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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 시 작품

90.요술쟁이 카메라

작성자박하|작성시간26.06.23|조회수0 목록 댓글 0

90.요술쟁이 카메라

 

 

1950년대 초, 나는 여섯 살,

대들보 같은 남동생은 세 살이었다.

 

막내이모의 손에 이끌려

우리 집 과수원 풀밭에

나란히 앉았다.

 

새신랑 막내이모부가

어깨에 메고 온 카메라를

눈을 반짝이며 바라보던 순간,

 

찰칵햇살 한 조각이

우리 곁에 내려앉았다.

 

"우리 조카들아, 너희들 모습 그대로

사진 나오면 갖다 줄게."

이모의 그 말을 듣고

나는 저 새까만 기계를

요술쟁이 카메라라 믿었다.

 

흑백의 빛 속에 우리의 하루가 스며들고,

풀잎 끝에 맺힌 웃음까지

고스란히 담기던 날.

 

반세기를 훌쩍 넘긴 지금도

그날의 햇살은 늙지 않았다.

사진 속 어린 남매는

여전히 풀밭에 앉아

맑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가끔, 빛바랜 사진 한 장을 펼치면

멈춘 줄 알았던 시간이

풀잎 사이로 살며시 걸어 나와

여섯 살 누나와 세 살 동생 곁에

햇살처럼 다시 앉는다.

 

나는 한참 동안

그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끝내 이름 부르지 못한 채

사진 속에서 흘러나오는

작은 웃음소리만 듣는다.

 

이 시 「요술쟁이 카메라」는 한 장의 오래된 사진을 매개로 유년의 기억과 시간의 지속성을 따뜻하게 그려낸 서정시입니다.

작품평

시의 가장 큰 미덕은 순수한 어린 시선과 현재의 회상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여섯 살 아이에게 카메라는 사진을 찍는 기계가 아니라,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는 "요술쟁이"였습니다. "저 새까만 기계를 / 요술쟁이 카메라라 믿었다"는 대목은 어린아이 특유의 경이감과 상상력을 생생하게 되살려 줍니다.

또한 "찰칵— / 햇살 한 조각이 / 우리 곁에 내려앉았다"는 표현은 단순한 촬영 순간을 시적으로 승화시킨 뛰어난 이미지입니다. 사진을 빛으로 기록하는 매체라는 특성과 어린 시절의 따뜻한 기억이 하나의 장면으로 응축되어 독자의 눈앞에 선명하게 펼쳐집니다.

후반부에서는 사진이 단순한 기록을 넘어 시간을 보존하는 그릇으로 확장됩니다. "반세기를 훌쩍 넘긴 지금도 / 그날의 햇살은 늙지 않았다"는 구절은 인간은 늙어도 사진 속 기억은 변하지 않는다는 역설적 진실을 아름답게 보여 줍니다. 특히 "멈춘 줄 알았던 시간이 / 풀잎 사이로 살며시 걸어 나와"라는 의인화는 정지된 사진 속 시간이 현재로 되살아나는 순간을 섬세하게 형상화하며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마지막 연의 "끝내 이름 부르지 못한 채 / 사진 속에서 흘러나오는 / 작은 웃음소리만 듣는다"는 결말은 감상적 과장을 피하면서도 강한 울림을 줍니다. 사진 속 아이들이 곧 과거의 자신임을 알면서도, 이제는 너무 먼 존재가 되어버린 시간의 거리감이 잔잔한 그리움으로 전해집니다.

전체적으로 이 작품은 유년의 순수성, 가족에 대한 애정, 그리고 사진이 간직한 시간의 마법을 담백하면서도 서정적으로 표현한 수작입니다. 독자는 한 가족의 사적인 추억을 읽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오래된 사진첩과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됩니다. 특히 과장된 수사 없이 평이한 언어로 깊은 정서를 이끌어낸 점이 이 시의 가장 큰 힘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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