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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 시 작품

40. 레이션 박스

작성자박하|작성시간26.06.18|조회수2 목록 댓글 0

40. 레이션 박스

                     

 

 

레이션 박스

1952, 성탄절 전날

후생원에서 보내온

성탄선물 레이션 박스 하나.

"우와, 좋다!"

우리 세 자매의 함성이

방 안 가득 터져 나왔다.

 

초콜릿, , 드롭스사탕, 비스킷,

콩 통조림, 소고기 통조림까지.

처음 보는 먹거리들이

보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여섯 살 여자아이는

어느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천지빼까리 널린 먹거리에

놋숟가락은 덩실덩실 춤추고,

입은 반소쿠리만 하게 벌어져

세상 모든 맛을 삼켰다.

아직 뜯지 않은

작고 납작한 사각봉투 하나 열었더니

거무스름한 가루가

검은 설탕인가 싶어 입에 넣었는데,

"에이구, 쓰다!"

퇘퇘 뱉어내며 난리법석.

"맥지로 묵었네, 시껍했다."

입 안을 숭늉으로 헹구며

한참을 호들갑 떨었다.

 

훗날에야 알았다.

그 쓰디쓴 가루가 커피였음을.

세월은 입맛도 바꾸어

이제는 그 쓰디쓴 커피 한 잔이

식후의 작은 쉼이 되고,

 

반세기 넘는 시간을 건너와

어린 날의 성탄절을

은은히 데워준다.

 

작품평: 레이션 박스

「레이션 박스」는 1950년대 전후(戰後) 한국의 궁핍한 생활상과 어린아이의 순수한 시선을 따뜻하게 담아낸 회고적 서정시이다. 화자는 성탄절 전날 후생원에서 받은 레이션 박스를 통해 당시 아이들이 경험한 놀라움과 기쁨을 생생하게 되살려 낸다.

시의 전반부는 초콜릿, 껌, 드롭스사탕, 비스킷, 통조림 등 당시에는 매우 낯설고 귀했던 먹거리들이 쏟아져 나오는 장면을 통해 전쟁 직후 결핍의 시대상을 보여 준다. 특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비유된 여섯 살 소녀의 모습은 아이의 상상력과 순수한 행복감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며, "놋숟가락은 덩실덩실 춤추고"와 같은 의인화 표현은 기쁨이 넘치는 분위기를 한층 생동감 있게 만든다.

작품의 중심 장면은 커피를 설탕으로 착각해 입에 넣었다가 쓴맛에 놀라는 일화이다. "맥지로 묵었네, 시껍했다"와 같은 사투리 표현은 당시의 현장감을 살리고,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한 반응을 유머러스하게 보여 준다. 이 대목은 독자에게 웃음을 주는 동시에 시대적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후반부에서는 어린 시절의 경험과 현재의 삶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한때는 쓰기만 했던 커피가 이제는 "식후의 작은 쉼"이 되었다는 고백은 세월의 흐름과 삶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또한 마지막 구절인 "어린 날의 성탄절을 은은히 데워준다"는 기억이 현재를 따뜻하게 위로하는 힘을 지녔음을 함축하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 작품은 단순한 추억담을 넘어, 결핍 속에서도 행복을 발견하던 어린 시절의 순수함과 시간이 지나며 새롭게 의미를 얻는 기억의 가치를 잔잔하고 따뜻하게 전하고 있다. 특히 구체적인 생활 소재와 유머, 그리고 회상의 정서가 조화를 이루어 독자들에게 공감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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