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ːPaksː기사ː칼럼

[내 인생의 영화] 복수의 립스틱

작성자쎄르니|작성시간03.12.22|조회수890 목록 댓글 0
[내 인생의 영화] 복수의 립스틱

1981년, 감독 아벨 페라라 출연 조 타멜리스, 앨버트 싱키스 출시 씨네맥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으나 어려서부터 책을 읽어도 그렇고 음악을 들어도 그런 것이, 남들 다 좋다는 이른바 세계명작은 젖혀놓고 꼭 뭐 저런 괴물이 다 있나 싶게 이상하고 덜 알려진 물건들만 탐해온 터이다. 물론 사정은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인데, 괴물은 자연 귀물이어서 썩 마음에 드는 영화를 구해보기란 쉬운 노릇이 아니었다. 그러다 92년인가에 웬 폴 매카트니 닮은 친구를 오다가다 만나 사귀게 되었거니와 이후 내 엽기 취미를 가일층 북돋워주게 될 그 고수는 이름을 이훈이라 하였다. 이후로 그 자와 더불어 영화와 음악을 즐겼던 몇년간은 마흔해 다 되어가는 내 인생에서 문화적으로 가장 풍요로웠던 시기였다. 지금 감독 데뷔를 준비하는 윤, 영화음악 음반 프로듀서 조, 라디오 DJ 송, 영화포스터 가게 사장 이, 재즈평론가 이, 방송 영화 프로그램 작가 이, 영화담당 기자 오 등이, 만났다 하면 꼭 남들 출근하느라 길 막히는 시간이 지나서야 자리를 파하곤 하는 술친구들이었다. 물론 당시는 대개 무직이었으니 시간은 남아돌았다. 나도 데뷔작을 발표한 직후였지만 언제 또 영화를 만들게 될지 아득했던 나머지 누구라도 소개받으면 "한때 영화감독으로 불렸던 아무개올시다"하고 인사하던 시절이다. 이훈 역시 미국 유학에서 막 돌아와 밥 대신 영화보고 잠 줄여 술 마시면서 에멜무지로 살던 처지였으니 그 다망한 와중에도, 영화를 심각하게만 보는 나를 훈장이라 비웃어가며 때로는 자상하게 지도하고 때로는 따끔하게 편달하기를 어언 몇날이던가. 그를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그 무서운 (블루 벨벳)도 낄낄거리며 볼 줄 알게 되었고 교과서에 나오는 근엄한 예술가가 아닌 천진난만한 개구쟁이 늙은이로서의 브뉘엘과도 친해지게 되었던 거였다. 아벨 페라라와 정식으로 인사하기도 그때 일이었다. 전에 이미 스카라극장에서 (차이나 걸)을 본 바는 있었지만 대표작이라 할 만한 (복수의 립스틱)(Ms.45, 1981)은 이훈이 어렵사리 구한 LD 덕분에 처음 만날 수 있었는데, 거기서 청각장애인 시각장애인 처녀는 등장하자마자 대낮에 두번 강간당하고 있었다. 누가 재단사 아니랄까봐 두번째 사내를 다리미로 때려죽이고 그 시체를 잘 토막내 냉장고에 쟁여두었다가 잠 안 오는 밤이면 한 덩이씩 들고 나가 뉴욕 곳곳에 불법투기한다. 그때마다 강간범이 남기고 간 45구경 콜트로, 보이는 족족 사내들을 쏘아죽임은 물론이다. 결국은 가장무도회에 수녀옷을 입고 가서 최

컥?학살 파티를 벌이다가 친구의 칼에 찔려죽는다. 멋지지 않은가! 얘기도 얘기려니와 도무지 잔재주나 똥폼이라곤 없이 순수하고 간결하게 할말만 딱 하고 마는 이 젊은 페라라는 늙은 페킨파를 연상시키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훈 잘 쓰던 말대로 "그냥, 뜩!" 해치우는 거 말이다. Just Do It! 친구들이 일러 뜨기즘이라 했고 다른 말로는 다짜고짜주의, 훗날 그 자신이 (달콤한 포로)나 (마스카라) 같은 영화를 만들 때 발휘하곤 했던 바로 그 정신이었다. 얼마 후 다시 우리는 (악질 형사)(Bad Lieutenant, 1992)를 모여앉아 보았다. 에둘러 말하는 법 없고 조잡한 수사학 따위는 아예 배제하는 스트레이트한 태도가 여전했다. 성당에서 윤간당하고 입원한 수녀의 성기를 클로스업으로 "뜩" 보여주는 그 장면, 타락한 가톨릭 형사 하비 케이텔의 고뇌를 묘사하는 데 주저없이 십자가의 예수를 걸어 내려오게 하는 대담함에 우리는 매료됐다. 언제나 단순하고 강렬한 영화를 좋아하는 이훈은 앞의 것을, 도덕적 딜레마를 중시하는 나는 뒤의 것을 더 쳤지만 그런 차이쯤은 아무래도 좋았다. 돌이켜보건대 서울의 우리는 뉴욕의 페라라를 존경한 게 아니었다. 차라리 그것은 동지적 유대감에 가까운 것이었다. 우리는 페라라와 하틀리, 자무시, 카우리스마키를 보면서 장르의 올가미에 사로잡힌 할리우드 오락영화도, 자의식의 함정에 빠진 유럽 예술영화도 아닌 제3의 길이 거기 있다고 감히 믿었다. 이제와 생각하니. 순진했나?

이훈을 만난 시간은 짧았다. 데이비드 보위의 노래제목처럼 딱 "오년". 그가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우리의 열광적인 청년 시절도 막을 내렸다는 걸 우리는 알았다. 이훈이 남긴 글에 이런 문장이 있다. "물어보지도 않는데 서른살에 죽을 거라고 자꾸 입방정 떨더니만 정말 서른살에 골로 간 마크 볼란.." 무인도에 한장만 가져가라면 고르겠다던 보위의 (지기 스타더스트와 화성에서 온 거미들의 흥망성쇠) 앨범 수록곡 (록앤롤 자살)엔 또 이런 말이 나온다. "당신은 카페를 그냥 지나쳤지. 너무 오래 살았다고 생각했으므로 먹지도 않았네." 그런데 왜 그대는 96년 그날 밤, 불이 나기로 돼 있었던 "롤링스톤즈" 카페에 들어갔던 건가. 화장됨으로써 두번 불탄 이훈을 양수리 강물에 띄워보내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우리는 서로에게서 중년 사내의 피곤한 눈빛들을 발견해야 했다. 그 순간부터 이미 우리에겐 페라라고 뭐고 안중에도 없었다.

박찬욱/ 영화감독.(달은. 해가 꾸는 꿈) (삼인조)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