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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인천시 할메산 & 꽃메산 & 계양산(桂陽山) - 2026년 6월 7일 일요일

작성자청산|작성시간26.06.07|조회수0 목록 댓글 0

산길따라 발걸음 2026년 06월 일요산행(桂陽山)
 
◆ 일시 2026년 06월 7일 일요일
 
◆ 위치 : 인천광역시 계양구 - 계양산(桂陽山)
 
◆ 유래
마전역(馬田驛)
조선 시대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역(驛)은 중국의 수·당 제도를 모방하여 487년(소지왕 9) 3월에 시작되었다고 하며, 조선 시대 조창(漕倉)과 운조(運漕)를 담당한 대표적 교통 기관이다. 고려 시대의 참역제(站驛制)는 전국의 역로의 계통을 22도로 나누었다. 그중 하동은 산남도(山南道)에 속하였고, 산남도에는 28참역(站驛)이 있었다. 당시 마전역(馬田驛)은 그중의 하나의 역이었다.
중앙과 지방 관서 간의 공문서 전달, 어사와 관리의 왕래 및 숙박, 관물(官物)의 수송을 돕기 위한 기관으로 설치되었다. [관련 기록] 중국의 수·당 제도를 모방하여 487년 우편역을 두었으며, 고려 시대에는 역승(驛丞)을 두었고, 조선 시대에는 1457년(세조 3) 찰방(察訪)을 신설하고 1462년(세조 8)에 역승을 가설(加設)하였다. 그리고 1535년(중종 30) 역승을 폐지하고 다시 찰방으로 개칭하였다.
마전역은 군청 동쪽 30리에 있다. 역리 14명, 중마 2필, 하마 5필, 일명 호사역(虎砂驛)이라고도 하였다. 역은 30리(里)마다 두고 마패증에 따라서 말을 제공하였고, 원(院)을 세워 숙사를 제공하여 공용자(公用者)들의 내왕에 편리를 도모하였다. 역과 참(站)은 대(大), 중(中), 소(小) 3등으로 구분한 뒤 역둔토(驛屯土)를 제공하여 경비로 사용하도록 하였다. 역호(驛戶)와 역정(驛丁)은 역전(驛田)을 경작하는 역노(驛奴)로서 백정의 자손에서 징발하여 보충하였다. 역마(驛馬)는 수십 필에서 5필까지 두었다. 공문서의 송달은 체정식[수역-지방역]으로 하였다. 전달 방식은 3급[특급], 2급[보통급], 1급[보통]이 있는데 전달 조정은 2~7월까지는 3급이 6역, 2급이 5역, 1급이 4역을 갔다. 이것은 1일의 역정으로서 8~1월까지는 조정이 1역씩 단축되었다. 역에 역정을 두고 분장 감독하게 하였다. 983년(성종 2)에 역장을 두고 역무를 관장하게 하였고, 역정(驛政)은 대역의 중노 3명, 소노 10명 이상에 2명을 배치하였다.
고려 말엽에 역정이 문란하여 교통이 불편해지자, 조선에서는 역노를 정비하고 역정을 다시 배치하였다. 1445년(세종 27) 전제상정소의 통첩에 따라 대·중·소로 나누어 그 수역과 공수전을 일정하게 배정하고 역졸의 전을 2결 내지 3결로 정하였다. 1535년(중종 30) 역승을 폐지하고 다시 찰방으로 개칭하였다.
역참(驛站)은 조선 시대 교통과 통신을 담당하던 중요한 시설이었다. 이런 시설이 양보면에 있었다는 사실은 이곳이 당시에 중요한 위치이었음을 말해 준다.
할메산(105.9m)
독정역과 완정역 사이의 남북으로 이어진 할메산은 고도 105.9m의 낮은 산이지만 본디 이름으로는 큰(한) 산(뫼)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강화 문수산으로 이어지는 한남정맥 구간으로, 산 자체보다는 산맥의 의미가 강하게 투영된 이름을 지녀 당하동 사람들의 뒷동산 쉼터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 독정역 부근에서 산에 올라 완정역 방향으로 내려오는 코스로 1~2시간 정도 청량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할메산(105.9m) - 서로이음길 7코스
인천 서구의 할미산(할메산)은 해발 105.9m의 낮고 완만한 산으로, 주민들을 위한 훌륭한 산책 및 운동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할미산은 인천 서구 왕길동 및 당하동 일대에 걸쳐 있다.
옛날 혼자 살던 할머니(할메)가 산에 올라 약초를 캐거나 마을을 돌보며 살았다는 이야기가 있고, 혹은 전쟁·기근 시기에 마을 사람들을 보살피다 산에서 생을 마쳤다는 전설이 있다. 또한 산의 능선이나 봉우리 모양이 허리를 굽힌 할머니의 모습, 혹은 치마를 두른 노인의 형상처럼 보인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명도 있다. 정확한 문헌보다는 지역 주민들의 구전 설화가 중심인 산이다.
