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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 시 작품

77.실수와 박하엿

작성자박하|작성시간26.06.22|조회수0 목록 댓글 0

77.실수와 박하엿

 

 

여름, 갓 미장한 목욕탕 세면실 바닥

나는 이미 다 마른 줄 알았다.

 

아홉 살의 나는 짚수세미를 움켜쥐고

박 바가지 물을 끼얹으며

한 번, 또 한 번 계속 힘껏 문질렀다

 

깨끗해질수록 더 깨끗해지라고

검은 물이 배어 나올수록

잘하고 있는 줄 알았다

 

그때

숭늉을 뜨러 오던 엄마의 목소리

번개처럼 떨어졌다

아이구야, 다 된 걸 망쳐놨구나.”

그 말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에젖은 손바닥이 더 차갑게 남았다

 

좀 늦게야

내 손이 지운 것은 더러움이 아니라

막 마르던 시간이라는 걸

 

작은방 구석에 웅크려 무릎 사이 얼굴 묻고

한여름 소낙비의 울음을

 

잠시 뒤 미닫이문이 조용히 열리고

엄마는 박하엿 한 조각을 놓고 가며

울지 마라. 다시 미장 아재 오면 된다.”

그 말은 꾸중보다 더 깊게 가슴을 눌렀다

 

박하엿을 물자 서늘한 단맛이 천천히 번지고

울음은 혀끝에서부터 풀려나갔다

 

문득, 물이 마르는 속도와

마음이 식어 가는 속도가 같지는 않음을.

 

박하엿이 다 녹을 무렵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온 바람이

내 하루의 마음을 토닥여주던 여름.

 

이 시는 ‘실수’라는 경험을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감각과 정서로 체화된 기억으로 끌어올리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특히 어린 시절의 잘못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목욕탕 세면실 바닥”, “박 바가지 물”, “짚수세미같은 구체적인 물성으로 촘촘하게 구성되어 있어, 독자가 장면 속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만든다.

초반부의 반복 구조—“한 번, 또 한 번 계속 문질렀다”, “깨끗해질수록 더 깨끗해지라고”—는 아홉 살 화자의 순진한 확신과 과잉의 욕망을 잘 드러낸다. ‘잘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아이의 모습은, 성장 서사의 전형적 주제이지만 이 시에서는 설교적으로 흐르지 않고 행동 묘사에 기대어 설득력을 얻는다.

전환점은 어머니의 말이다. “아이구야, 다 된 걸 망쳐놨구나.”라는 문장은 단순한 꾸중이 아니라, 아이의 시간 감각 자체를 끊어버리는 충격으로 작동한다. 이어지는 “그 말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에 젖은 손바닥이 더 차갑게 남았다”라는 구절은 청각과 촉각이 뒤섞이며 감정의 낙차를 효과적으로 만든다.

중반 이후의 핵심은 ‘이해의 지연’이다. “내 손이 지운 것은 더러움이 아니라 막 마르던 시간”이라는 통찰은 이 시의 정서적 중심축이다. 여기서 ‘실수’는 행위의 오류가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이던 상태를 훼손한 개입으로 재정의된다. 이 전환이 시 전체를 성장담이 아닌 시간 감각의 자각 서사로 끌고 간다.

어머니의 재등장 장면 역시 단순한 화해가 아니라 정서의 재조정이다. “박하엿 한 조각”은 물리적으로는 작은 사물이지만, 심리적으로는 긴장을 완화하는 매개로 기능한다. 특히 “꾸중보다 더 깊게 가슴을 눌렀다”는 표현은 위로가 즉각적인 안도가 아니라, 더 복잡한 감정의 층위를 남긴다는 점을 잘 포착한다.

마지막 부분에서 “물의 마르는 속도와 마음이 식어 가는 속도는 같지 않다”는 문장은 이 시의 주제를 명확하게 응축한다. 회복은 물리적 상태의 변화가 아니라 시간과 감정의 비동기성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인식이다. “박하엿이 다 녹을 무렵”이라는 결말도 과장 없이 잔향을 남기며, 서사를 닫기보다 여운으로 확장한다.

종합하면 이 시는 ‘실수’라는 단어를 윤리적 범주가 아니라 시간 경험의 왜곡과 자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과장된 비유 없이도 감각적 디테일과 정서의 밀도로 충분히 설득되며, 특히 음식(박하엿)과 물(세면실, 바닥)의 대비를 통해 기억을 촉각적으로 구성한 점이 돋보인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마지막 몇 행에서 이미 충분히 형성된 정서가 약간 설명적으로 정리되는 느낌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는 기억-감각-통찰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완성도 높은 서정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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