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머루와 다래 먹고/ 수작
머루와 다래 먹고
청산에 살고 싶다
뒤돌아보면 까득까득,
여름의 이빨이 과육처럼 씹히던 밤
십대의 세 자매는
대청마루에 몸을 눕히고
하늘을 이불처럼 덮었다
가까이 내려앉은 푸른 별들
눈동자 깊숙이 스며들어
말없이 흔들리던 시간
“살으리 살으리랏다 청산에 살으리랏다”
입술 끝에 맴돌던 『청산별곡』은
머루처럼 검게 익어 떨어지고
“얄리 얄리 얄라성 얄라리 얄라”
후렴은 바람에 풀려나
여름밤 짧은 꿈속으로 흩어졌다
그때 청산별곡을 듣고 있던 별 하나
우리 어깨에 잠시 내려앉았다가
유성이 되어 먼 어둠으로 흘러갔다
별빛이 스러진 자리에도
무르익은 여름의 맛은 남아
우리는 끝내 그 계절을 다 삼키지 못한 채
저마다의 청산을 향해 흘러갔다
이 시는 머루와 다래라는 토속적 이미지를 통해 유년과 청춘의 기억, 그리고 각자가 꿈꾸는 이상향(청산)에 대한 그리움을 서정적으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작품 감상
시의 첫머리인
머루와 다래 먹고 / 청산에 살고 싶다
는 고려가요 청산별곡의 유명한 구절을 변주하며 시작됩니다. 화자는 단순히 자연 속 삶을 동경하는 것이 아니라, 머루와 다래의 맛으로 상징되는 순수하고 풍요로운 한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드러냅니다.
특히
뒤돌아보면 까득까득,
여름의 이빨이 과육처럼 씹히던 밤
이라는 표현은 매우 감각적입니다. 여름을 살아 있는 존재처럼 의인화하고, 기억 속 계절을 '씹히는 과육'으로 형상화하여 청소년기의 생생한 체험을 독자에게 전달합니다.
또한
십대의 세 자매는
대청마루에 몸을 눕히고
하늘을 이불처럼 덮었다
에서는 농촌의 여름밤 풍경과 가족 공동체의 정서가 따뜻하게 묘사됩니다. 하늘을 이불처럼 덮었다는 표현은 자연과 인간이 하나였던 시절의 평온함과 자유를 상징합니다.
시의 중심에는 청산별곡의 노랫말이 자리합니다.
“살으리 살으리랏다 청산에 살으리랏다”
“얄리 얄리 얄라성 얄라리 얄라”
원전의 후렴을 단순 인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화자들의 추억과 결합시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냅니다. 「청산별곡」의 청산이 현실을 벗어난 이상향이었다면, 이 시의 청산은 각자의 성장 과정 속에서 간직한 가장 아름다운 기억의 장소로 읽힙니다.
후반부의
그때 청산별곡을 듣고 있던 별 하나
우리 어깨에 잠시 내려앉았다가
유성이 되어 먼 어둠으로 흘러갔다
는 인상적인 상징 장면입니다. 별은 젊음, 꿈, 순수한 시간의 표상이며, 유성으로 사라지는 모습은 결국 붙잡을 수 없는 성장과 시간의 흐름을 암시합니다.
마지막 연은 시 전체의 정서를 집약합니다.
우리는 끝내 그 계절을 다 삼키지 못한 채
저마다의 청산을 향해 흘러갔다
'그 계절을 다 삼키지 못했다'는 표현은 청춘의 아름다움과 아쉬움을 동시에 담고 있습니다. 누구도 완전한 행복이나 이상을 소유하지 못한 채 살아가지만, 각자는 자신만의 청산을 찾아 나아간다는 성숙한 인식으로 시를 마무리합니다.
종합 평가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감각적 언어와 고전의 현대적 재해석에 있습니다. 머루·다래·대청마루·별빛 같은 향토적 소재가 고려가요 「청산별곡」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면서, 개인적 추억을 보편적 향수의 정서로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시 전반에 흐르는 서정성이 과장되지 않고 담백하게 유지되어, 독자는 자신의 어린 시절과 잃어버린 계절을 함께 떠올리게 됩니다. 마지막의 "저마다의 청산"이라는 표현은 이상향을 단일한 공간이 아니라 각자의 삶 속에서 찾아가는 가치로 제시하며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평하자면, 이 작품은 기억·성장·그리움의 정서를 고전적 서정과 현대적 감각으로 아름답게 결합한 수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