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외손자아이가 좋아하는 할머니 국수
하얀 사기 대접에
멸치 국물이 조용히 우러나고
애호박은 참기름 향을 머금은 채
가느다란 국수 위로 살며시 내려앉는다
계란은 노랗게 부쳐 곱게 채 썰고
당근은 붉은 빛으로 볶아 숨을 고르고
잘게 다진 소고기는 구수한 온기를 품는다
그 위에 얹히는 오색의 마음
초록 애호박, 노란 계란,
주황 당근, 갈색 소고기,
그리고 고요히 흩뿌려지는 김가루
한 그릇 국수는 어느새
작은 우주가 된다
다섯 살 외손자는
국수 한 젓가락을 입에 넣고
엄지를 들어 올린다
“할머니 국수, 최고”
그 작은 손짓 하나에
나는 하루의 무게를 모두 내려놓는다
국수 한 그릇 비워 내며
하늘을 올려다보는 초롱초롱한 눈
쑥쑥 자라거라
키도, 마음도 햇살처럼 맑게.
*작품평
이 작품은 “음식”을 매개로 한 정서적 기억과 돌봄의 장면을 아주 안정감 있게 풀어낸 서정시입니다. 전체적으로는 한 그릇 국수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관계와 시간, 사랑의 축적’으로 확장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돋보이는 점은 감각적 이미지의 정돈입니다.
“멸치 국물이 조용히 우러나고”, “참기름 향을 머금은 애호박”, “노랗게 부쳐 곱게 채 썰린 계란” 같은 표현들은 시각과 후각을 동시에 자극하면서도 과하지 않게 절제되어 있습니다. 음식 묘사가 나열로 흐르기 쉬운데, 이 작품은 각 재료를 하나의 정서 단위처럼 배치해 리듬감을 유지합니다.
또한 색채 대비가 잘 살아 있습니다. 초록·노랑·주황·갈색·김가루의 흑색까지 이어지는 “오색의 마음”은 시각적 안정감을 주면서도, 실제로는 ‘정성’이라는 추상적 감정을 구체적으로 번역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부분에서 시의 핵심 정서가 자연스럽게 형성됩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시는 서정에서 관계의 핵심으로 이동합니다.
“외손자”라는 구체적 대상이 등장하면서 시는 개인적 서사가 되고, “엄지를 들어 올린다”, “할머니 국수, 최고” 같은 짧은 대사는 감정의 정점을 과장 없이 전달합니다. 이 지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힘입니다. 감정을 설명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방식이 효과적입니다.
마지막 “하루의 무게를 모두 내려놓는다”와 “쑥쑥 자라거라”는 전형적인 결말 구조이지만, 앞선 장면들이 충분히 구체적이어서 진부하게 느껴지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정서적 귀결로 작동합니다.
다만 한 가지 보완점을 말하자면, “작은 우주가 된다” 이후의 확장은 이미 정서적으로 충분히 고조된 상태라, 이후 문장이 약간 설명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지막 메시지를 조금 더 이미지로 환원하면 여운이 더 깊어질 여지도 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음식-돌봄-세대-사랑’이라는 축을 매우 안정적이고 따뜻한 언어로 구현한 작품이며, 서정시로서 완성도가 높은 편입니다. 특히 “구체적 재료의 디테일”이 감정을 대신 말해주는 점이 이 시의 핵심 미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