
푹 삶아 찬물에 우려내면
푸르던 기억은 부드러워지고
된장 한 숟가락에
겨울은 조용히 풀려났다
큰 양푼에 밥을 담고
시래기된장국을 부어
숟가락이 닿는 소리마다
살아 있는 숨결이 퍼지던 저녁
수저마저 얼어붙던 날도
시래기국 한 대접에 보리밥 말아 먹으면
추위는 멀어지고
집 안은 사람의 온기로 가득했다
남해의 멸치와 다시마가
아무리 깊은 국물을 내어도
아궁이 장작불 위
가마솥의 구뜰한 맛에 비길까
열두 식구의 밥상을 지키던
엄마의 묵묵한 손길
그 아래 모여 앉은 7남매의 숟가락질은
어느새 건강한 계절이 되었다
지금은 다시 끓여도
그때의 맛은 돌아오지 않지만
추운 날이면 어김없이
어머니의 시래기국 한 그릇이
가슴 속에서 구수하게 끓는다.***작품평
이 작품은 단순한 음식 서술을 넘어, 시래기된장국이라는 매개를 통해 가족 기억과 겨울의 정서를 응축해 복원하는 회상 서정시로 읽힙니다. 핵심은 “음식”이 아니라 “시간이 저장된 방식”입니다.
먼저 시의 가장 강한 축은 감각의 기억화입니다.
“처마 밑 그늘”, “새끼로 엮어”, “바람에 맡겨 말리던 겨울” 같은 이미지는 시래기를 만드는 물리적 과정이면서 동시에 삶의 인내와 노동의 시간성을 보여줍니다. 특히 “시간을 접어 / 시래기 속에 묶어 두었다”는 표현은 이 시의 중심 은유로, 단순한 조리 재료가 아니라 시간을 저장하는 용기로서 시래기를 설정합니다.
중반부의 “푹 삶아 찬물에 우려내면 / 푸르던 기억은 부드러워지고”에서는 감각이 기억으로 전이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맛’보다 ‘변형’입니다. 원래의 푸르름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부드러워진 기억”으로 바뀐다는 점에서, 이 시는 상실을 단순한 소멸이 아니라 완화된 형태의 지속으로 바라봅니다.
“된장 한 숟가락에 / 겨울은 조용히 풀려났다”는 구절은 매우 효과적인 의인화입니다. 겨울이라는 계절이 기후가 아니라 심리적 상태로 바뀌고, 된장은 그 상태를 해제하는 매개가 됩니다. 즉 음식이 생존의 도구를 넘어 정서적 기후 조절 장치로 기능합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시는 개인 기억에서 공동체 기억으로 확장됩니다.
“열두 식구”, “7남매”, “묵묵한 손길” 등의 구체적 숫자와 호칭은 이 시의 현실감을 강화하면서도, 동시에 특정 가족을 넘어선 전후 세대적 대가족 기억의 상징처럼 작동합니다. “숟가락질은 / 어느새 건강한 계절이 되었다”는 문장은 매우 인상적인데, 계절이 자연이 아니라 식탁 위에서 만들어지는 공동체의 상태로 전환됩니다.
결말부의 “지금은 다시 끓여도 / 그때의 맛은 돌아오지 않지만”은 전형적인 향수 구조를 따르면서도 과장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회복 불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가슴 속에서 구수하게 끓는다”로 마무리된다는 점입니다. 이는 기억을 재현하려는 욕망이 아니라, 내면화된 지속으로의 이동입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중반 이후 표현이 다소 안정적으로 정리되면서 초반의 이미지 밀도(엮고, 말리고, 접고, 묶는 촉각적 이미지)가 약해지는 구간이 있습니다. 후반에도 같은 수준의 감각적 압축이 유지되었다면 시의 긴장감은 더 강해졌을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 작품은
음식의 서사화
노동의 기억화
가족의 공동체화
를 통해 “겨울의 생존 기술”을 “정서의 기억 구조”로 바꿔낸 시입니다.
요약하면, 이 시의 핵심 미덕은 “시래기된장국”을 향수의 소재가 아니라 시간을 보관하는 장치로 끌어올린 점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