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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 시 작품

66.그 여름의 손 /수작

작성자박하|작성시간26.06.21|조회수0 목록 댓글 0

66.그 여름의 손 /수작

 

 

 

과수원에서 아버지는

누런 삼베바지에 삼베적삼을 걸치고

여섯 살 나는

꽃무늬 분홍 원피스를 나풀거리며

작은 손 하나 아버지께 맡긴 채

가뭄 깊던 여름을 따라갔다

 

아버지가 모터의 잠을 깨우자

땅속 깊이 숨어 있던 물이

콸콸 솟아올라

사과밭 고랑마다 흘러들었다

목마름에 지쳐 있던 나무들은

푸른 숨을 내쉬었고

찰찰찰, 물소리가

햇빛 타는 과수원에 번져 갔다

 

아버지가 물길을 살피는 동안

나는 창고 안을 기웃거리다

망치와 톱, 낫과 전지가위 사이에서

커다란 포대 하나를 보았다

입을 벌린 채

하얀 가루를 가득 품고 있던 포대

 

그 시절 귀하던 설탕인 줄 알고

반가운 마음에

한 줌 가득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순간

혀끝이 타들어 가고

입술은 비뚤어지며 굳어 갔다

 

터져 나온 울음소리

달려온 아버지는

다급한 손으로 내 입안 씻어 내고

연신 등을 쓸어 주었다

"우리 강아지, 우짜자고 이걸 묵었노."

떨리던 그 목소리 속에는

꾸중보다 먼저

놀란 사랑이 들어있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사과밭 고랑을 흐르던 물소리와

내 입안을 씻어 내던 아버지의 손길은

한 줄기 맑은 물이 되어

지금도 내 가슴을 흐른다

 

그 여름, 아버지는

가뭄 든 사과나무만 물 댄 것이 아니었다.

철없던 어린 딸 하나

마르지 않도록 살려주셨다.

 

이 시 **〈그 여름의 손〉**은 어린 시절의 실제 체험을 바탕으로, 아버지의 사랑과 보호를 따뜻하게 그려낸 서정시입니다. 단순한 추억 회상이 아니라, 시간이 흐른 뒤에야 깨닫게 되는 부모의 사랑을 물의 이미지와 연결하여 감동적으로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작품평

시는 가뭄이 깊던 여름날 과수원 풍경으로 시작됩니다. 누런 삼베옷을 입은 아버지와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어린 딸의 모습은 소박한 농촌의 정경을 생생하게 보여 줍니다. 특히 아버지의 손을 잡고 따라가는 아이의 모습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신뢰와 보호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드러냅니다.

중반부에서는 물을 끌어올려 사과나무의 목마름을 해소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콸콸", "찰찰찰"과 같은 의성어를 사용하여 과수원에 생기가 되살아나는 모습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였습니다. 이 물은 단순한 농업용수가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사랑의 상징으로 기능합니다.

시의 전환점은 아이가 석회를 설탕으로 착각해 입에 넣는 사건입니다. 어린아이 특유의 천진함이 드러나는 동시에, 예상치 못한 위기가 긴장감을 형성합니다. 이때 아버지는 꾸짖기보다 먼저 아이를 살피고 달래며 보듬어 줍니다. 특히 "우리 강아지, 우짜자고 이걸 묵었노."라는 사투리 표현은 꾸밈없는 부성애를 더욱 진솔하고 따뜻하게 전달합니다.

마지막 연은 작품의 핵심 의미를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과수원의 나무를 살리기 위해 물을 대던 아버지가 사실은 "철없던 어린 딸 하나 마르지 않도록 살려주셨다"는 깨달음에 이르면서, 물은 곧 아버지의 사랑이 되고 아버지의 손길은 평생의 생명수로 승화됩니다. 제목인 그 여름의 손 역시 단순한 신체의 손이 아니라 위기의 순간 딸을 구하고 평생의 기억으로 남은 사랑의 손을 의미합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과장된 감정 표현 없이 구체적인 체험과 기억을 통해 자연스럽게 감동을 이끌어낸다는 점입니다. 물소리, 과수원, 삼베옷, 사투리 등 생활 속 이미지들이 진정성을 더하며, 마지막 구절은 독자들에게 부모의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잔잔하게 되새기게 합니다. 어린 시절의 한 사건을 통해 평생 잊히지 않는 아버지의 사랑을 맑고 따뜻하게 담아낸 수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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