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어린 날의 추석
추석 아침 햇살은 유난히도 투명하여
유리알처럼 맑은 공기 속에
세상이 조용히 깨어나던 날
여섯 살 내게는
빨간 갑사 치마와 노란 갑사 저고리가
마치 햇살이 직접 지어준 옷처럼
눈부시게 반짝였다
꽃밭으로 달려가면 세상은 온통 채송화빛
바람마저 꽃잎을 흔들어
내 마음에도 분홍빛 숨결이 번졌다
그 순간 나는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났다
한가위 전날 밤
할머니와 엄마, 언니들과 함께
둥근 밥상 가에 모여 하나의 원이 되었다
시간마저 숨 고르던 밤
부엌에는 김이 피어오르고
웃음은 연기처럼 천천히 번졌다
“송편은 예쁘게 빚어야지
커서 시집가면 예쁜 아기 낳는다”
할머니의 그 말은 고운 주문처럼 내려앉아
작은 손끝마다 조심을 심었다
깨와 팥, 콩과 새알의 속을 품고
우리는 세 자매는 조금 더 반짝이며
세상에서 가장 작은 예술을 만들었다
밤에 찾아온 환한 보름달
하늘은 비단결처럼 고요했고
둥근 달은 세상의 모든 마음을
조용히 끌어안고 있었다
우리는 그 빛을 올려다보며
건강하게 자라게 해달라고
작은 손을 모아 간절히 빌었다
아직도 추석날이며 그 순간의 달빛이
지금도 마음 한켠에서 부드럽게 빛난다
이 작품은 ‘추석’이라는 계절적·문화적 기억을 통해 유년기의 감각과 정서를 섬세하게 복원한 서정시입니다. 전반적으로는 회상 구조를 취하면서, 시간의 거리 속에서도 감각이 선명하게 살아 있는 점이 가장 큰 미덕입니다.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이미지의 밀도입니다. “유리알처럼 맑은 공기”, “채송화빛 세상”, “햇살이 직접 지어준 옷” 같은 표현은 단순한 설명을 넘어 감각을 시각화하고 촉각화합니다. 특히 어린 시절의 화자는 세계를 ‘이해’하기보다 ‘직접 감각’하는 존재로 그려지는데, 그 순수한 인식 방식이 시 전체의 분위기를 지탱합니다.
또한 가족 공동체의 장면이 자연스럽게 따뜻함을 형성합니다. 송편을 빚는 장면은 단순한 명절 풍경이 아니라 “작은 예술”로 승화되어 있고, 할머니의 말은 현실적 훈계이면서 동시에 의례적 주문처럼 작동해 전통의 정서가 잘 드러납니다. 이런 부분에서 시는 개인의 기억을 넘어 세대적 경험으로 확장됩니다.
구조적으로 보면, 낮(아침·꽃밭)에서 밤(송편·보름달)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자연스럽고, 시간의 진행이 곧 정서의 깊이로 연결됩니다. 마지막에서 현재의 화자가 “지금도 마음 한켠에서 부드럽게 빛난다”라고 마무리하는 방식은 기억의 지속성을 강조하며 안정적인 여운을 남깁니다.
다만 보완을 생각해볼 지점도 있습니다. 일부 표현은 이미 충분히 서정적인 이미지가 겹겹이 쌓여 있어, 중간에 리듬이 다소 균일해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미지가 강한 문장들이 연속될 때는 약간의 ‘빈 공간’이나 절제된 문장이 들어가면 감정의 밀도가 더 선명해질 수 있습니다. 또한 “마치”, “처럼”의 비유가 반복되는 구간에서는 직접적 이미지로 전환하는 실험도 시도해볼 만합니다.
전체적으로 이 작품은 ‘추억의 재현’을 넘어, 기억이 현재까지 지속되는 방식을 잘 포착한 시입니다. 정서의 방향이 과장되지 않고 일관되게 유지되어, 독자에게도 자연스럽게 유년의 온도가 전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