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외손자를 위한 아침밥상
새벽 다섯 시 사십오 분
전화벨이 울렸다
"할머니.“
큰손자의 목소리가
이른 새벽 창문을 두드렸다.
“배가 고파
잠이 일찍 깨었어요”
나는 반가움에 웃음꽃 피우며
"할머니 집에 퍼뜩 오너라.
따뜻한 밥상 차려줄게.“
"예, 할머니. 금방 갈게요.“
잠시 후
"할머니, 저 왔어요.“ 한마디에
가슴이 먼저 달려 나갔다.
대학생이 되어
나보다 훌쩍 커 버린 손자가
소고기햄 두 캔을 내 손에 내밀며
수줍게 웃었다.
나는, “그냥 오지 이 귀한 걸 준비했노”
손자의 등을 두들겨주고는
냉동실에 준비해 둔 오징어와 갈치
햇감자, 햇고구마, 부추를 꺼내어
손자와 함께 요리하기 시작했다.
밀가루를 살짝 입힌 오징어와 감자는 튀기고
정구지는 전 굽고
이 모두는 손자가 해주었다
다섯 살 적
요리교실에서 배운 솜씨가
이제야 솜씨를 발휘하여
빛을 보는가 보다.
갈치조림이 보글거리고
소고기무국에서는 따뜻한 김이 오르고
콩나물과 김치, 꽈리고추조림
손자가 해준 튀김과 전
사랑으로 가득한 풍경이 되었다.
손자는 밥 한 공기를
따끈한 국에 말아
갖갖이 반찬을 먹으며
어릴 때처럼 엄지손가락 치켜세우며
"할머니 음식이 최고예요.“
그 말 한마디에
수십 년 솥뚜껑 운전한 세월이
보람으로 익어갔다.
우유와 토마토 후식 후에
손자는 리포트 과제 때문에
도서실에 가야한다며 일어섰다
내가 발끝을 세우며 안아주려는데
손자는 센스 있게 허리를 굽혀
제 키를 내 키에 맞추어 안겨주었다.
"할머니, 건강하세요."
그 순간, 새벽 햇살보다 먼저
내 마음에 꽃 한 송이 피었다.
웃음꽃 한 바구니 안겨 주고
자전거 타고 멀어져 가는
손자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나는 손을 흔들고 있었다.
*작품평
이 작품은 ‘새벽에 울린 전화’라는 매우 일상적인 사건에서 시작해, 세대 간 정서와 사랑의 밀도를 따뜻하게 응축해낸 서정시입니다. 전체적으로는 이야기시(서사시적 서정시)에 가까운 구조를 가지고 있고, 한 편의 짧은 영화처럼 장면이 이어지는 점이 특징입니다.
먼저 가장 두드러지는 장점은 현장감 있는 서사 전개입니다.
“새벽 다섯 시 사십오 분 전화벨”이라는 구체적 시간 설정이 긴장감을 만들고, 곧이어 손자의 방문과 함께 생활 장면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이때 “가슴이 먼저 달려 나갔다” 같은 표현은 감정의 속도를 신체 감각으로 전환해 보여줘서 서정성을 강화합니다.
또 하나의 강점은 음식 묘사를 통한 정서의 구체화입니다.
오징어, 갈치, 햇감자, 부추, 소고기무국, 꽈리고추조림 같은 구체적인 식재료는 단순한 식탁이 아니라 ‘시간이 쌓인 삶의 기록’처럼 기능합니다. 특히 손자가 직접 튀김과 전을 만드는 장면은 과거의 기억(“다섯 살 적 요리교실”)과 현재를 연결하는 장치로 잘 작동합니다. 이는 단순한 식사 장면을 ‘세대의 순환’으로 확장시킵니다.
감정적으로 가장 설득력 있는 부분은 마지막 장면입니다.
“허리를 굽혀 키를 맞추어 안겨주었다”는 디테일은 단순한 효심의 표현을 넘어, 서로를 배려하는 관계의 성숙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새벽 햇살보다 먼저 내 마음에 꽃 한 송이 피었다”라는 결말은 전형적인 감상 표현일 수 있지만, 앞선 구체적 장면들 덕분에 과장으로 느껴지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감정의 정점으로 수용됩니다.
다만 보완할 점도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장면과 감정이 풍부하지만, 문장 리듬이 다소 평면적으로 이어지는 부분이 있어 긴장감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음식 나열 장면에서는 서술이 다소 설명적으로 흐르기 때문에, 감각적 이미지(냄새, 소리, 온도 등)를 조금 더 압축해서 배치하면 시적 밀도가 더 높아질 수 있습니다.
또한 감정이 이미 충분히 드러난 상태에서 “사랑으로 가득한 풍경이 되었다”, “보람으로 익어갔다” 같은 요약적 표현은 독자의 체험을 대신 설명해주는 느낌을 줄 수 있어, 약간 줄이고 장면 자체로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이 더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정리하면 이 작품은
**‘손자와 할머니의 아침 식탁’을 통해 세대 간 사랑과 시간의 회복력을 보여주는 따뜻한 서사시’**이며, 구체적 생활 이미지가 감정을 설득력 있게 떠받치고 있다는 점에서 완성도가 높은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