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별꽃목걸이
감나무 가지 끝마다
까치밥 몇 알은 남겨두라시던
할머니의 낮은 목소리는
해 질 녘 엷게 피어오른 연기처럼
오래도록 마당을 맴돌았다.
햇살이 기울어질 무렵이면
가을빛에 물든 붉은 감 몇 알이
허공에 고요히 매달려
세상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은 듯
한 폭의 묵화처럼 흔들렸다.
감꽃이 별무리처럼 피어나던 날
흙냄새 짙은 그늘 아래서
어린 세 자매의 웃음소리가
무명실처럼 얽히고 풀리며
바람결 따라 천천히 번져갔다.
그날, 일곱 살의 나는
가느다란 목을 살며시 내밀어
작은 감꽃들 하나하나 실에
꿰어 만든 별꽃목걸이 목에 걸었지
배꼽 아래까지 길게 흘러내리던
노르스름한 꽃송이들은
내 가슴에 피어난 환한 우주 하나.
숨을 들이쉴 때마다
연둣빛 계절이 몸속으로 스며들고
입가에는 맑은 웃음 햇살로 피어났지.
세월은 흘러 감꽃도 지고
감나무그늘도 먼 기억 속으로 물러났지만
그날의 별꽃목걸이는 아직도
내 마음에 별빛으로 익어가고 있다.
문득 삶이 쓸쓸해지는 날이면
보이지 않는 그 목걸이를 꺼내어 걸고
나는 감꽃 향기 속을 뛰어다니던
일곱 살 아이가 된다.
그 별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래전 목에 걸었던 꽃들은
이제 추억이라는 보석이 되어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조용히 빛나고 있다.
*작품평(6/20토)이 시 **「별꽃목걸이」**는 감나무와 감꽃이라는 친숙한 자연의 소재를 통해 유년의 기억과 가족의 온기,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추억의 가치를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작품평
시의 첫머리는 "까치밥 몇 알은 남겨두라"는 할머니의 목소리로 시작됩니다. 이는 단순한 생활의 지혜를 넘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던 세대의 넉넉한 마음을 상징합니다. "해 질 녘 엷게 피어오른 연기처럼 오래도록 마당을 맴돌았다"는 표현은 할머니의 가르침이 화자의 기억 속에 깊이 스며 있음을 정감 있게 보여줍니다.
중반부에서는 감꽃이 피던 계절의 풍경과 어린 세 자매의 웃음소리가 따뜻하게 펼쳐집니다. 특히 "웃음소리가 무명실처럼 얽히고 풀리며"라는 구절은 목걸이를 꿰는 실과 어린 시절의 인연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며 시적 통일성을 높입니다. 또한 감꽃을 꿰어 만든 "별꽃목걸이"는 작품의 중심 상징으로, 단순한 놀이의 결과물이 아니라 어린 화자의 꿈과 행복, 순수한 세계를 담아낸 소중한 기억의 형상으로 기능합니다.
"내 가슴에 피어난 환한 우주 하나"라는 표현은 작은 감꽃목걸이가 어린아이에게는 무한한 상상력과 기쁨의 세계였음을 보여주는 인상적인 대목입니다. 평범한 자연물이 우주적 이미지로 확장되면서 시의 정서적 깊이가 한층 풍부해집니다.
후반부에 이르러 감꽃은 지고 감나무 그늘도 먼 기억 속으로 사라지지만, 별꽃목걸이는 "마음에 별빛으로 익어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익어간다'는 표현은 감이 익어가는 모습과 추억이 성숙해지는 과정을 절묘하게 겹쳐 놓으며 작품 전체를 하나의 유기적인 구조로 묶어줍니다.
마지막 연은 이 시의 주제를 가장 아름답게 드러냅니다. 어린 시절 목에 걸었던 감꽃목걸이는 이제 "추억이라는 보석"이 되어 화자의 내면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이는 세월이 흘러도 인간을 지탱하는 힘이 물질이 아닌 기억과 사랑, 그리고 순수한 경험임을 조용히 일깨워 줍니다.
전체적으로 이 작품은 자연 친화적 정서와 유년의 향수를 부드럽게 결합하여 독자에게 따뜻한 울림을 전합니다. 화려한 수사보다 맑고 서정적인 이미지로 감정을 전달하며, 감꽃목걸이라는 상징을 통해 "추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빛나는 별이 된다"는 메시지를 아름답게 형상화한 수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할머니의 사랑, 자매의 웃음, 어린 시절의 순수가 한 편의 서정화처럼 어우러져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