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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 시 작품

53.향기어린 꽃의 늦은 봄 학사모

작성자박하|작성시간26.06.20|조회수0 목록 댓글 0

53.향기어린 꽃의 늦은 봄 학사모

 

 

분홍 복사꽃 피던 시절,

한 소녀는 제 꿈을 접어

동생들의 내일을 품에 안았다.

 

무너진 집안의 기둥 아래서

청춘은 가장 먼저 희생을 배웠고,

월급봉투 하나로

가족의 긴 겨울을 건너게 했다.

 

판사를 꿈꾸던 동생이

별이 되어 떠난 밤에도

언니는 눈물 대신 기도를 켜두었다.

 

세월은 누구도 기다리지 않았지만

언니는 늦게 핀 꽃처럼

책장을 넘기며 길을 만들었다.

 

마침내 쉰셋,

진분홍 비단 한복 위에 학사모를 쓰고

수석의 이름으로 단상에 섰을 때,

한 장의 졸업장이 아니라

희생이 꽃으로 피어나는 순간이었다.

 

백합처럼 맑은 향기는

가족의 삶 구석구석에 스며들고,

이름 없이 흘려보낸 사랑은

먼 아프리카 아이들의 웃음이 되어

오늘도 어딘가에서 자라고 있다.

 

언니를 생각하면

늦게 핀 꽃 한 송이가 아니라

긴 세월 끝에야 비로소 밝아지는 별 하나가 떠오른다.

 

그 별은 지금도 말없이 빛나고,

밤이 깊을수록 더욱 환하게

누군가의 길 위에 머물고 있다.

 

 

*작품평

작품평 – 「향기어린 꽃의 늦은 봄 학사모

 

이 작품은 한 여성의 희생과 사랑, 그리고 늦은 성취를 서정적으로 형상화한 헌정시의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개인의 삶을 넘어 가족과 공동체를 품어낸 한 사람의 생애를 이라는 상징을 통해 아름답게 승화시키고 있습니다.

 

시의 전반부는 분홍 복사꽃 피던 시절이라는 따뜻한 이미지로 시작하여, 스물한 살의 젊은 나이에 자신의 꿈을 접고 가족을 위해 살아야 했던 언니의 삶을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특히 청춘은 가장 먼저 희생을 배웠고라는 구절은 한 사람의 삶에 새겨진 책임과 헌신의 무게를 간결하면서도 깊이 있게 전달합니다.

 

중반부에서는 동생의 죽음이라는 비극적 사건이 등장하지만, 시는 슬픔에 머물지 않고 눈물 대신 기도를 켜두었다는 표현을 통해 인물의 강인한 내면과 신앙적 사랑을 보여줍니다. 이는 독자에게 깊은 울림과 경건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후반부의 백미는 쉰셋의 나이에 야학을 통해 졸업의 꿈을 이루는 장면입니다.

늦게 핀 꽃처럼 / 책장을 넘기며 길을 만들었다는 구절은 배움에 늦음이 없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며, 진분홍 비단 한복과 학사모의 이미지는 인생의 결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특히 수석 졸업이라는 성취는 단순한 학업의 성공을 넘어 평생의 인내와 노력에 대한 보상처럼 느껴집니다.

 

마지막 연에서는 백합의 향기와 별의 빛을 통해 언니의 삶이 가족을 넘어 사회와 세계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먼 아프리카 아이들의 웃음이라는 표현은 나눔과 사랑의 결실을 구체화하며, 결말의 밤이 깊을수록 더욱 환하게는 인물의 존재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빛난다는 의미를 함축합니다.

 

전체적으로 이 작품은 진정성 있는 삶의 기록과 서정적 상상력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희생·사랑·배움·나눔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감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입니다. 화려한 수사보다 진솔한 서사가 중심을 이루어 독자의 공감과 존경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며, 한 사람의 인생을 꽃과 별의 이미지로 아름답게 기념한 따뜻한 헌정시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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