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다섯 살 사랑
거실 창 너머 붉은 노을이 번질 무렵
다섯 살 외손자가
맑은 눈으로 내 곁에 다가와 말한다
“할머니, 오늘은 가지 마세요
옛날이야기 들려주고 우리 집에서 자요”
그 말끝은 어느새 자장가에 흐려지고
아이는 꿈나라로 가고 있다
늦은 밤 종종걸음으로 내 집 아파트
현관 앞에 도착하니 가방에 열쇠가 없다
눈 씻고 찾아보고 왔던 길을 되짚어도
그 어디에도 없다
다시 딸의 집으로 돌아와 뒤척이는 밤
아침에 열쇄공이 가는 철사 넣자마자
현관문이 활짝 열린다.
그때 전화벨이 요란한 소리로 울린다
“엄마, 놀라지 마세요
주환이가…”
“아이구 어데 다쳤나” 숨이 멎는다
“대한민국 짜자잔 짠짠!
할머니 가지 말라고 열쇠 숨겼대요”
다섯 살의 순수한 사랑
그 순간 바다가 되어 감동에 잠긴다
작품평 — 「다섯 살 사랑」
이 작품은 다섯 살 외손자의 순수한 사랑을 일상의 작은 사건을 통해 감동적으로 그려낸 서정시입니다. 특별한 수식이나 과장 없이도 아이의 천진난만한 마음이 자연스럽게 드러나 독자에게 따뜻한 웃음과 뭉클함을 선사합니다.
시의 전반부에서는 저녁노을이 물드는 정경 속에서 손자가 "오늘은 가지 말고 우리 집에서 자라"고 말하는 장면을 배치하여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특히 "그 말끝은 어느새 자장가에 흐려지고"라는 표현은 아이가 할머니를 붙잡고 싶어 하면서도 잠에 스르르 빠져드는 모습을 아름답게 포착해 냈습니다.
중반부에서는 열쇠를 잃어버린 사건이 등장하며 긴장감을 형성합니다. 밤새 열쇠를 찾지 못해 애태우는 화자의 모습은 독자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마침내 아침 전화 한 통으로 그 비밀이 밝혀지면서 시는 반전의 묘미를 선사합니다.
후반부의 "할머니 가지 말라고 열쇠 숨겼대요"라는 대목은 작품의 절정입니다. 다섯 살 아이가 할머니와 더 함께 있고 싶은 마음에 벌인 순진한 행동이 드러나면서 독자는 미소를 짓게 됩니다. 이어지는 "다섯 살의 순수한 사랑 / 그 순간 바다가 되어 감동에 잠긴다"는 표현은 아이의 작은 사랑이 화자의 마음속에서는 한없이 크고 깊게 느껴졌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합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가족 간의 사랑을 꾸밈없는 언어로 진솔하게 표현했다는 점입니다. 일상에서 흔히 지나칠 수 있는 에피소드를 따뜻한 시적 감성으로 승화시켜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어린 손주, 자녀, 혹은 어린 시절의 순수한 사랑을 떠올리게 합니다. 특히 마지막의 반전과 감동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여운을 남기는 수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총평:
「다섯 살 사랑」은 손자의 순수한 애정을 열쇠 사건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로 풀어낸 따뜻한 가족시입니다. 웃음과 감동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으며, 아이의 맑고 순수한 사랑이 독자의 마음까지 환하게 밝혀 주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