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걸음의 결
저녁 빛이 골목 끝에 오래 머물 때,
옥분아, 사람을 보려거든 먼저 걸음을 보아라.
걸음은 말보다 먼저
마음의 결을 드러내는 법.
거들먹거리는 발끝은 바람만 좇고,
들뜬 걸음은 책임을 가볍게 흩어 놓는다.
성급한 삶은 스스로를 닳게 하여
끝내 빈 그릇처럼 울리게 되느니.
등을 곧게 세우고, 보폭은 지나치지 않게,
자신감은 조용히 품은 채
묵묵히 앞을 향해 가는 이를 보아라.
그 걸음 안에는 삶을 견디는 힘과
내일을 여는 기상이 깃들어 있단다.
옥분이는 햇살 같은 미소로,
저문 길 위에 발자국 하나를 바라본다.
이 시 **「걸음의 결」**은 ‘걸음’을 단순한 신체 동작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과 삶의 태도를 드러내는 상징으로 삼아, 삶의 품격과 자세를 이야기하는 작품입니다.
작품평
시는 저녁 무렵의 고요한 풍경에서 시작됩니다. “저녁 빛이 골목 끝에 오래 머물 때”라는 첫 구절은 하루가 저물어 가는 시간의 사색적 분위기를 조성하며, 화자가 옥분이에게 전하는 삶의 지혜가 자연스럽게 펼쳐질 무대를 마련합니다.
이 작품의 핵심은 “사람을 보려거든 먼저 걸음을 보아라”라는 가르침에 있습니다. 시인은 걸음을 통해 인간의 성품과 가치관을 읽어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거들먹거리는 발끝”, “들뜬 걸음”, “성급한 삶” 등은 허영과 경박함, 조급함을 상징하며, 이러한 태도가 결국 자신을 소모시키고 공허함에 이르게 한다고 경고합니다.
반면 “등을 곧게 세우고, 보폭은 지나치지 않게” 걷는 사람은 절제와 균형을 갖춘 인물로 그려집니다. 특히 “자신감은 조용히 품은 채”라는 표현은 진정한 자신감이 과시가 아니라 내면의 단단함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이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덕목인 겸손과 성실함을 잘 드러냅니다.
후반부의 “삶을 견디는 힘”과 “내일을 여는 기상”이라는 표현은 바른 걸음이 곧 바른 삶으로 이어진다는 시인의 신념을 함축합니다. 걸음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이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의지의 표현인 것입니다.
마지막 구절에서 옥분이는 “햇살 같은 미소”로 발자국을 바라봅니다. 이는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순수한 마음과 희망을 상징하며, 시 전체에 따뜻한 여운을 남깁니다. 훈계적 메시지를 담고 있으면서도 부드러운 정서와 서정성을 잃지 않은 점이 이 작품의 미덕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