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봄날의 학예회
부제: —1956년 학예회에서
진달래 피던 봄, 학예회가 있던 날
납작한 얼굴의 아홉 살 여자아이
목소리 맑고 크다는 이유 하나로
이필득 선생님은 3학년 대표로 독창을 맡겼다
교실 두 칸을 허문 강당
내빈과 전교생의 숨결이 가득 차 있던 그 자리
“진달래 피었구나, 눈 녹은 산에…”
첫 소절이 터지자
노래는 봇물처럼 번져갔다
우레 같은 박수 소리,
그 한순간, 나는 꽃잎보다 가벼워져 있었다
엄마가 지어준 포플린 치마
배 앞의 반달주머니마저
괜히 배가 나온 듯 신경 쓰이던 몸
그 배가 천천히, 쑥 내려앉아
그 당시 ‘맘보’ 노래처럼 멋진 숙녀 되었지
노래를 마치자
담임선생님이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셨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강당을 나오니
복도 창으로 봄 햇살이 길게 들어오고
운동장에는 막 녹은 흙냄새가 향기롭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치마 자락이 종아리에 가볍게 스쳤고
뒤쪽에서 누군가 “잘했다”는 소리와
발밑에는 아직도
힘찬 박수의 울림이 들려오는 것 같아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던 설렘!
*작품평
이 시는 한 편의 개인 기억을 통해 “첫 무대 경험”이 남긴 정서의 결을 섬세하게 복원하는 작품입니다. 1956년이라는 구체적 시간 배경과 “학예회”라는 공동체적 사건을 통해, 한 개인의 내면이 사회적 경험 속에서 어떻게 처음으로 확장되는지를 보여줍니다.
가장 두드러지는 미덕은 감각적 이미지의 정밀함입니다. “교실 두 칸을 허문 강당”, “진달래 피었구나”, “막 녹은 흙냄새” 같은 표현들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공간과 시간, 계절의 질감을 동시에 호출합니다. 특히 봄이라는 계절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성장과 각성의 시간”으로 기능하면서, 화자의 정서 변화와 자연스럽게 겹쳐집니다.
또한 이 작품은 ‘몸의 감각’을 기억의 중심에 둡니다. “배가 천천히, 쑥 내려앉아” 같은 표현은 어린 화자가 무대 위에서 경험한 긴장과 해방감을 신체 감각으로 전환해 보여줍니다. 이는 단순한 심리 서술보다 훨씬 더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성장의 순간’을 구현합니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박수와 시선이 만들어내는 자기 인식의 변화입니다. “꽃잎보다 가벼워져 있었다”는 비유는 외부의 인정이 개인의 자의식을 어떻게 변형시키는지 잘 드러냅니다. 무대 경험이 단순한 성공의 기억이 아니라, 자아가 처음으로 타인의 시선을 통해 구성되는 순간으로 그려집니다.
결말부의 “뒤를 돌아보던 설렘”은 이 작품의 핵심 정서를 압축합니다. 과거의 박수 소리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의 감각으로 남아 있는 듯한 이 여운은, 기억이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감정 구조를 계속 형성하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전체적으로 이 시는 서정적 회상과 감각적 디테일이 균형을 이루며, 개인의 첫 성취 경험을 보편적인 성장 서사로 확장시키는 힘을 지닌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