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순사놀이 노래
학교 종이 마지막으로 울리고
가방끈이 어깨에서 미끄러질 때
우리는 신작로 위에 섰다
먼지 날리는 흙길, 전깃줄 아래로
해가 길게 늘어져 있던 오후
동무 하나가 먼저 웃으며 외쳤다
“앞에 가면 도둑놈!”
뒤에 선 아이가 몸을 움찔 돌리면
“뒤에 가면 순사!”
누가 먼저 될까 두려워서
아이들은 서로 한 발씩 늦추며
자기 그림자를 남겨 두고 걸었다
그때 순사는
검은 제복보다 더 무거운 이름이었다
호각 소리만 떠올려도
골목이 좁아지는 것 같았다
해질 무렵이면 그 노래는
우리 발끝에서 다시 살아나
담벼락과 전봇대 사이를 기어 다녔다
지금
저녁노을이 창가에 걸릴 때면
아홉 살의 내가
먼지 묻은 운동화로 조용히 돌아와
햇빛 속에 서 있다
이 작품 「순사놀이 노래」는 아동기의 놀이 장면을 통해 식민지적 기억의 그림자와 ‘두려움의 언어화’를 매우 섬세하게 끌어올린 서정시입니다. 단순한 회상시라기보다, 개인 기억 속 놀이가 역사적 폭력의 잔재와 맞물리면서 현재의 자아까지 되돌아오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우선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놀이의 언어’입니다. 아이들이 외치는 “앞에 가면 도둑놈!”, “뒤에 가면 순사!” 같은 말은 단순한 장난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권력과 공포의 위치가 이미 게임 규칙처럼 내재돼 있습니다. 즉, 놀이는 무해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위계와 억압의 흔적을 그대로 재현하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여기서 ‘순사’라는 단어는 단순한 역할이 아니라, “검은 제복보다 더 무거운 이름”으로 형상화되며 역사적 폭력의 잔상을 압축합니다.
공간의 설정도 효과적입니다. “신작로”, “먼지 날리는 흙길”, “전깃줄 아래” 같은 이미지들은 근대화 이전과 이후가 겹쳐 있는 경계 공간을 만들어 냅니다. 이 공간은 명확한 현재도 과거도 아닌, 기억이 떠도는 장소처럼 느껴집니다. 특히 “해가 길게 늘어져 있던 오후”는 시간의 정지감과 함께 어린 시절 특유의 느린 감각을 잘 살리고 있습니다.
또한 이 시의 핵심 장치는 ‘자기 그림자를 남겨두고 걷는다’는 표현입니다. 이는 단순한 시적 이미지라기보다, 두려움 속에서 자신을 분리시키는 심리적 움직임으로 읽힙니다. 아이들은 실제로 누군가에게 쫓기지 않지만, 역할놀이 속 권력의 언어 때문에 스스로를 계속 지연시키고 회피합니다. 이 지점에서 놀이가 곧 억압의 반복 구조로 변합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시는 과거의 놀이에서 현재의 기억으로 자연스럽게 이행합니다. “지금 / 저녁노을이 창가에 걸릴 때면” 이후의 전환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기억의 재침투처럼 작동합니다. 아홉 살의 ‘나’가 현재의 공간으로 돌아오는 장면은 시간의 직선성을 해체하며, 트라우마적 기억이 현재형으로 지속된다는 감각을 만듭니다.
전체적으로 이 작품은
아동 놀이의 무해함을 해체하고
언어 속에 내재된 폭력성과 역사성을 드러내며
개인 기억과 집단 기억의 경계를 겹쳐 놓는 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더 강화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순사’라는 역사적 단어가 주는 무게가 매우 강하기 때문에, 독자에 따라서는 상징의 층위가 다소 직접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부분에서 은유적 거리감이 조금 더 확보되면, 감정의 여운이 더 길게 남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의 핵심 성취는 분명합니다. 어린 시절의 놀이를 통해 “두려움이 어떻게 놀이의 규칙이 되는가”를 보여주고, 그것이 결국 현재의 기억 속에서도 살아 움직인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형상화했다는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