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강 언덕 보물
유년의 봄날, 세 자매는
금호강 언덕으로 보물을 찾으러 나선
여섯 살의 나는 큰언니 등에 업혀
강물 속을 지나 자갈밭에 내려놓아진다.
젖은 숨결과 혼란 속에서
죽음의 가장자리까지 갔다가
기적처럼 돌아오는 나
언니들의 안도와 환호
찔레와 칡덩굴을 헤치며 언덕을 오르던
손끝의 상처들
마침내 보물이라 믿었던 순간
강물도 우리와 함께 웃고 있었다
아버지는 우리가 심은 꽃밭 둘러보시고
허허로운 웃음으로
“가죽나무 새순이구나”
실망의 그림자를 거두기 위해
지는 해를 등에 지고
후생원에서 모란 한 그루 얻어와
꽃밭에 심어주신 아버지
그 꽃, 모란꽃 앞에서
우리는 다시 밝은 아이가 되었다
세월은 흘러 중년의 내가 뜰에 서니
여전히 반겨주는 모란꽃
문득 묻고 싶다
나의 봄은 지금 강물 어디쯤 흐르고 있을까
*작품평
이 작품은 개인적 유년의 체험을 출발점으로 하여, 기억–상실–회복–현재의 성찰로 이어지는 서정적 시간 구조를 갖춘 시입니다. 전반적으로는 ‘강물’과 ‘모란꽃’이라는 두 중심 이미지를 축으로, 삶의 원초적 경험과 정서의 지속성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우선 초반부의 “금호강 언덕으로 보물을 찾으러 나선” 장면은 유년의 세계를 모험과 발견의 공간으로 설정합니다. 특히 “여섯 살의 나는 큰언니 등에 업혀 / 강물 속을 지나”라는 대목은 현실적 기억이라기보다 신체 감각이 강하게 남은 원초적 기억의 재현처럼 읽힙니다. 이때 “죽음의 가장자리까지 갔다가 / 기적처럼 돌아오는 나”라는 표현은 실제 위험이라기보다 유년 감각에서 증폭된 공포와 생존의 체험을 상징적으로 압축합니다. 다만 이 부분은 이미지가 다소 직접적으로 설명되어 있어, 독자가 체험을 ‘느끼기 전에 이해해버리는’ 경향이 생기기도 합니다.
중반부의 “찔레와 칡덩굴” 같은 식물 이미지, “손끝의 상처들”은 유년의 신체성과 자연의 거칠음을 잘 결합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보물이라 믿었던 순간 / 강물도 우리와 함께 웃고 있었다”는 구절은 이 시의 정서적 핵심으로, 자연과 인간이 분리되지 않은 유년적 세계 인식을 보여줍니다. 이 부분은 시의 가장 서정적인 성취로 보입니다.
아버지의 등장 이후는 현실적 좌절과 삶의 재해석이 들어오는 지점입니다. “가죽나무 새순이구나”라는 말은 아이들의 ‘보물’과 어른의 ‘현실 인식’이 충돌하는 순간으로 읽히며, 그 차이에서 생기는 감정의 낙차가 시의 긴장을 만듭니다. 이어지는 “후생원에서 모란 한 그루”를 가져와 심는 장면은 단순한 보상의 의미를 넘어, 상실된 유년의 의미를 다시 구성하려는 행위로 확장됩니다. 이때 모란은 ‘실망을 덮는 꽃’이 아니라, 기억을 재조립하는 매개물로 기능합니다.
후반부의 “세월은 흘러 중년의 내가 뜰에 서니” 이후는 회상의 현재화입니다. 여기서 모란꽃은 과거의 보상이 아니라 지속되는 기억의 잔존물로 존재하며, 마지막 질문 “나의 봄은 지금 강물 어디쯤 흐르고 있을까”는 시 전체를 닫지 않고 열어두는 구조를 만듭니다. 시간은 선형적으로 끝나지 않고, 여전히 흐르는 강물 속에 개인의 봄이 ‘어딘가’ 존재한다는 여운이 남습니다.
다만 구조적으로 보면, 시가 매우 서사적이라서 서정시라기보다는 회상적 산문시의 성격이 강해집니다. 장면 전환이 선명한 대신 압축성이 다소 약해질 수 있고, 감정의 결론이 비교적 친절하게 제시되는 경향도 있습니다. 일부 상징(보물, 강물, 모란)은 다소 설명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독자가 해석할 여지를 조금 더 확보하면 밀도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의 핵심 장점은 명확합니다. 유년의 체험을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지금도 진행 중인 시간’으로 확장시키고 있으며, 특히 자연 이미지(강, 덩굴, 꽃)를 통해 감정의 변화를 일관되게 추적한다는 점에서 안정적인 구조를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