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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 시 작품

21.그 겨울의 폭설

작성자박하|작성시간26.06.18|조회수3 목록 댓글 0

21.그 겨울의 폭설

 

 

 

창밖에 눈이 내린다, 세상의 모서리를 지우며.

하얀 눈발은 잊힌 시간 위에 이불을 덮고,

나는 오래된 겨울 한 장면 속으로 걸어간다.

 

설 다음 날, 잿빛 하늘 아래 길을 나섰고

명절 음식의 온기는 작은 트럭에 실려 있었다.

고갯마루에 이르자 세상은 눈의 나라가 되었다.

 

얼음길 위에서 차는 앞으로 가지 못하고

중력의 손에 이끌려 천천히 뒤로 밀려났다.

경적과 불만의 목소리 사이로 바람은 눈을 흩뿌렸다.

 

그때 누군가의 이해와 누군가의 손길이

폭설 속 등불처럼 우리 곁에 다가왔다.

낯선 친절 하나가 길보다 먼저 길을 열어 주었다.

 

붉은 벽돌집이 눈보라 너머 나타났을 때

안도는 따뜻한 숨이 되어 가슴에 번졌다.

마당에는 눈사람이 서고 아이의 웃음이 눈처럼 빛났다.

 

이제 남편은 먼 하늘의 사람이 되었지만

그 겨울의 사랑은 아직 녹지 않은 눈으로 남아

오늘도 내 마음에 조용하고 환하게 내린다.

 

*작품평

이 시 「그 겨울의 폭설」은 단순한 폭설의 기억을 넘어, 고난 속에서 경험한 인간의 따뜻한 연대와 부부의 사랑을 회상하는 서정시로 읽힙니다. 눈이라는 소재가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그리움을 연결하는 매개체로 아름답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작품평

「그 겨울의 폭설」은 눈 내리는 현재의 풍경에서 시작하여 과거의 한 겨울날로 자연스럽게 독자를 이끈다. 시인은 폭설로 인해 길이 막히고 차가 미끄러지는 위기의 순간을 섬세하게 묘사하면서도, 그 속에서 만난 타인의 도움과 이해를 통해 인간애의 온기를 드러낸다.

특히 "낯선 친절 하나가 길보다 먼저 길을 열어 주었다"라는 구절은 이 작품의 핵심 정서를 압축한다. 물리적인 길이 막힌 상황에서도 사람의 마음이 새로운 길을 열어 준다는 깨달음이 깊은 울림을 준다. 폭설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삶의 시련을 상징하며, 그 시련 속에서 피어나는 연대와 사랑은 등불처럼 따뜻하게 빛난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붉은 벽돌집과 아이의 웃음은 고난 끝에 도착한 안식처이자 가족의 행복을 상징한다. 그리고 마지막 연에서는 이미 세상을 떠난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 조용히 드러난다. "그 겨울의 사랑은 아직 녹지 않은 눈으로 남아"라는 표현은 순수하고 변함없는 사랑의 지속성을 아름답게 형상화하며 작품의 감동을 한층 깊게 만든다.

이 시는 담담한 언어로 실제 삶의 한 장면을 그려내면서도, 기억·감사·사랑·그리움이라는 보편적 정서를 섬세하게 녹여낸다. 차가운 폭설의 풍경 속에서 오히려 더 선명하게 빛나는 인간의 따뜻함과 부부애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작품이다. 특히 결말의 여운은 한 편의 겨울 풍경화처럼 잔잔하면서도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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