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여러분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박진하2025.04.16 11:50조회수 467
“부형들아 내가 지금 여러분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행22:1)
나는 대전삼육중학교와 서울삼육고등하교를 졸업한 후에
1984년에 삼육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했으며,
신학과 시절에는 과천 교회, 인천중앙교회, 서울 중계동 교회
그리고 서울 금호동 교회에서 교육 전도사로 일했고,
졸업 후 나의 개인적 허물로 인해 곧바로 목회 콜링을 받지 못해서
평택 문곡 교회(현재는 중부 교회)에 서중한합회 결정에 따라
전도사로 부임하여 임시 목회를 했으며
서울 남부 교회에서도 전도사로 봉사했습니다.
3년 동안 서중한합회 결정에 따라 임시 목회 후에 당시 서울 반포교회에서
후배들과 함께 목회 나가기 전에 보는 공식 테스트 과정을 마쳤습니다만,
나는 다른 목회 후보자들에게는 없는 조건을 서중한합회장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인천 중앙 교회 전도사 시절에 교인들에게 시골 생활을 가르쳐서
6가정이 인천에서 강원도 등지로 시골 생활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당시 인전 중앙 교회 담임이셨던 OOO 목사님께 가서
용서를 받고 오라는 조건이었습니다.
추운 겨울 날, 부모님을 모시고 그 목사님 사택(당시 공릉동)으로 찾아뵙고
나와 부모님 모두 무릎을 꿇고 목사님께 용서를 빌었으나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목사님은 "결코 용서할 수 없다"는 말씀을 하셨고,
나의 어머님께서 그 목사님의 바지가랑이를 붙들고 흐느껴 울면서
"제발 내 아들의 잘못을 너그러이 용서하시고
젊은 아들이 목회를 나갈 수 있게 해 달라"고 울부짖었으나
너무도 냉정하게 "용서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한국 재림교회서의 내 목회의 꿈은 그렇게 좌절 되었습니다.
그 후 목회 좌절의 절망으로 인해 네가지 합병증이 와서 죽을 뻔한 경험들을
수년동안 하면서 하나님도 없고 예수님도 없는 공황 상태의 늪에 빠져
허덕일 때 자비로우신 주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1990년 2월 4일 새벽 4시에 꿈속에서 나타나셨고
재림의 장면과 조사심판의 장면을 실제처럼 보여주시면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꿈을 깨고 난 후에 너무도 두려워 23시간을 무릎을 꿇고 통곡하며 기도한 후에,
죽으면 죽으리라는 심정으로 먹던 폐결핵성 늑막염 약 등 수많은 약봉지를 태워 버리고
아무도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안성 땅에 내려와서 독립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놀랍게도 네가지 합병증이 씻은듯이 나았고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부르심에
순종한 댓가로 수많은 영혼들이 개종하고 개혁하여
재림성도가 되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나는 비록 한국 재림교단의 부름을 받지 못했으나
특이한 방식으로 주님이 직접 불러 주셨고
그 증거가 바로 지금까지 오직 변함없는 믿음으로 재림교회의 진리만을 전하여
교회를 이루고 요양원과 복지타운을 이루고
10만명이 넘는 구독자가 있는 명광미디어의 선교 현황을 이룩하게 한 것입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2008년 필리핀 재림교회 국제 대학원(AIIAS)의
한 교수님을 통해 나에게 필리핀 실랑 지역 문띵일록에
교회를 개척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내가 교수님의 제안에 오케이하자마자 바로 그 다음날
필리핀 합회장님과 총무부장이 내가 있는 호텔로 찾아왔고
거기서 내가 필리핀 합회에 소속되어 목회를 하는 일에 합의에 이르고,
두 달 후 나와 합회장 등이 또 한번의 미팅을 가진 후에
그 합회가 2회의 행정위원회를 열어 공식 결의한 공문을 보내 주었으며
나를 합회에 초청하여 직원 채플 시간에 직원들을 위해 설교를 부탁하였고,
직원들에게 나를 소개할 뿐 아니라 그 합회 모든 목회자들의 모임에
초청하여 설교할 기회를 주기도 했습니다.
그 후 나는 필리핀 합회에서 공식적으로 목사로 인준되어
목사 신분증을 발급 받게 되었고,
문띵일록 교회를 2년만에 정식 교회를 조직하였고
그 후 10년 동안 한국에서 거의 매달 필리핀을 오고 가면서
문띵일록 교회를 담임하여 부목사들과 함께 목회를 하였습니다.
내가 필리핀에서 목사로 부름받은 것은 어떤 비난자들의 주장처럼,
목사가 되려고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한 것과는 전혀 반대로
당시 합회측의 간절한 요청과 행정위원회의 결의에 따라 한 것입니다.
필리핀 재림교회 국제 신학대학원(AIIAS) OOO 교수님이 이에 대한 산증인이십니다.