할미산은 산이 낮고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다. 특히 인천 지하철 2호선 독정역에서 가깝다. 등산로 바닥에 짚이 깔려 있어 걷기 편안하며, 중간중간 휴식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최근에는 맨발 걷기 코스도 조성되었다.
목상교(木霜橋)
목상교(木霜橋)는 경인 아라 뱃길(운하) 위에 건설된 다리로, 인천광역시 계양구에 위치해 있습니다. 2000년에 준공되었고, 길이는 31.8미터이다. 한남정맥 마루금에서 운하 위로 이어져 있다.
꽃메산(133m)
꽃메산은 시천동의 중심이 되는 마을 앞산으로 산의 형태가 마치 꽃봉오리 형상이어서 꽃뫼(花山)라고 붙여졌다. 꽃뫼 밑에는 고려시대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했던 구슬원이라는 여각촌이 있었으며, 장모루라는 유명한 여각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곳은 왕도 개성과 산남지방을 왕래했던 길목으로, 손님을 끌기 위해 공치기 놀이와 비파를 뜯었다고 전한다. 지금도 검암택지개발 2지구의 동쪽 끝의 지명이 장모루이고, 그 주변이 1800년대 말까지 발아현 장터로 이용되었다고 전해진다.
 계양산성(桂陽山城)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양산(桂陽山)에 있는 삼국시대 테뫼식으로 축조된 성곽. 산성. 
국가지정문화재계양산성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산동의 계양산에 위치하고 있다. 계양산은 인천광역시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서 해발 395m이다. 옛 부평도호부(富平都護府)의 진산이며, 안남산(安南山)이라고도 한다. 계양산성은 계양산 주봉에서 동측 산정 주변에 자리잡고 있다. 삼국시대에 처음 축조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임진왜란 당시 이곳에서 명군과 일본군이 싸웠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계양산성은 계양산의 주봉(395m)에 축조된 것이 아니고 주봉의 동측에 있는 봉우리(202m)를 에워싸는 형상으로 축조되어 있는 테뫼식 산성이다. 주봉의 산정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면 서쪽으로 서해바다를 볼 수 있고, 동쪽으로 김포평야 일대와 강서구 및 양천구 일대를 확인할 수 있다. 날이 맑은 날에는 여의도까지 조망이 가능하다. 북쪽으로는 행주산성을 비롯하여 일산 신도시 아파트 단지까지 확인이 가능하다.계양산성은 『삼국사기(三國史記)』나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하지만 『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 부평도호부 고적조에 “계양고산성은 석축 둘레가 1,937척으로, 전하기를 삼국시대에 쌓았다고 하나 지금은 폐허가 되었다”라고 되어 있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도 “부평 계양산성은 삼국시대에 축조된 성으로서, 석축 둘레가 1,937척이나 지금은 폐허가 되었다”라고 되어 있다. 두 기록을 통해 계양산성의 초축 시대가 삼국시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경기도 지방명승』 계양산 고적지조에는 “현존하는 성벽의 일부는 340여 년전 고니시[小西行長]가 명군에 대항하기 위해 쌓았다고 하나 잘못된 것이다”라는 내용이 남아 있다.계양산성은 1997년 인천광역시가 지표조사를 실시하였다. 2001년 선문대학교 고고연구소가 계양산 일대 문화유적 지표조사를 하였으며, 2003부터 2008년까지 1~3차 발굴조사를 진행하였다. 특히 3차 발굴조사 결과 집수정 유구에서 목간들이 출토되어 학계의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이후 2009년 겨레문화유산연구원에서 4차 발굴조사를 진행하였으며 북문지, 배수시설, 건물지, 내벽보축 등 총 26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다.계양산성은 경기만 방어체계의 중심성이라 할 수 있다. 남으로 문학산성을 관할하고 북으로 김포반도의 산성들과 연계하여 경기만 북부지역을 방어했을 가능성이 높다. 경기만 일대로 진입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해안성들을 총괄 관리하는 지휘본부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리적 위치를 감안하면 백제에 의해 먼저 축조되었고, 이후 고구려와 신라가 이 지역을 차지하게 되면서 증축하여 거점으로 활용되었을 것이다.
