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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 시 작품

82.매화꽃 그려진 민경 속 아이

작성자박하|작성시간26.06.22|조회수0 목록 댓글 0

82.매화꽃 그려진 민경 속 아이

 

설날은 가래떡처럼 길게 늘어나

어린 날의 시간 끝까지 천천히 흘렀다

 

어머니 손끝에서 뽑힌 떡의 온기

조청에 찍히면 세상은 조용히 달콤해졌다

 

단술 한 모금에 목이 풀리고

황금빛 놋대접 위 떡국은 한 해를 얹어주었다

 

맛난 떡국 한 숟가락마다 나이를 먹는 기쁨

키가 자라는 소리가 마음속에서 들렸다

 

웃음과 마당 가득한 친척들의 방문

덕담 끝에 쥐어지던 세뱃돈의 무게

 

머리에 꽂힌 나비리본 하나로

나비가 되어 춤추며 꽃밭으로 갔었지

 

널뛰기 끝에 하늘과 바닥을 오가며

웃음 속에 널판에 넘어져 이마의 상처

 

어느 설날, 고운 한복 아닌

낯선 골덴천 돗바와 바지가 머리맡에

부아가 차올라 초상난 것처럼 통곡하며

세상 끝처럼 마음이 무너졌었지

 

먼 길을 걸어온 언니의 손끝에서

새 옷 노란 비단저고리 도착하며

마음이 다시 꿰매졌다

 

매화꽃 새겨진 거울 속 자신

노랑 빨강 비단 한복 입은 모습에 흡족하며

채송화꽃 벌어진 꽃잎이 다물어지지 않았지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미소를 짓는다

이 작품은 설날이라는 한 시공간을 중심으로, 유년기의 감각 기억과 정서가 층층이 쌓이듯 전개되는 서정시입니다. 전체적으로는 먹는 행위(떡국, 단술, 조청)”몸의 경험(널뛰기, 한복, 이마 상처)”를 축으로 시간의 흐름과 자아 형성을 엮어내는 구조가 안정적으로 잡혀 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점은 감각의 밀도입니다. “어머니 손끝에서 뽑힌 떡의 온기”, “조청에 찍히면 세상은 조용히 달콤해졌다같은 구절은 단순한 음식 묘사를 넘어 세계 인식의 방식으로 확장됩니다. 음식이 곧 정서의 언어가 되고, ‘달콤함이 곧 세계의 침묵과 평온으로 전환되는 방식이 자연스럽습니다. 이런 감각 전이는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입니다.

 

또 하나의 축은 성장입니다. “떡국 한 숟가락마다 나이를 먹는 기쁨처럼 직관적인 비유로 시간의 누적을 표현하면서, 어린 화자의 몸과 마음이 동시에 자라나는 감각을 잘 포착하고 있습니다. 특히 키가 자라는 소리가 마음속에서 들렸다는 표현은 비현실적이지만 설날의 기억 특유의 과장된 체감 시간을 잘 살린 구절입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시는 단순한 명절 풍경을 넘어 결핍과 회복의 서사로 이동합니다. 한복 대신 낯선 옷을 입고 초상난 것처럼 통곡하는 장면은 유년기의 감정이 얼마나 절대적인지 보여주며, 이후 언니의 손에서 도착한 노란 비단저고리는 단순한 의복이 아니라 정서적 복원의 장치로 기능합니다. 이 전환은 시 전체의 감정 곡선을 만들어 주는 핵심입니다.

마지막의 매화꽃 새겨진 거울 속 자신은 자아 인식의 순간으로 읽힙니다. 이전의 경험들이 축적된 뒤, 화자가 자신을 장식된 이미지로 바라보는 단계에 도달하는 것이죠. 다만 여기서는 시적 이미지가 다소 직접적으로 정리되면서 앞부분의 감각적 밀도에 비해 약간 설명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개선 관점에서 보면, 몇몇 구절은 이미 충분히 강한 이미지인데도 의미를 덧붙이면서 여운이 줄어드는 부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음이 다시 꿰매졌다는 표현은 앞선 서사의 정서로 이미 충분히 전달되기 때문에, 생략하거나 더 이미지 중심으로 전환하면 더 긴 잔향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이 작품은 명절의 기억을 빌려 개인의 성장과 감정의 결을 촘촘하게 복원한 서정시로, 감각적 디테일과 정서의 흐름이 잘 결합되어 있는 안정적인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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