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시민서가 1호인 신정일의 서가에서 <서가지기가 들여주는 서재 산책> 네 번째 강연 <해파랑 길 인문기행>을 진행했다.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에서 2008년 부산에서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한 발 한 발 걷고서 책을 쓴 뒤 문회체육관광부에 제안하여 조성된 해파랑 길을 서재에서 강연을 하면서 많은 상념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동백섬에 있는 해운대海雲臺는 옛날 신선이 노닐던 곳이며, 신라 말 대학자 고운 최치원崔致遠이 단을 만들어 ‘해운대’라 칭하고, 노닐었던(遊賞) 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볼 수 있는 바위 위에 음각된 해운대라는 각자刻字는 후세 사람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해운대 위에서 신선 사는 삼신산 바라보고서
취한 나그네 미친 듯 읊으니 기분 절로 으쓱하네.
하늘이 별을 우러러보니 손에 닿을 듯 말 듯 하고
너른 바다를 굽어보니 작은 술 단지처럼 보이네.
조룡에 들어 있은; 물고 장차 달려가서
둥그스름한 대마도를 베어버리고 돌아오려네.
피리와 북소리 한 번 울리니 파도가 들끓는데,
장군의 위엄 서린 호령에 천둥소리 잦아드네.
조선 중기의 문신인 김석주金錫胄가 이곳 해운대에서 읊었던 시를 떠올리며 해운대 해수욕장을 걷는다. 해운대 해수욕장을 거니는 젊은 사람들을 바라보노라니 문득 조선 후기인 1893년 경에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을 답사하고 부산을 찾아왔던 영국 왕실의 국립지리학자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여사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증기선 갑판의 먼 거리에서 한국인들을 처음 보았다. …… 한국인들은 참신한 인상을 주었다. 그들은 중국인과도 일본인과도 닮지 않은 반면에, 그 두 민족보다 훨씬 잘생겼다. 한국인의 체격은 일본인보다 훨씬 좋다. 평균 신장은 163.4센티미터지만, 부피가 큰 흰옷 때문에 키는 더욱 커 보인다. 또 벗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없는 높다란 관 모양의 모자 때문에도 키는 더 커 보인다.
한국인들이 두 나라 사람들에 비해 체격도 크고 잘생겼다고 평한 비숍여사, 그때 오늘날 전 세계에 불고 있는 한류를 예언한 것은 아닐까?
여름이면 나라 곳곳에서 찾아온 피서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 해운대 해수욕장의 겨울은 스산하다.
(...)
싱싱하게 윤기 흐르는 검은 미역이 항구 도처에 지천으로 널려 있고 건조망마다 미역을 너는 손길들이 분주하다. 그리고 즐비한 어류들 사이로 유난히 학꽁치가 눈길을 끈다.
“그대들의 눈에 비치는 사물들이 순간마다 새롭기를, 현자賢者란 바라보는 모든 사물에 경탄하는 사람이다.”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에서 읽었던 한 구절이 문득 떠오른다.
“야! 저 싱싱한 것 들 좀 봐” “저 활기찬 사람들 좀 봐” “ 저 싱싱한 멸치와 학꽁치를 좀 봐” “어떻게 저것들을 한 점도 맛보지 않고 이곳을 지나칠 수 있겠어”
온갖 소리로 꼬드겨도 아직 이른 오전이라서 그런지 일행 중 어느 한 사람도 구미가 당기지 않나 보다. 아쉽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다음 항구를 기약하며 갈 수 밖에…… 입 안에 맴도는 군침만 삼키며 발걸음을 옮긴다. 파라장波羅場을 지나 죽성만이 펼쳐진 죽성항에서 군침만 삼켜 달래던 식욕을 채웠다. 멍게, 해삼, 소라 개불에 소주 한 잔.
걸어서 항구에 도착했다.(중략)
조용한 마음으로 배 있는 데로 내려간다.
정박 중인 용골龍骨들이
모두 고개를 들고
항구의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하략)
황동규 시인의 <기항지>를 읊으며 바닷가를 걷는다.
(...)
마차진리에 이르기 전 통일 안보 교육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교육을 받은 뒤에 7번 국도를 따라 제진리, 사천리, 송현리를 지난다. 그곳에서 통일전망대가 멀지 않다. 통일전망대를 가만가만 오른다. 그 아래 걷고 싶어도 걸을 수 없는, 우리의 발길이 허용되지 않는 북녘 땅이다.
“온갖 것 보러 태어났건만 온갖 것 보아서는 안 된다 하더라.” 괴테의 문장처럼, 마음대로 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곳, 한반도 북쪽 땅이다. 그러나 “발은 땅 위에 있어도 뜻은 구름 위에 있다.”는 옛말처럼 자유로운 영혼이야 어디인들 갈 수 없겠는가?
통일 전망대에서 북으로 펼쳐진 해금강을 바라보는데, 문득 구름이 걷히며 금강산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너무도 선명하게 보이는 금강산의 모습에 그리움은 더욱 커지고……, 기쁨만큼이나 큰 아쉬움을 안고 전망대를 내려와 다시 7 번 국도를 따라 해변 길로 내려간다. 갑자기 길이 끊긴다. 끊어진 7번 국도는 수풀 속으로 사라지고 없다.
맹자는 “산길도 많은 사람이 다니면 큰 길이 된다.” 고 했는데, 길이 막히다가 보니 사람의 통행마저 끊어진 지 오래다. 사람의 발길을 기다릴 휴전선 155마일 최북단 동해 바닷가 길, 언제 쯤 우리의 발길을 자유롭게 허용할 수 있을까? 저 길을 마음껏 걸어 두만강에 갈 수 있는 그 날을 염원하며, 내 영혼의 자유로운 통행로를 만들자.
문득 “바다는 끊임없이 새로 시작하는 것”이라는 바이런의 시 구절이 떠오르며 막혔던 길이 뚫렸고, 나는 한 발 한 발 북녘땅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뒤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수많은 사람들이 걷고 또 걷는 해파랑 길을 다섯 번에 걸쳐 걸었는데, 언제 또 다시 그 길을 걸을 날이 있을까?
7월 14일은 <걷기의 즐거움>이다.
2026년 6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