계양산(桂陽山/395m) - 인천광역시 계양구
산의 이름은 고려 초기 수주악(樹州岳), 고려 의종 이후 안남산(安南山)으로 불리다가 고려 고종 때 계양도호부가 설치된 후 현재의 계양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 조선시대 대동여지도 제13첩 인천편에서 여전히 안남산(安南山)으로 표기된바있다. 계수나무와 회양목이 많이 서식하여 계양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내가 어릴적 계양산은 회양목이 많이 서식하여 학교에 이식도 하였다. 아남산(阿南山), 경명산(景明山)으로 불리기도 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진산 또는 안남산으로 표기하였다.산의 동쪽 능선에 있는 계양산성(桂陽山城)은 삼국 시대 때 축조된 것으로 알려져 일명 고산성(古山城)으로 불린다. 축조 형식은 지형 분류상 산정식(山頂式), 방법상 내탁식(內托式)에 안쪽은 불규칙한 할석(割石)으로 쌓았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관방성곽조〉(關防成廓條)에 의하면 둘레가 1937보(步)라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 대부분의 성곽이 훼손된 상태이다. 산의 서쪽에는 조선 고종 때 해안방비용으로 중심성(衆心城)이 징매이고개를 따라 축조되어 있었다.집수정 바닥에서 《논어》 〈공야장〉의 주요 내용이 기록된 목간이 출토 되었는데, 5각형의 각 면에 《논어》의 구절이 먹으로 쓰여 있다. 한성백제 시기의 유물로 한국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목간으로 추정된다.1944년 1월 8일 조선총독부가 관보 제13호로 계양산 전체를 공원으로 지정하였다. 1988년에 인천시 시공원 제1호로 지정되었다.계양산의 높이는 395m로 인천시 도심 지역에서 가장 높으며 초보 등산객이 오르기에 적합한 규모이다. 인천지하철 1호선 계산역에서 등산로 입구까지는 도보로 5분 거리이다. 등산로는 입구의 연무정에서 시작한다. 중간에 팔각정이 있으며, 하느재고개를 지나 경사진 계단을 오르면 산 정상에 도착할 수 있다. 정상에는 계양정을 비롯하여 표지석 및 망원경들이 설치되어 있다. 날씨가 좋으면 정상에서 서쪽으로는 강화도 - 영종도, 북쪽으로 고양시, 남쪽으로 인천광역시까지 볼 수 있다. 주능선 등산로에는 그늘이 없어 더운 여름철보다는 봄철 산행지로 적합하다.
계양산(桂陽山/395m) -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산동에 있는 산
강화도를 제외한 인천광역시에서 가장 높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진산 또는 안남산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계양구의 꽃인 진달래가 유난히 많이 핀다. 정상에 오르면 사방이 탁 트여 있어 서쪽으로는 영종도와 강화도 등 주변 섬들이 한눈에 들어오며, 동쪽으로는 김포공항을 비롯한 서울특별시 전경이, 북쪽으로는 고양시가, 남쪽으로는 인천광역시가 펼쳐진다.산 아래에는 계양문화회관과 경인여자대학교·백용사·성불사·연무정 등이 자리잡고 있다. 특히 남단에는 1986년에 도시 자연공원으로 지정된 계양공원이 들어서 있으며, 계양산성과 봉월사터·봉화대의 유적지와 고려시대의 학자 이규보가 거처하던 자오당터와 초정지가 위치한다.산행은 연무정에서 시작하여 팔각정을 거쳐 정상에 오른 후, 남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타고 계산약수를 거쳐 계양문화회관으로 내려가거나 징맹이고개 쪽으로 능선을 계속 타면 된다. 어느 코스든지 2시간쯤 걸린다. 인천광역시 내에 있는 산으로 연결되는 대중교통이 많다. 주능선 등산로에 그늘이 없어 여름보다는 봄철 산행지로 적합하다.
계양산(桂陽山/395m)
계양산은 해발 395m로 인천에서 가장 높은 산이댜 계산동, 목상동, 다남동 마을을 두루끼고 우뚝 서 있으며 지명의 변천에 따라 수주악, 안남산, 아남산, 경명산 등 다양한 명칭을 갖고 있습니다. 계양산 정상에 서면 서쪽으로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과 영종대교, 동쪽으로는 김포공항까지 내려다보입니다.1944년 1월 인천시 최초 도시 자연공원으로 결정된 후 시 지정 제1호 공원이 되었습니다. 그 이름에 걸맞게 계양산은 시 민들이 머물고 향유하는 휴식과 같은산 입니다.
계양산(桂陽山/395m)
