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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 시 작품

2. 가을축제의 꽃밭

작성자박하|작성시간26.06.17|조회수2 목록 댓글 0

2. 가을축제의 꽃밭

 

드높은 파란 하늘 아래 만국기 펄럭이고

운동장엔 코스모스와 고추잠자리 날던 가을

검은 무명 팬티와 흰 러닝셔츠의 아이들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로 웃고 뛰던 운동회

 

1954년 동촌초등학교, 청군과 백군의 함성

용감하고 씩씩하다 우리 선수들응원가

하늘 찌를 듯한 목소리와 조마조마한 심장

명희의 파란 심줄 터질까 걱정하던 마음

 

달리기, 공굴리기, 장애물, 줄다리기 한마당

대바구니 터질 때마다 터지던 환호성

느티나무 아래 엄마와 동생 통통이의 기다림

김밥, , 오징어튀김, 삶은 계란, 사이다의 맛

 

운동장가 소고기국 냄새, 엿 장수, 솜사탕의 유혹

엄마 저고리에 달면 어울릴 용장미 브로치

용돈 다 주고 산 어린 마음의 뿌듯함

 

어느덧 지천명, 문득 뒤돌아보니
운동장 가득 피어 있던 가을의 꽃들만
여전히 바람 속에서 흔들리고 있다

 

*작품평

이 작품은 가을 운동회라는 한 장면을 매개로, 개인의 유년 기억과 시대적 정서를 겹쳐 올린 회상시로 읽힙니다. 전반적으로는 운동장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시간(1954지천명 이후 현재)과 감정이 층층이 쌓이는 구조가 인상적입니다.

가장 두드러지는 장점은 감각적 디테일입니다. “만국기 펄럭이고”, “코스모스와 고추잠자리”, “검은 무명 팬티와 흰 러닝셔츠”, “김밥, 감, 오징어튀김, 삶은 계란, 사이다” 같은 구체적 이미지들이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몸의 기억처럼 살아납니다. 특히 시각(하늘, 운동장), 청각(응원가, 함성), 후각(소고기국 냄새), 미각(사이다, 김밥)이 고르게 배치되어 있어 당시의 장면이 입체적으로 재현됩니다.

또한 정서의 핵심은 ‘그리움’이지만 단순한 향수에 머물지 않고, “명희의 파란 심줄”, “조마조마한 심장” 같은 표현을 통해 어린 시절의 긴장과 생생한 감각까지 함께 끌어올립니다. 개인 기억이지만 특정 세대가 공유할 수 있는 집단 기억으로 확장되는 점도 이 시의 힘입니다.

구조적으로는 과거의 운동회 풍경이 점점 축적되다가 마지막 연에서 “지천명” 이후의 현재로 급격히 이동하며 여운을 남깁니다. 마지막 “운동장 가득 피어 있던 가을의 꽃들만 여전히 바람 속에서 흔들리고 있다”는 결구는 실제 꽃이 아니라 기억의 잔상으로서의 ‘꽃’으로 읽히며, 시간의 소멸과 기억의 지속을 동시에 드러냅니다.

다만 보완을 생각해본다면, 몇몇 이미지가 풍성한 만큼 중간에서 감정의 핵심 축이 조금 분산되는 느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음식, 응원, 가족 기다림, 개인 감정이 모두 강하게 등장하면서 중심 정서가 어디에 더 무게를 두는지 약간 흐려질 수 있습니다. 일부 이미지를 선택적으로 압축하면 마지막 “기억의 꽃밭” 이미지가 더 강하게 응축될 여지도 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운동회라는 구체적 장면 세대적 기억 존재의 회상으로 확장되는 구조가 잘 짜여 있고, 무엇보다 사라진 시간을 설명이 아니라 장면으로 복원해낸 점이 뛰어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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