처음에 합회측에서는 차고(garage)에서 예배 드리는 열 댓명 쯤 되는
문띵일록 청년들을 위해 월세로라도 교회 건물을 얻어 내가 책임져 줄 것을
요청했으나 나는 기도 후에 토지를 매입하고 교회와 사택을 건축했습니다.
나는 당시 우리 교회가 전적으로 부담하여 매입한 토지와 건축한 교회, 사택도
충분히 내 개인적 명의로 해 놓을 수 있었으나 아예 처음부터
누가 말한 것도 아니지만 변호사를 통해 합회에 기부했습니다.
나는 1990년 5월에 안성에서 독립목회를 시작한 후 지금까지 단 한번도
이설에 빠지거나 재림교회 공식 교리나 신조에서 이탈한 적이 전혀 없으며
교단은 인정하지 않았어도 나는 처음부터 언제나 합회 서회를 통해
매달 교회 지남과 매기 교과책을 구입하여 성도들과 공유해 왔습니다.
그리고 늘 기도 제목이 교단에 소속된 교회가 되게 해 달라는 것이었고,
신계훈 연합회장님과 한상우 연합회장님 시절 등 교단에 들어가기 위해
몇 번의 노력을 했으나, 그때마다 합회와 연합회는 내가 도무지 수용할 수 없는
조건들을 달았으며, 주영봉 합회장님은 당신이 각서를 써 줄테니
무조건 교회와 요양원 토지 건물 모두 다 합회에 기부하고
내가 개척하여 목양하고 있는 교회는 합회가 발령하는 다른 목회자를 받고,
나는 삼육대학 대학원이나 필리핀 국제 대학원에 장학금을 줄테니
안성을 떠나라고 하면서 그것도 어느 누구에게도 없는 '특혜'라고 강조를 했습니다.
나는 언제나 모든 조건을 다 수용하겠으나 단 한 가지 “을릉도도 좋고
강원도의 교인 두 세명만 있어도 좋으니 전도사로 정식 발령을 해 달라”는
최소한의 조건을 합회측에 요청했었습니다.
내가 대학원을 굳이 갈 필요가 없는 것은 내가 개척한 교회가 그 증거이고
내가 개설하여 성공적으로 일구어 놓은 요양원 토지와 건물이
내 목회의 산물이기 때문에 전도사로 공식 발령을 해 줄 것을 요청한 것입니다.
그러나 합회측은 나의 제안은 안중에도 없고 무조건 모든 교회와
요양원 부동산 모두 합회에 기부하고 안성을 떠나라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만 하여 교단에 소속될 수 있는 길이 막히곤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2016년 즈음에 서중한합회장이 되신 목사님이 나에게 전화를 주셨습니다.
“박목사님, 그동안 많이 외로우셨을텐데 내 임기 안에 무조건 우리 합회에
들어오도록 해 드리고 평신도 목사 제도도 있으니 합회에서 그렇게 해 줄테니
이번 기회에 합회에 들어오라”고 하는 기쁜 소식을 전해 주셨습니다.
당신이 임기 안에 “여의도 교회 신현규 목사 문제”와 ‘박진하 목사의 안성 교회’건을
반드시 정상적으로 해결하시겠다는 의지도 나타내 주셨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합회장님은 나와의 약속을 못 지키시고 여의도 교회건만
해결하고 임기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이에 나는 너무도 서운하여 당시 총무부장이 합회장이 되었을 때,
내가 합회를 찾아가 면담 요청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너무도 설움에 북받쳐서 합회 사무실에서 몇 몇 목사들이
모인 곳에서 통곡하며 몇 십분 동안 소리를 내며 펑펑 울었습니다.
“도대체 이 세상 어느 교회가.... 버젖이 한 교회로 자리잡아 재림 신앙을 하면서
합회에 들어오기를 그토록 오랫동안 소망함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무슨 이유로,,,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박진하라는 이름 끝에 달린
교회도 성도도 정상적으로 보질 않고 왜 받아 주지 않느냐”며 나는 통곡했습니다.
그리고 내 나이가 60이 다 되어 가는 당시 이대로 또 다시 합회장 이름으로
약속한 약속을 못 지키고 그 당시 증인이었던 총무부장이 합회장이 되어
그 약속을 못 지킨다면 내가 ‘중대한 결단을 내리겠다’는 엄포를 놓았습니다.
그래서 겨우 겨우 정말 가까스로.... 우리 안성 브니엘 교회가
서중한합회에 소속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길게 써 내려온 나와 우리 안성브니엘 교회의 역사는
단 한 번도 우리는 재림교회를 떠난 적이 없으며 나간 적이 없고
언제나 우리는 재림교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살았으며
나는 안성에서의 목회 35년 동안 언제나 한결같이 우리 재림교회의
마지막 기별을 전했고 우리 재림교회가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하나님의 마지막 교회임을 설교하며 가르치며 살아 왔습니다.