인천광역시의 계양구에 위치한 산이다(고도:395m). 부평 지방의 주산(主山)으로 여겨져 왔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계양산은 부평의 진산(鎭山)인데 일명 안남산(安南山)이라고도 한다."고 되어 있다. 『1872년지방지도』에는 계양산 아래에 부평부 치소가 위치하고 계양산 서쪽 능선에 경명현(景明峴)이라는 고개가 있었던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계양산 동남쪽 산록에는 '조산(造山)'이라는 작은 산이 세 곳 확인되는데 이것은 계양산의 좌청룡을 보강하기 위한 비보산으로 알려져 있다. 계양산은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불리었다. 고려 시대 부평의 고을 이름이 수주(樹州)였을 때에는 수주악(樹州岳),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로 불렸을 때에는 안남산, 계양도호부(桂陽都護府)였을 때에는 계양산(桂陽山)이 되었다. 대체로 조선 시대 이후 오늘날까지 계양산이라 부르고 있지만, 『대동여지도』에는 안남산이라 표기되어 있다. 계양산이라는 지명은 옛날부터 이곳에 계수나무와 회양나무가 자생하였기에 계수나무의 '계'와 회양나무의 '양'을 합쳐 만든 이름이라 전한다.
계양산(桂陽山/395m)
계양산은 해발 395m로 인천을 대표하는 진산이자 주산이다.
계양은 과거 기원초부터 19세기말까지 읍치(邑治)가 계양산을 중심으로 하여, 서쪽 삼국시대 고현읍에서 시작하여 북쪽 그리고 동쪽으로 이동하며 마지막 남쪽 조선시대 부평도호부읍에 이르기까지 여섯번 환천을 하면서 발전하고 번창 하였습니다.계양산 동쪽 기슭 봉우리에는 삼국시대에 축조된 계양산성이 있고, 서쪽으로는 조선 고종 20년(1883년)에 해안 방비를 위해 부평고을 주민들이 참여하여 축조한 중심성이 징매이고개능선을 따라 걸쳐 있었다. 계양산이란 이름은 지명의 변천에 따라 고려 수주 때에는 수주악, 안남도호부 때에는 안남산, 계양도호부 때에는 계양산으로 부르던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한 때는 아남산, 경명산 라고도 하였다. 계양산의 산명 유래는 계수나무와 회양목이 자생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며, 1944년 1월 8일 인천시 최초의 도시자연공원(계양공원)으로 결정되고, 그 후 계양산은 시 지정 제1호 공원이 되었습니다.
계양산(桂陽山/395m)
해발 395m의 계양산은 강화도를 제외한 인천광역시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산에 계수나무와 회양목이 자생하여 이 같은 지명이 생겼다고 전해진다. 수도권 반나절 산행으로 적당하고 초보 등산객이 도전할 만한 산으로 많은 등산객이 찾는다. 인천지하철 1호선 계산역과 등산로 입구가 가까워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가 수월한 것도 장점이다.
등산로는 총 9가지 코스가 있는데, 짧게는 50여 분부터 길어도 2시간 남짓이 걸린다. 산행은 주로 연무정에서 시작하여 팔각정을 거쳐 산 정상에 올랐다가 남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타고 하산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주 능선 등산로에 그늘이 없어 여름보다는 봄‧가을철 산행지로 알맞다. 임학공원과 계양산성을 잇는 계양산 무장애길, 계양산 장미원 옆 ‘계양산 무장애 나눔길’을 이용하면 장애인과 노약자도 편안하게 산을 오를 수 있다.
계양산은 등산과 역사 탐방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산이기도 하다. 삼국시대에 축조되어 조선 시대까지 사용된 계양산성, 고려 시대 학자 이규보가 머물던 자오당터와 초정지, 봉월사터·봉화대의 유적지 등 흥미로운 볼거리가 다양하다. 산 정상에 오르면 동쪽으로 김포공항을 비롯한 서울특별시 전경이, 서쪽으로는 영종도와 강화도 등 주변 섬이 한눈에 들어찬다. 산 아래에는 인천 최초의 도시자연공원으로 지정된 계양공원, 색색의 장미가 피어 꽃놀이 명소로 사랑받는 계양산 장미원 등이 자리한다.인천둘레길 1코스를 따라 계양산 일대를 한 바퀴 크게 둘러보아도 좋다. 7.3km 길이의 둘레길은 연무정에서 시작하여 징맹이고개 능선을 타고 계양산 삼림욕장을 지나 출발지로 되돌아오는 순환형 코스다.
계산(경인여자대학교)역/桂山(敬仁女子大學校)驛)
계산(경인여자대학교)역/桂山(敬仁女子大學校)驛)은 대한민국 인천광역시 계양구에 있는 인천 도시철도 1호선의 전철역이다.
2면 2선의 승강장을 가진 지하역이다. 개찰구가 승강장별로 분리되어 있어, 개찰을 하지 않고 승강장 사이를 건너갈 수 없다.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 있다.
 
