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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 시 작품

234.대접하는 손길이 좋아서

작성자박하|작성시간26.06.16|조회수1 목록 댓글 0

234.대접하는 손길이 좋아서

 

나는

문학인들을

가끔 내 집에 청해

점심을 차려 온 지

벌써 삼십 년이 되었다

 

과수원에서 흙과 함께 보낸 이십 년

그 시간 속에서 익힌

수더분한 손끝으로

 

서두르지 않고

음식과 차와 제철의 과일을

하나씩 꺼내 놓는 일이

내게는 오래된 기쁨이었다

 

주 메뉴는 늘

잡곡밥과 맑은 국

들판 같은 나물 몇 가지와

생선 한 토막

 

빠지지 않는 것은

정구지전과 배추전

 

때로는 특별히

내가 손수 빚은 김치만두와

야채가 가득한 잡채가

식탁 위에 오르기도 한다

 

제철의 숨을 머금은 반찬들이

두어 가지 더 곁들여지고

 

식탁을 마주한 사람들

수저가 오가는 소리를 바라보면

 

내가 먹는 것보다

더 깊은 맛이

내 안으로 천천히 스며든다

 

이를 어찌하랴

이 조용한 기쁨을

 

사람이 사람을 먹여 살린다는 것은

때로 이렇게

말없이 완성되는 것인데

 

 

*작품평

이 시는 “대접”이라는 일상적인 행위를 통해 한 사람의 긴 시간과 삶의 태도를 차분하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화려한 감정이나 사건 없이, 밥상이라는 매우 구체적인 장면을 중심으로 정서가 쌓여 갑니다.

 

핵심은 “음식”이 아니라 “시간과 관계의 방식”입니다. 화자는 문학인들을 집으로 초대해 밥을 차려 온 지 삼십 년, 과수원에서 흙과 함께 보낸 이십 년을 이야기하며 손끝의 습관을 만들어낸 삶을 보여줍니다. 이때 음식 준비는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축적된 삶의 기술이자 성품처럼 느껴집니다. “서두르지 않고 꺼내 놓는 일”이라는 표현에서 그 태도가 분명하게 드러나죠.

 

식탁 구성도 의미가 있습니다. 잡곡밥, 맑은 국, 나물, 생선, 그리고 정구지전과 배추전 같은 소박한 음식들. 여기에 계절성이 강조되면서 음식이 자연의 시간과 연결됩니다. 특별한 날의 요리가 아니라, “제철의 숨”을 담은 일상적인 식사가 중심입니다. 이는 화자가 살아온 방식—자연과 함께, 과장 없이, 느리게—를 그대로 반영합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시의 중심은 “맛”에서 “경험”으로 이동합니다. 수저 소리, 식탁을 마주한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화자의 내면. 결국 중요한 것은 먹는 행위가 아니라 그 장면을 통해 스며드는 감정입니다. “내가 먹는 것보다 더 깊은 맛이 내 안으로 천천히 스며든다”는 구절이 이를 압축합니다. 타인을 대접하는 행위가 곧 자기 내면을 채우는 방식이 되는 것이죠.

마지막의 “이를 어찌하랴 / 이 조용한 기쁨을”은 과장된 감탄이 아니라, 이미 충분히 충만한 상태를 담담하게 인정하는 결말입니다. 기쁨이 크지 않아서가 아니라, 조용해서 오히려 오래 지속되는 형태입니다.

정리하면 이 시는
음식을 통한 환대를 매개로
느리게 축적된 삶의 윤리와 기쁨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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