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나의 유년시절과 순사 노래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던
그때는 1954년,
나는 아홉 살, 동무들과 신작로를 걸으며
놀이처럼 흥얼거리던 노래가 있었다
“앞에 가면 도둑놈
뒤에 가면 순사(순경)”
우리 3학년 또래들은
서로 도둑이 되기 싫어
한 발씩 슬그머니 뒤로 물러서며
서로의 그림자를 따라 걸었다
그 시절, 순사는 무서웠다
날마다 빨갱이를 잡으러
팔공산을 누비던 시절
아기가 울면 동네 어른들은
“순사 온다” 한마디로 달래곤 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
순사라고 믿던, 순진한 시절
웃음 섞인 “뒤에 가면 순사” 노래는
들판을 뛰놀다
해 질 녘 골목 어귀에 이르면 멈추고
“손님요 들어오세요
반갑습니다, 가위바위보”
그렇게 하루는 즐겁게 접히고
우리는 집으로 뛰어갔다
그 시절의 나는
그 길 끝이
다시 내일로 이어질 줄만 알았다
*작품평
이 작품은 개인적 기억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1950년대 한국의 사회적 공기를 자연스럽게 끌어안고 있어, “유년의 놀이”와 “시대의 긴장”이 한 겹으로 겹쳐지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단순한 회상시가 아니라, 어린 시절의 순수한 놀이 언어가 당시의 공포 정치적 분위기(“빨갱이”, “순사”)와 맞물리면서 시대성을 드러내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돋보이는 점은 “순사”라는 존재가 두려움의 상징으로 기능하는 방식입니다. 아이들의 노래 “앞에 가면 도둑놈 / 뒤에 가면 순사”는 단순한 놀이 규칙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권력과 감시, 처벌의 구조를 무의식적으로 체득하는 장면으로 읽힙니다. 아이들의 놀이가 사회 질서를 모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유년의 순수함을 넘어서는 해석의 여지를 확보합니다.
또한 “아기가 울면… ‘순사 온다’” 같은 구절은 당시 권위의 절대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여기서 순사는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공포를 작동시키는 언어적 장치로 기능합니다. 이 부분은 서정적이면서도 동시에 사회사적 기록처럼 읽힙니다.
후반부 “손님요 들어오세요 / 반갑습니다, 가위바위보”는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중요한 장치입니다. 앞선 긴장과 공포의 결을 잠시 풀어주며, 유년기의 일상적 놀이성과 공동체적 장면을 복원합니다. 이 대비가 작품의 리듬을 살립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시대적 맥락(“팔공산”, “빨갱이”)이 강하게 등장하는 만큼, 화자의 감정이 조금 더 분화되거나 현재 시점의 사유가 한 겹 더 얹히면 작품의 깊이가 더 확장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은 기억의 재현이 중심이라, 회상의 정서가 비교적 일관되게 유지됩니다. 마지막 “그 길 끝이 / 다시 내일로 이어질 줄만 알았다”는 좋은 여운을 주지만, 여기서 현재의 시점이 조금 더 개입되면 더 강한 울림이 생길 여지도 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개인의 유년 기억을 통해 냉전기 한국의 공포와 놀이의 공존을 포착한 서정적 회상시이며, 이미지와 구어적 리듬이 안정적으로 결합된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