 총인원 : 나홀로
 
 총산행거리 : 약 14.65km(gpx 14.45km)
 
◆ 산행시간 : 약 4시간 50분
 
◆ 산행 코스

마전역(馬田驛) (1.3km) 할메산(105.9m) (5.0km) 아라마루 (1.0km) 목상교(木霜橋) (1.2km) → △김포 448(88.5m) (0.9km) 꽃메산(133m) (1.2km) 검암산(黔巖山/H/185m) (0.7km) 피고개산(210m) (0.75km) → △김포11(366.8m) (0.2km) 계양산(桂陽山/395m) (1.0km) 깃대봉(200m) (1.4km) 계산역(桂山驛)

 
◆ 산행 파일

◆ 산행 지도

◆ 산행 갤러리

한대앞 → (수인분당선) → 원인재 → (인천1호선) → 인천시청 → (인천2호선) → 마전
마전역(馬田驛)

마전역(馬田驛)
조선 시대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역(驛)은 중국의 수·당 제도를 모방하여 487년(소지왕 9) 3월에 시작되었다고 하며, 조선 시대 조창(漕倉)과 운조(運漕)를 담당한 대표적 교통 기관이다. 고려 시대의 참역제(站驛制)는 전국의 역로의 계통을 22도로 나누었다. 그중 하동은 산남도(山南道)에 속하였고, 산남도에는 28참역(站驛)이 있었다. 당시 마전역(馬田驛)은 그중의 하나의 역이었다.
중앙과 지방 관서 간의 공문서 전달, 어사와 관리의 왕래 및 숙박, 관물(官物)의 수송을 돕기 위한 기관으로 설치되었다. [관련 기록] 중국의 수·당 제도를 모방하여 487년 우편역을 두었으며, 고려 시대에는 역승(驛丞)을 두었고, 조선 시대에는 1457년(세조 3) 찰방(察訪)을 신설하고 1462년(세조 8)에 역승을 가설(加設)하였다. 그리고 1535년(중종 30) 역승을 폐지하고 다시 찰방으로 개칭하였다.
마전역은 군청 동쪽 30리에 있다. 역리 14명, 중마 2필, 하마 5필, 일명 호사역(虎砂驛)이라고도 하였다. 역은 30리(里)마다 두고 마패증에 따라서 말을 제공하였고, 원(院)을 세워 숙사를 제공하여 공용자(公用者)들의 내왕에 편리를 도모하였다. 역과 참(站)은 대(大), 중(中), 소(小) 3등으로 구분한 뒤 역둔토(驛屯土)를 제공하여 경비로 사용하도록 하였다. 역호(驛戶)와 역정(驛丁)은 역전(驛田)을 경작하는 역노(驛奴)로서 백정의 자손에서 징발하여 보충하였다. 역마(驛馬)는 수십 필에서 5필까지 두었다. 공문서의 송달은 체정식[수역-지방역]으로 하였다. 전달 방식은 3급[특급], 2급[보통급], 1급[보통]이 있는데 전달 조정은 2~7월까지는 3급이 6역, 2급이 5역, 1급이 4역을 갔다. 이것은 1일의 역정으로서 8~1월까지는 조정이 1역씩 단축되었다. 역에 역정을 두고 분장 감독하게 하였다. 983년(성종 2)에 역장을 두고 역무를 관장하게 하였고, 역정(驛政)은 대역의 중노 3명, 소노 10명 이상에 2명을 배치하였다.
고려 말엽에 역정이 문란하여 교통이 불편해지자, 조선에서는 역노를 정비하고 역정을 다시 배치하였다. 1445년(세종 27) 전제상정소의 통첩에 따라 대·중·소로 나누어 그 수역과 공수전을 일정하게 배정하고 역졸의 전을 2결 내지 3결로 정하였다. 1535년(중종 30) 역승을 폐지하고 다시 찰방으로 개칭하였다.
역참(驛站)은 조선 시대 교통과 통신을 담당하던 중요한 시설이었다. 이런 시설이 양보면에 있었다는 사실은 이곳이 당시에 중요한 위치이었음을 말해 준다.

마전역(馬田驛)
할메산(105.9m)

할메산(105.9m)
독정역과 완정역 사이의 남북으로 이어진 할메산은 고도 105.9m의 낮은 산이지만 본디 이름으로는 큰(한) 산(뫼)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강화 문수산으로 이어지는 한남정맥 구간으로, 산 자체보다는 산맥의 의미가 강하게 투영된 이름을 지녀 당하동 사람들의 뒷동산 쉼터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 독정역 부근에서 산에 올라 완정역 방향으로 내려오는 코스로 1~2시간 정도 청량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할메산(105.9m)

할메산(105.9m) - 서로이음길 7코스
인천 서구의 할미산(할메산)은 해발 105.9m의 낮고 완만한 산으로, 주민들을 위한 훌륭한 산책 및 운동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할미산은 인천 서구 왕길동 및 당하동 일대에 걸쳐 있다.
옛날 혼자 살던 할머니(할메)가 산에 올라 약초를 캐거나 마을을 돌보며 살았다는 이야기가 있고, 혹은 전쟁·기근 시기에 마을 사람들을 보살피다 산에서 생을 마쳤다는 전설이 있다. 또한 산의 능선이나 봉우리 모양이 허리를 굽힌 할머니의 모습, 혹은 치마를 두른 노인의 형상처럼 보인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명도 있다. 정확한 문헌보다는 지역 주민들의 구전 설화가 중심인 산이다.
할미산은 산이 낮고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다. 특히 인천 지하철 2호선 독정역에서 가깝다. 등산로 바닥에 짚이 깔려 있어 걷기 편안하며, 중간중간 휴식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최근에는 맨발 걷기 코스도 조성되었다.

예비군 훈련장 부대
예비군 훈련장부대(7873-1부대)

약 5km 정도 무상무념(無想無念)으로 할메산부터 아라마루까지 편하게 걷는다.

아라마루
아라마루
아라마루
아라마루
아라마루
아라뱃길

경인 아라뱃길(京仁아라뱃길)

경인 아라뱃길(京仁아라뱃길) 또는 경인운하 한강 하류의 행주대교에서 인천광역시 서구 오류동과 시천동을 연결하는 운하이다사업 구간은 길이 18km, 80m의 대수로로 구성되어 있으며, 2009 1월부터 2011 10월까지 22,500억여 원을 들여 완공하고 2012 525 개통식을 열었다뱃길 따라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는데, 자전거도로는 한강 자전거길과 연결된다. 주요 지형지물로는 계양산 협곡의 지형을 이용하여 만든 아라폭포와 바닥이 유리도 된 원형전망대 아라마루가 있다.

아라뱃길
아라마루
목산교(木霜橋)

목상교(木霜橋)
목상교(木霜橋)는 경인 아라 뱃길(운하) 위에 건설된 다리로, 인천광역시 계양구에 위치해 있습니다. 2000년에 준공되었고, 길이는 31.8미터이다. 한남정맥 마루금에서 운하 위로 이어져 있다.

