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미의 「침묵 사제」 감상 / 유희경 침묵 사제 조용미 그는 침묵을 관장하는 사람이다 그의 일은 침묵을 세심하게 관리하기 쉽도록 분류해두는 것이다 그는 침묵을 장악하지는 못하더라도 관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침묵의 분류 관리 통제는 그의 업무 전반에 걸친 일인데 모든 침묵이 간단하게 분류되는 것은 아니어서 그는 침묵을 맡아 다루는 일에 심혈을 기울여 생의 후반부를 온전히 바쳐야만 했다 침묵은 명령할 수도 없고 강제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 그의 사명감은 약간 헐거워졌다 침묵을 적절히 조정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그는 침묵이 점점 싫어졌다 그는 침묵을 규정하여 품목별로 분류하는 데 결국 실패했다 모든 침묵에는 무엇보다 그가 좋아하는 통일성이 결여되어 있어 세부 관리의 효율성이 떨어졌다 침묵의 불합리와 모순은 그에게 크나큰 시련이었다 침묵은 입을 다물기보다 귀를 기울이기를 원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침묵을 관리하는 일은 무엇보다 완전한 침묵 속에서는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침묵을 관리하는 일은 수많은 침묵의 소란을 견뎌내는 일이었다 ―시집 『초록의 어두운 부분』 2024.5 ........................................................................................................................ 몸가짐에 대해서라면 아버지는 더없이 엄격하셨다. 자주 듣던 꾸중은 ‘수다하다’였다. 말이 많으면 말실수를 하게 된다. 돌이킬 수 없다. 아버지의 지적은 온당하다. 하지만 인제 와서야 나는 아버지로부터 오해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수다하지 않다. 침묵에 서툴 뿐이다. 나는 퍽 예민한 아이였다. 작은 일에도 쉽게 상처를 받았다. 덕분에 무리 짓는 일에 어려움이 많았다. 혼자 있는 것이 좋았다. 나의 가장 좋은 친구는 나 자신이었다. 혼자 있는 시간에는 어색함이 없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이러저러한 사람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누군가를 대하는 일은 쉽지 않다. 관계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단단해지기 마련일 텐데, 아무리 뒤적여도 내겐 내어줄 것이 없는 것만 같다. 나는 어색함을 견디지 못한다. 당황한 모습을 감추기 위해 수다스러워진다. 그래 놓고선 헤어져 돌아서는 순간부터 내내 후회를 거듭한다. 침묵 앞에 서툰 자신을 어떻게 길들여야 하는 것일까. 침묵은 입을 다물고 있는 행위가 아니다. 귀를 내어주는 행위다. 들으면서 말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입을 다물고 맞은편에 있는 상대의 말을 끈기 있게 듣기만 해도 나는 수다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뒤돌아 후회하는 일도 사라지겠지. 침묵에 익숙해지고 싶다. 참고 견디는 그 일이 쉬울 리 없다. 대신 익숙해지는 그 순간부터 마음은 한껏 가볍고 여유로워질 것이다. 유희경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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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