나와 우리는 단 한 번도 사상적으로 흔들리거나
이설에 빠진 역사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오늘도 나의 목사 이력에 대해 ‘정식이 아니다’
‘우리 교회는 삼육대학을 나오고 전도사 과정이 어떻고 해야 정식이다’라는식으로
마치 내가 가짜 목사나 되는 것처럼 내 명예를 훼손하고 폄훼하는 자들에게
나는 한국 재림교회에서 목사가 된 어느 목사님들 못지 않게
대전삼육중학교, 서울 삼육 고등학교, 삼육대학교 신학과를 거쳐
교육 전도사 3년, 임시 사역자로 3년을 목회했고, 그 후 하나님의 은혜로
2008년에 필리핀 합회를 통해 재림교회의 목사로 부름을 받았으며,
2018년 내가 개척하여 지금까지 이끌어 온 안성 브니엘 교회가
서중한합회에 소속이 되어 누구 못지 않게 우리 재림교회의 목회자 코스를
혹독한 과정을 통해 밟아 온 것을 하나님과 사람 앞에 당당히 밝히고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목회자들이 어떤 코스를 통해 목사가 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필드에서 이루어지는 실질적인 '목회 실적'입니다.
아무리 정규 코스를 밟아 목사가 되어도 목사 노릇을 제대로 못하는
불충한 종들이 있는가 하면, 학사 편입 내지는 대학원 과정만 밟았어도
영혼 구원을 잘하는 목사들이 진짜 목사인 것입니다.
내가 불가피하게 또 다시 나와 우리 교회의 역사를 들춰 내는 것은
내가 사람들에게 인정 받고자함이 아니라,
한국 재림교회에서 목사로 인정하지 않으면 마치 어느 사람도
재림교회의 정상적인 목사가 아니라는 식의 매도에 항변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오늘 이렇게 장문의 변명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많이 부족하지만, 우리 한국의 재림 성도님들께서
교단에 소속되기까지 무려 독립 목회로 27년이나 외롭게,
그리고 고독하게 재림 성도로 살아 온 나와 우리 안성 브니엘 교회 성도들에게
주님의 심정으로 혜량(惠諒)해 주시기만을 바라옵나이다!
댓글 6
이헌 2025.04.17 06:55
주님 보시기에 충성된 종된 삶을사신 목사님 건강하시고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큰일 이루시길 기도로 응원합니다
박진하 2025.04.17 09:15
격려의 댓글에 큰 힘을 얻습니다.
고맙고 감사 드립니다.
오난숙 2025.04.17 08:54
하나님 보시기에 강직하고 진실하며 충성되고 유능한 박진하 목사님의 모든 그동안의 노고와 마음속 깊은 서러움과 외로움을 온 우주의 창조자시요 구속자이신 하나남은 다 알고 있으십니다. 그래서 비록 이 작은 한국 재림교단의 옹졸하고 편협한 지도자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그들과는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통 큰 그릇인 박 목사님을 수용하지 못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전화위복이 되어 지금의 하나님의 큰종인 박진하 목사님을 있게 만드신 하나님의 높고 넓고 깊으신 은혜를 찬양합니다!!.. 마음이 순결하고 진실한 주의 참 자녀들을 이 모든 진실을 다 알고 있습니다. 더 힘내셔서 마지막 주의 사역에 전념하시기 바랍니다. 건강에 유의하시고 브니엘 요양원, 명광교회. 또 온 가족들이 주안에서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미국에서는 2022년도부터 해마다 야구공 크기의 우박이 내렸다는구요. 모든것이 성경의 예언대로 가고 있군요. 함께 더 깊은 믿음의 기도로 들어가 하니님의 음성을 듣고 이유불문하고 주의 뜻에 순종함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최후의 승리자가 됩시다. - 옛 은사 오난숙 선생이
박진하 2025.04.17 09:19
존경하고 사랑하는 은사 선생님,
가끔 잊지 않고 제자 사랑을 듬뿍 주실 때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생물을 가르쳐 주실 때 교과 공부 시간마다 우리 영혼들을 사랑하사
성령 충만한 음성과 모습으로 예수님에 대해 말씀해 주셨던 그 영감의 순간들이
거의 50여년 흘렀지만 아직도 제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제자를 잊지 않고 격려와 응원을 해 주시니 감사 드립니다.
선생님의 기도와 응원처럼 마지막 시대 하나님께 부여받은 사명을
순교자의 삶으로 이루는 종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차진순 2025.04.18 22:28
정말 고생하셔습니다
나이테 2025.04.29 10:53
외롭고 어두운 삶에서도 주님께서 조건없이 주시는 사랑의 그빛으로 꿋꿋하게 견디시며 버텨오신 하나님의 종 목사님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
위치에 약간 높음에 있을때 하늘의 지혜를 구하며 성령의 세미한 음성을 한국 농원은 물론 전세계 재림 교회가 현장의 작은 소리도 놓치지 않는 이처럼 한 인생의 때늦은 길목에서 긴외로움이 묻어나는 일들이 다시는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슬퍼하면 주님은 우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