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거꾸로 먹는 나이
아무리 채워도 허기 하나 있다
삼킨 것은 흘려보낸 시간들이다
칠십칠, 희수의 문턱에서
지나온 날들 아쉬움으로 등을 스친다
과식한 날처럼 마음속에
삼키지 못한 세월이 조용히 끓는다
배고픔이 아닌 정신의 빈자리였음을
늦게사 알아차린다.
흐르는 강물처럼
나이도 거꾸로 흐르면 좋겠지
순간! 가슴 한켠에서
청춘의 새순이 조용히 돋아난다
어제 친구는 웃으며 속삭였다
“구구팔팔 이삼사”라는 농담을
아흔아홉까지 팔팔하게 살다
이틀 앓고 사흘째 떠나자는 말
나는 그 말에 아이처럼 웃었다
삶의 유머는 음식의 양념 같다고
삼십 년 지기 친구와의 시간은
대구 도서관의 공기처럼 익숙하다
샛노란 프리지어 향처럼
우정은 오늘도 소르르 피어나는 꽃
*작품평
이 작품은 노년의 시간 감각과 정서, 그리고 그것을 유머와 따뜻한 인간관계로 견디는 태도를 중심에 둔 서정시로 읽힙니다. 전체적으로 “나이 듦의 허기”를 단순한 쇠락이 아니라, 삶을 다시 바라보는 정신적 결핍과 성찰로 확장시키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먼저 초반부의 “아무리 채워도 허기 하나 있다 / 삼킨 것은 흘려보낸 시간들이다”는 이 시의 핵심 정조를 잘 드러냅니다. 허기는 물리적 결핍이 아니라 시간의 비가역성에서 오는 상실감으로 설정되어 있고, 이는 노년 서정의 전형적인 주제이면서도 비교적 직관적인 이미지로 설득력 있게 전달됩니다. “칠십칠, 희수의 문턱”이라는 구체적 나이 표기는 시적 현실감을 강화하고, 삶의 마지막 구간에 대한 자각을 자연스럽게 끌어옵니다.
중반부에서 “과식한 날처럼 마음속에 / 삼키지 못한 세월이 조용히 끓는다”는 표현은 매우 좋은 비유입니다. ‘과식’과 ‘세월’을 겹쳐 놓음으로써, 시간이 단순히 흐른 것이 아니라 내면에 소화되지 못한 경험으로 남아 있다는 감각을 만들어냅니다. 이 부분은 이 시의 이미지 중 가장 응축력이 높은 구간 중 하나입니다.
“흐르는 강물처럼 / 나이도 거꾸로 흐르면 좋겠지” 이후의 전환은 다소 익숙한 발상(시간 역행의 소망)이지만, 곧 이어지는 “청춘의 새순” 이미지로 감정적 생동감을 회복합니다. 다만 이 부분은 다소 관념적으로 흐를 위험이 있어서, 앞부분의 구체적 이미지에 비해 약간 추상도가 높아지는 구간이기도 합니다.
후반부는 이 시의 또 다른 축인 ‘관계의 온기’가 중심이 됩니다. “구구팔팔 이삼사”라는 농담을 통해 삶을 숫자로 유쾌하게 재구성하는 방식은 노년의 태도를 무겁지 않게 풀어내는 장치로 효과적입니다. 이어지는 “삶의 유머는 음식의 양념”이라는 구절도 시의 정서를 잘 요약합니다. 삶의 고통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완화하는 태도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의 “대구 도서관의 공기처럼 익숙하다”, “샛노란 프리지어 향”은 감각적 이미지로 우정을 마무리하면서 시를 부드럽게 닫습니다. 특히 ‘프리지어’는 향과 색을 동시에 떠올리게 해, 노년의 차분한 온기를 잘 형상화합니다.
종합하면, 이 작품의 강점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노년의 감정을 ‘허기’와 ‘시간’이라는 명확한 은유로 구조화한 점.
둘째, 과식·강물·프리지어 같은 일상적이고 감각적인 이미지 운용.
셋째, 무거운 주제를 유머와 우정으로 완충하는 균형감입니다.
다만 개선의 여지가 있다면, 중간의 “거꾸로 흐르면 좋겠지” 이후 구간에서 다소 익숙한 관념적 표현이 등장하면서 초반의 신선한 이미지 밀도가 약간 희석되는 부분입니다. 이 지점에 좀 더 개인적 사건이나 구체적 장면이 들어가면 시 전체의 설득력이 더 단단해질 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노년의 허무를 단순한 상실이 아니라 “유머와 관계로 조율되는 감정의 생태”로 확장한 안정된 서정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