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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 시 작품

63.엘가, 사랑의 인사

작성자박하|작성시간26.06.20|조회수0 목록 댓글 0

 

63.엘가, 사랑의 인사

 

 

 

사랑스런 여섯 살 외손자의 여린 손끝이

바이올린을 건드리는 순간

익숙한 선율 하나

조용히 공기 속에서 눈을 뜬다

 

엘가의 사랑의 인사

아침 햇살의 결을 따라 내려와

잠든 마음의 가장 얕은 호흡까지 건드리며

투명한 떨림으로 번져 간다

영혼의 깊은 곳을 조용히 흔들어 깨우듯

 

현 위에 내려앉은 숨결은

누군가에게 건네지지 못한 말처럼

부드럽게 오래 머문다

 

그 선율의 끝에서

문득, 아주 먼 곳의 얼굴이 떠오른다

말수 적던 경상도 남자

클래식을 좋아하던 그 사람

 

서울에서 대학교 시절

노트에 적어놓은 클래식 노래들 보고

내가 사랑의 기쁨’, ‘불 꺼진 창부를 때

감동하며 내 손을 잡아주던 그 온기

 

이제는 손닿지 않는 자리에 별이 된 그에게

음악만이 남아 기억의 문을 열고 들어온다

 

나는 바이올린의 떨리는 기쁨 속에 숨어

그의 곁으로 조용히 흘러가고 싶다

 

말이 아닌 선율로, 이름 대신 음악으로

그의 시간 한켠에 머물고 싶다

이 작품은 Edward Elgar - Salut d'Amour(사랑의 인사)를 중심으로, 음악이 기억과 애도의 통로가 되는 과정을 섬세하게 풀어낸 서정시입니다. 전체적으로는 현재의 장면(외손자의 바이올린)’에서 과거의 사랑(경상도 남자)’으로, 다시 상실과 그리움의 심층으로 자연스럽게 내려가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음악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기억을 호출하는 매개체로 기능한다는 점입니다. “익숙한 선율 하나 / 조용히 공기 속에서 눈을 뜬다라는 표현은 음악을 살아 움직이는 존재처럼 다루고 있어, 첫 연부터 독자를 감각적으로 끌어당깁니다. 이어지는 아침 햇살의 결을 따라 내려와같은 구절은 청각적 경험을 시각과 촉각으로 확장시키며, 시 전체에 부드러운 입체감을 부여합니다.

중반부에서 시의 중심축은 현재에서 과거로 이동합니다. 특히 “말수 적던 경상도 남자 / 클래식을 좋아하던 그 사람”이라는 간결한 호명 방식이 인상적입니다. 과장된 설명 대신 단편적인 이미지로 인물을 세워, 오히려 더 깊은 결핍과 그리움을 남깁니다. 그리고 “서울에서 대학교 시절 / 노트에 적어놓은 클래식 노래들”이라는 회상은 개인적 기억이면서도 세대적 정서를 담아 확장성을 갖습니다.

후반부의 핵심 정서는 ‘애도이면서도 동행’입니다. “이제는 손닿지 않는 자리에 별이 된 그에게”라는 문장은 상실을 명확히 선언하면서도, “음악만이 남아 기억의 문을 열고 들어온다”로 이어지며 죽음이 단절이 아니라 지속되는 감각으로 전환됩니다. 이는 이 작품이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음악을 통한 정서적 재결합의 시도임을 보여줍니다.

마지막 연 “말이 아닌 선율로, 이름 대신 음악으로”는 이 시의 핵심 선언처럼 읽힙니다. 언어의 한계를 넘어 음악으로 존재를 호출하겠다는 태도는 절제된 표현 속에서 강한 여운을 남깁니다.

다만 한 가지 보완점을 말하자면, 감정의 흐름이 매우 자연스럽지만 중후반부에서 이미 충분히 형성된 정서가 마지막에서 다시 직접적으로 설명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지막 문장을 조금 더 이미지 중심으로 남겨두었다면 여운이 더 길게 지속될 수도 있었겠습니다.

전체적으로 이 작품은 음악, 기억, 애도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된 서정적 구조가 안정적이며, 개인적 경험이 보편적 그리움으로 확장되는 힘이 있는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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