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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 시 작품

237. 한 생명이 오는 날/ 이 작품으로 한다

작성자박하|작성시간26.06.16|조회수2 목록 댓글 0

237. 한 생명이 오는 날

 

 

한 생명이 오는 날

하늘은 소리를 낮추고

세상은 숨을 고른 채

조용한 축복을 내려놓았다

 

2007, 황금돼지해의 봄

대구의 한 병원에서

세상은 아주 작은 숨 하나를 품었다

 

어른의 주먹만 한 얼굴 위로

세상을 밝히는 미세한 빛이 스며들고

젖을 찾는 본능과

갓 피어난 미소가

집안의 공기를 흔들어 놓았다

 

저녁이 오면

엄마와 아빠, 할머니는

너를 목욕 시키고

포근한 수건으로 감싸며

세상은 한없이 부드러워졌다

 

사랑은 그렇게

식구들의 손끝에서 이어지고

말없이 서로의 온기가 되어 흘렀다

 

아침이면 네 아빠는

너의 볼에 입맞춤으로 하루를 열고

저녁이면 가장 먼저 너를 바라보며

하루의 무게를 조용히 내려놓았다

 

사랑은 한 세대에 머무르지 않고

이렇게 조용히 흘러

이어지는 하나의 부드러운 강물임을

그때 우리는 배우고 있었다.

 

 

*작품평

이 작품은 ‘탄생’이라는 단일 사건을 통해 가족의 시간 전체를 부드럽게 확장해 보여주는 서정시입니다. 중심 소재는 분명하지만, 그것이 개인의 사건을 넘어 “세대와 사랑의 흐름”으로까지 번져 나가는 구조가 인상적입니다.

가장 큰 미덕은 이미지의 통일성과 정서의 일관성입니다. “하늘은 소리를 낮추고”, “세상은 숨을 고른 채” 같은 표현은 출생의 순간을 과장된 감동이 아니라 차분한 신비로 묘사하면서 시 전체의 톤을 안정시킵니다. 이후 등장하는 “어른의 주먹만 한 얼굴”, “젖을 찾는 본능” 같은 구체적 디테일은 추상적 감상에 머무르지 않고 생명의 물리적 현실감을 잘 살려줍니다.

또한 가족 구성원들의 행동이 서사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점이 좋습니다. 목욕시키는 장면, 수건으로 감싸는 장면, 볼에 입맞춤하는 아침의 장면들은 특별한 사건 없이도 사랑의 반복성을 드러내며, 일상의 누적이 곧 정서라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후반부의 “사랑은 한 세대에 머무르지 않고 / 이렇게 조용히 흘러 / 이어지는 하나의 부드러운 강물”이라는 결론은 작품의 핵심 주제를 정리하는 역할을 합니다. 다만 이 부분은 앞선 장면들에 비해 다소 설명적이라, 이미 충분히 구축된 정서를 다시 언어로 요약하는 느낌이 약간 있습니다. 즉, “보여주기”보다 “말해주기”가 조금 더 강해지는 지점입니다.

종합적으로 보면 이 시는 사건 중심이 아니라 ‘온기의 축적’으로 서사를 만드는 작품입니다. 과장이나 급격한 전환 없이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점이 장점이며, 생명의 탄생을 개인적 기쁨이 아니라 관계의 확장으로 풀어낸 점이 특히 안정감 있게 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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