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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 시 작품

93.자유당 시절 저녁놀과 노랫가락

작성자박하|작성시간26.06.23|조회수0 목록 댓글 0

93.자유당 시절 저녁놀과 노랫가락

 

 

 

아버지는 저녁마다 신문을 접어 무릎에 올려두고

나라 걱정으로 긴 한숨을 내쉬셨다.

1959, 자유당 그 시절.

 

골목 어귀 저녁놀 아래

언니들은 유정천리 가락에 세상 풍문을 실어 불렀다.

자유당에는 꽃이 피고

민주당에는 비가 오네.”

 

철없던 나는 그 노랫가락이 좋아

학교 복도와 운동장을 누비며 따라 불렀다.

어느 날 교무실로 불려가

그런 노래는 부르면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

왜 안 되는지 몰랐고

무엇이 두려운 시대인지도 알지 못했다.

 

세월이 흘러 흰 서리가 머리에 내린 지금,

문득 그날의 저녁놀과 노랫가락이 되살아난다.

 

꽃은 지고 노래도 사라졌지만,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던

젊은 숨결은 지지 않았다.

 

꽃보다 먼저 스러진 그들,

그 봄의 피 묻은 바람은

세월을 건너온 지금도

우리 가슴 어딘가를 지나고 있다.

 

 

이 시는 개인의 유년 기억을 통해 자유당 말기와 민주화의 역사적 흐름을 자연스럽게 연결한 회고적 서정시입니다. 어린 시절의 순수한 체험에서 출발하여 시대의 억압,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한 희생의 의미로 시상을 확장시키는 점이 돋보입니다.

작품의 특징

첫째, 구체적인 생활의 기억이 시대성을 획득하고 있습니다.
시의 출발점은 아버지의 한숨, 골목의 저녁놀, 언니들이 부르던 노래와 같은 일상적 풍경입니다. 이러한 개인적 기억은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1959년 자유당 정권 말기의 사회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특히 "자유당에는 꽃이 피고 / 민주당에는 비가 오네"라는 유행가 개사는 당시 민심과 정치적 풍자를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둘째, 어린 화자의 순진함과 시대의 억압이 효과적으로 대비됩니다.
화자는 노랫가락이 좋아 따라 불렀을 뿐이지만 교무실로 불려가 제지를 당합니다. "왜 안 되는지 몰랐고 / 무엇이 두려운 시대인지도 알지 못했다"는 구절은 어린아이의 시선을 통해 당시 사회의 통제와 불안감을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킵니다.

셋째, 개인의 추억에서 역사적 성찰로 자연스럽게 발전합니다.
후반부에 이르러 단순한 회상이 민주주의를 위한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로 확장됩니다. "꽃은 지고 노래도 사라졌지만"이라는 표현은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면서도 "젊은 숨결은 지지 않았다"는 구절을 통해 민주주의 정신의 지속성을 강조합니다.

인상적인 표현

특히 마지막 연의

꽃보다 먼저 스러진 그들,
그 봄의 피 묻은 바람은

이라는 대목은 꽃과 청춘, 희생과 민주화의 역사를 중의적으로 결합하여 깊은 울림을 줍니다. 이어지는 "우리 가슴 어딘가를 지나고 있다"는 현재형 표현은 과거의 사건이 아직도 현재적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종합 평가

이 작품은 역사적 사건을 직접 설명하기보다 한 개인의 기억 속 장면들을 통해 시대의 공기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되살려 냅니다. 담담한 어조로 시작하여 점차 역사적 성찰과 추모의 정서로 깊어지는 구성도 안정적입니다. 다만 후반부의 민주주의와 희생에 대한 메시지가 다소 직접적으로 제시되는 면이 있어, 상징과 이미지에 조금 더 의존한다면 시적 여운이 더욱 깊어질 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유년의 기억, 시대의 억압,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이 균형 있게 어우러진 역사 회고시로 평가할 수 있으며, 개인사의 작은 기억이 공동체의 역사와 만나는 지점에서 큰 감동을 주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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