김포 448 삼각점(88.5m)
김포 448 삼각점(88.5m)
꽃메산(133m)

꽃메산(133m)
꽃메산은 시천동의 중심이 되는 마을 앞산으로 산의 형태가 마치 꽃봉오리 형상이어서 꽃뫼(花山)라고 붙여졌다. 꽃뫼 밑에는 고려시대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했던 구슬원이라는 여각촌이 있었으며, 장모루라는 유명한 여각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곳은 왕도 개성과 산남지방을 왕래했던 길목으로, 손님을 끌기 위해 공치기 놀이와 비파를 뜯었다고 전한다. 지금도 검암택지개발 2지구의 동쪽 끝의 지명이 장모루이고, 그 주변이 1800년대 말까지 발아현 장터로 이용되었다고 전해진다.

꽃메산(133m)
꽃메산(133m)
꽃메산(133m)
꽃메산(133m)
꽃메산(133m)
꽃메산(133m)
꽃메산(133m)
꽃메산(133m)
꽃메산(133m)
꽃메산(133m) 군 방카
꽃메산 군 진지(예비군 군사 작전지역으로 쓰임)
검암산(185m)
검암산(黔巖山/H/185m)
검암산(黔巖山/H/185m)
검암산(黔巖山/H/185m)
검암산(黔巖山/H/185m)
검암산(黔巖山/H/185m)
검암산(黔巖山/H/185m)
검암산(黔巖山/H/185m)
검암산(黔巖山/H/185m)
검암산(헬기장)
피고개산(210m)

피고개산(210m) - 인천 계양구 목상동

인천 피고개산은 인천의 주요 산인 계양산과 연결된 능선에 위치한 작은 봉우리로, 지명에 얽힌 슬픈 유래가 특징이다. 서해랑길 코스 등 인천 지역의 다양한 트레킹 코스에 포함되어 있다. 옛날 서구 검암동에 살던 해주 정씨 가문의 형제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형제는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어떤 억울한 이유로 인해 관직을 박탈당했다고 한다. 이 형제가 이 고개를 넘어오다가 억울함에 피를 토하고 죽었다고 하여, 이 고갯길에 피고개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피고개는 계양산과 다른 봉우리들을 잇는 산행 길목이자 들레길이 만나는 중요한 기점이 되었다.

피고개산(210m)
피고개산(210m)
피고개산(210m)
피고개산(210m)
피고개산(210m)
김포11 삼각점(366.8m)
김11 삼각점(366.8m)
김포11 삼각점(366.8m)
김포11 삼각점(366.8m)
계양산(桂陽山/395m)

계양산(桂陽山/395m) - 인천광역시 계양구
산의 이름은 고려 초기 수주악(樹州岳), 고려 의종 이후 안남산(安南山)으로 불리다가 고려 고종 때 계양도호부가 설치된 후 현재의 계양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 조선시대 대동여지도 제13첩 인천편에서 여전히 안남산(安南山)으로 표기된바있다. 계수나무와 회양목이 많이 서식하여 계양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내가 어릴적 계양산은 회양목이 많이 서식하여 학교에 이식도 하였다. 아남산(阿南山), 경명산(景明山)으로 불리기도 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진산 또는 안남산으로 표기하였다.산의 동쪽 능선에 있는 계양산성(桂陽山城)은 삼국 시대 때 축조된 것으로 알려져 일명 고산성(古山城)으로 불린다. 축조 형식은 지형 분류상 산정식(山頂式), 방법상 내탁식(內托式)에 안쪽은 불규칙한 할석(割石)으로 쌓았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관방성곽조〉(關防成廓條)에 의하면 둘레가 1937보(步)라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 대부분의 성곽이 훼손된 상태이다. 산의 서쪽에는 조선 고종 때 해안방비용으로 중심성(衆心城)이 징매이고개를 따라 축조되어 있었다.집수정 바닥에서 《논어》 〈공야장〉의 주요 내용이 기록된 목간이 출토 되었는데, 5각형의 각 면에 《논어》의 구절이 먹으로 쓰여 있다. 한성백제 시기의 유물로 한국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목간으로 추정된다.1944년 1월 8일 조선총독부가 관보 제13호로 계양산 전체를 공원으로 지정하였다. 1988년에 인천시 시공원 제1호로 지정되었다.계양산의 높이는 395m로 인천시 도심 지역에서 가장 높으며 초보 등산객이 오르기에 적합한 규모이다. 인천지하철 1호선 계산역에서 등산로 입구까지는 도보로 5분 거리이다. 등산로는 입구의 연무정에서 시작한다. 중간에 팔각정이 있으며, 하느재고개를 지나 경사진 계단을 오르면 산 정상에 도착할 수 있다. 정상에는 계양정을 비롯하여 표지석 및 망원경들이 설치되어 있다. 날씨가 좋으면 정상에서 서쪽으로는 강화도 - 영종도, 북쪽으로 고양시, 남쪽으로 인천광역시까지 볼 수 있다. 주능선 등산로에는 그늘이 없어 더운 여름철보다는 봄철 산행지로 적합하다.

