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연필의 「천문」 감상 / 이수명 천문 김연필 유리로 된 달빛 같은 밤, 달빛으로 된 거울 같은 밤, 거울 속에 비친 어두운 밤, 밤의 너머에 비치는 어떤 밤. 어떤 유리로 된 밤, 어떤 유리로 만든 밤, 어떤 유리를 만든 밤, 어떤 유리로 남은 어떤 밤. 어두운 밤. 유리로 된 달빛 같은 밤, 달빛으로 된 거울 같은 밤, 밤으로 된 겨울 같은 밤. 겨울로 된 밤. 겨울에 비친 밤. 겨울 속에 남은 어떤 밤. 어두운 밤. 유리된 달빛 같은 밤. 해가 없는 밤. 해가 없이 빛나는 밤. 밤마다 사라지는 밤. 밤의 멀리로 사라지는 그 어떤 밤. 그 어떤 밤의 조각 같은 어떤 유리 같은 어떤 달빛 같은 어떤 조각만 남은 어떤 밤. 모든 밤. 모든 밤이 서술되는 밤. 모든 밤이 서술되는 어떤 유리로 된 거울에 비치는 밤. 시집 『검은 문을 녹이는』 2021 김연필 /1986년 대전 출생. 한양대 국문과 수료. 2012년 《시와 세계》신인상으로 등단. ........................................................................................................................................... 밤이란 무엇인가. 날마다 지상을 가득 덮어버리는 어둠은 무엇인가. 천문학 같은 과학적 분석이나 철학의 심오함을 가지고 밤에 대해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과학이나 철학이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 시는 말하기가 아니라 보여주기를 통해 밤을 제시한다. 그것도 어떤 상황으로 정돈된 한 장면이 아니라 그냥 밤의 여러 모습이다. 밤은 “해가 없는 밤”으로 어두우면서도 또 “해가 없이 빛나는 밤”이기도 하다. 시는 밤의 이러한 모순을 설명하려 하지 않고 그냥 보여준다. 시에는 또 유리, 달빛, 거울, 겨울 같은 단어들이 등장한다. 이 단어들은 밤과 연결되어 밤의 여러 모습을 보여주는 데 함께한다. “유리로 된 달빛 같은 밤” “달빛으로 된 거울 같은 밤” “거울 속에 비친 어두운 밤”을 보면 단어들이 마치 바톤을 넘기며 미끄러지듯 춤을 추는 것 같다. 춤은 시에서 계속된다. “유리로 된 달빛”과 “유리된 달빛”의 미묘한 터치, “거울”과 “겨울”의 조율과 순환이 있다. 말들이 논리나 의미로 굳어지는 것이 아니라 언어 놀이를 하고 있다. 이것이 시에서의 밤이다. 언어 놀이와 밤의 놀이가 어우러지는 “모든 밤”이다. 이수명(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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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