계양산(桂陽山/395m)

계양산(桂陽山/395m) -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산동에 있는 산
강화도를 제외한 인천광역시에서 가장 높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진산 또는 안남산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계양구의 꽃인 진달래가 유난히 많이 핀다. 정상에 오르면 사방이 탁 트여 있어 서쪽으로는 영종도와 강화도 등 주변 섬들이 한눈에 들어오며, 동쪽으로는 김포공항을 비롯한 서울특별시 전경이, 북쪽으로는 고양시가, 남쪽으로는 인천광역시가 펼쳐진다.산 아래에는 계양문화회관과 경인여자대학교·백용사·성불사·연무정 등이 자리잡고 있다. 특히 남단에는 1986년에 도시 자연공원으로 지정된 계양공원이 들어서 있으며, 계양산성과 봉월사터·봉화대의 유적지와 고려시대의 학자 이규보가 거처하던 자오당터와 초정지가 위치한다.산행은 연무정에서 시작하여 팔각정을 거쳐 정상에 오른 후, 남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타고 계산약수를 거쳐 계양문화회관으로 내려가거나 징맹이고개 쪽으로 능선을 계속 타면 된다. 어느 코스든지 2시간쯤 걸린다. 인천광역시 내에 있는 산으로 연결되는 대중교통이 많다. 주능선 등산로에 그늘이 없어 여름보다는 봄철 산행지로 적합하다.

계양산(桂陽山/395m)

계양산(桂陽山/395m)
계양산은 해발 395m로 인천에서 가장 높은 산이댜 계산동, 목상동, 다남동 마을을 두루끼고 우뚝 서 있으며 지명의 변천에 따라 수주악, 안남산, 아남산, 경명산 등 다양한 명칭을 갖고 있습니다. 계양산 정상에 서면 서쪽으로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과 영종대교, 동쪽으로는 김포공항까지 내려다보입니다.1944년 1월 인천시 최초 도시 자연공원으로 결정된 후 시 지정 제1호 공원이 되었습니다. 그 이름에 걸맞게 계양산은 시 민들이 머물고 향유하는 휴식과 같은산 입니다.

계양산(桂陽山/395m)

계양산(桂陽山/395m)
인천광역시의 계양구에 위치한 산이다(고도:395m). 부평 지방의 주산(主山)으로 여겨져 왔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계양산은 부평의 진산(鎭山)인데 일명 안남산(安南山)이라고도 한다."고 되어 있다. 『1872년지방지도』에는 계양산 아래에 부평부 치소가 위치하고 계양산 서쪽 능선에 경명현(景明峴)이라는 고개가 있었던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계양산 동남쪽 산록에는 '조산(造山)'이라는 작은 산이 세 곳 확인되는데 이것은 계양산의 좌청룡을 보강하기 위한 비보산으로 알려져 있다. 계양산은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불리었다. 고려 시대 부평의 고을 이름이 수주(樹州)였을 때에는 수주악(樹州岳),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로 불렸을 때에는 안남산, 계양도호부(桂陽都護府)였을 때에는 계양산(桂陽山)이 되었다. 대체로 조선 시대 이후 오늘날까지 계양산이라 부르고 있지만, 『대동여지도』에는 안남산이라 표기되어 있다. 계양산이라는 지명은 옛날부터 이곳에 계수나무와 회양나무가 자생하였기에 계수나무의 '계'와 회양나무의 '양'을 합쳐 만든 이름이라 전한다.

계양산(桂陽山/395m) 삼각점

계양산(桂陽山/395m)
계양산은 해발 395m로 인천을 대표하는 진산이자 주산이다.
계양은 과거 기원초부터 19세기말까지 읍치(邑治)가 계양산을 중심으로 하여, 서쪽 삼국시대 고현읍에서 시작하여 북쪽 그리고 동쪽으로 이동하며 마지막 남쪽 조선시대 부평도호부읍에 이르기까지 여섯번 환천을 하면서 발전하고 번창 하였습니다.계양산 동쪽 기슭 봉우리에는 삼국시대에 축조된 계양산성이 있고, 서쪽으로는 조선 고종 20년(1883년)에 해안 방비를 위해 부평고을 주민들이 참여하여 축조한 중심성이 징매이고개능선을 따라 걸쳐 있었다. 계양산이란 이름은 지명의 변천에 따라 고려 수주 때에는 수주악, 안남도호부 때에는 안남산, 계양도호부 때에는 계양산으로 부르던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한 때는 아남산, 경명산 라고도 하였다. 계양산의 산명 유래는 계수나무와 회양목이 자생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며, 1944년 1월 8일 인천시 최초의 도시자연공원(계양공원)으로 결정되고, 그 후 계양산은 시 지정 제1호 공원이 되었습니다.

계양산 삼각점

계양산(桂陽山/395m)
해발 395m의 계양산은 강화도를 제외한 인천광역시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산에 계수나무와 회양목이 자생하여 이 같은 지명이 생겼다고 전해진다. 수도권 반나절 산행으로 적당하고 초보 등산객이 도전할 만한 산으로 많은 등산객이 찾는다. 인천지하철 1호선 계산역과 등산로 입구가 가까워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가 수월한 것도 장점이다.
등산로는 총 9가지 코스가 있는데, 짧게는 50여 분부터 길어도 2시간 남짓이 걸린다. 산행은 주로 연무정에서 시작하여 팔각정을 거쳐 산 정상에 올랐다가 남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타고 하산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주 능선 등산로에 그늘이 없어 여름보다는 봄‧가을철 산행지로 알맞다. 임학공원과 계양산성을 잇는 계양산 무장애길, 계양산 장미원 옆 ‘계양산 무장애 나눔길’을 이용하면 장애인과 노약자도 편안하게 산을 오를 수 있다.
계양산은 등산과 역사 탐방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산이기도 하다. 삼국시대에 축조되어 조선 시대까지 사용된 계양산성, 고려 시대 학자 이규보가 머물던 자오당터와 초정지, 봉월사터·봉화대의 유적지 등 흥미로운 볼거리가 다양하다. 산 정상에 오르면 동쪽으로 김포공항을 비롯한 서울특별시 전경이, 서쪽으로는 영종도와 강화도 등 주변 섬이 한눈에 들어찬다. 산 아래에는 인천 최초의 도시자연공원으로 지정된 계양공원, 색색의 장미가 피어 꽃놀이 명소로 사랑받는 계양산 장미원 등이 자리한다.인천둘레길 1코스를 따라 계양산 일대를 한 바퀴 크게 둘러보아도 좋다. 7.3km 길이의 둘레길은 연무정에서 시작하여 징맹이고개 능선을 타고 계양산 삼림욕장을 지나 출발지로 되돌아오는 순환형 코스다.

계양산(桂陽山/395m)
계양정(桂陽亭)
인천시
계양산 정상에서 본 뷰
계양정(桂陽亭)
계양산 목계단
계양산(桂陽山)
깃대봉(200m)
깃대봉(200m) 삼각점
깃대봉(200m)
계양산성(桂陽山城) 길

계양산성(桂陽山城)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양산(桂陽山)에 있는 삼국시대 테뫼식으로 축조된 성곽. 산성. 
국가지정문화재계양산성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산동의 계양산에 위치하고 있다. 계양산은 인천광역시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서 해발 395m이다. 옛 부평도호부(富平都護府)의 진산이며, 안남산(安南山)이라고도 한다. 계양산성은 계양산 주봉에서 동측 산정 주변에 자리잡고 있다. 삼국시대에 처음 축조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임진왜란 당시 이곳에서 명군과 일본군이 싸웠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계양산성은 계양산의 주봉(395m)에 축조된 것이 아니고 주봉의 동측에 있는 봉우리(202m)를 에워싸는 형상으로 축조되어 있는 테뫼식 산성이다. 주봉의 산정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면 서쪽으로 서해바다를 볼 수 있고, 동쪽으로 김포평야 일대와 강서구 및 양천구 일대를 확인할 수 있다. 날이 맑은 날에는 여의도까지 조망이 가능하다. 북쪽으로는 행주산성을 비롯하여 일산 신도시 아파트 단지까지 확인이 가능하다.계양산성은 『삼국사기(三國史記)』나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하지만 『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 부평도호부 고적조에 “계양고산성은 석축 둘레가 1,937척으로, 전하기를 삼국시대에 쌓았다고 하나 지금은 폐허가 되었다”라고 되어 있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도 “부평 계양산성은 삼국시대에 축조된 성으로서, 석축 둘레가 1,937척이나 지금은 폐허가 되었다”라고 되어 있다. 두 기록을 통해 계양산성의 초축 시대가 삼국시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경기도 지방명승』 계양산 고적지조에는 “현존하는 성벽의 일부는 340여 년전 고니시[小西行長]가 명군에 대항하기 위해 쌓았다고 하나 잘못된 것이다”라는 내용이 남아 있다.계양산성은 1997년 인천광역시가 지표조사를 실시하였다. 2001년 선문대학교 고고연구소가 계양산 일대 문화유적 지표조사를 하였으며, 2003부터 2008년까지 1~3차 발굴조사를 진행하였다. 특히 3차 발굴조사 결과 집수정 유구에서 목간들이 출토되어 학계의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이후 2009년 겨레문화유산연구원에서 4차 발굴조사를 진행하였으며 북문지, 배수시설, 건물지, 내벽보축 등 총 26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다.계양산성은 경기만 방어체계의 중심성이라 할 수 있다. 남으로 문학산성을 관할하고 북으로 김포반도의 산성들과 연계하여 경기만 북부지역을 방어했을 가능성이 높다. 경기만 일대로 진입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해안성들을 총괄 관리하는 지휘본부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리적 위치를 감안하면 백제에 의해 먼저 축조되었고, 이후 고구려와 신라가 이 지역을 차지하게 되면서 증축하여 거점으로 활용되었을 것이다.

계성정(桂城亭)
금계국
금계국
계양산(桂陽山)
계산(경인여자대학교)역/桂山(敬仁女子大學校)驛)

계산(경인여자대학교)역/桂山(敬仁女子大學校)驛)
계산(경인여자대학교)역/桂山(敬仁女子大學校)驛)은 대한민국 인천광역시 계양구에 있는 인천 도시철도 1호선의 전철역이다.
2면 2선의 승강장을 가진 지하역이다. 개찰구가 승강장별로 분리되어 있어, 개찰을 하지 않고 승강장 사이를 건너갈 수 없다.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 있다.

계산(경인여자대학교)역/桂山(敬仁女子大學校)驛)
계산(경인여자대학교)역/桂山(敬仁女子大學校)驛)
산행트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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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 → (인천1호선) → 원인재 → (수인분당선) → 한대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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