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다의 사랑을 실은 장미열차 ―강인한 시집 『장미열차』 이숭원 강인한 시인이 열두 번째 시집 『장미열차』를 냈다. 마흔다섯 편이 실린 시집이다. 네 부로 나뉘어 있는데 1부, 2부, 3부는 열한 편씩, 4부는 열두 편이 들어 있다. 네 부의 구분은 시의 성격에 따라 나눈 것 같다. 4부는 성격이 뚜렷하다. 현실에 대한 반응을 풍자의 형식으로 표현한 작품이 주를 이루어 시인의 현실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2부와 3부는 삶의 감회를 다룬 작품도 있고 대상에 대한 직관적 반응을 표현한 작품도 있어서 두 부가 크게 차별화되지는 않는다. 1부는 시인의 미학적 창조 의식이 두드러지게 반영된 작품들이 모여 있다. 그러니까 1부와 4부의 차이가 크고, 2부와 3부는 유사한 성향의 작품이 모여 있고, 1부의 작품이 미학적 우세를 보인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시인은 시집 앞의 ‘시인의 말’에서 세계와 의식이 부딪쳐서 포에지가 발생하는데, 일정한 규칙에 따라 시를 기획하지 않으므로 주어진 상황에 의해 시적 반응이 자유롭게 나타난다고 했다. 세계에 대한 시인의 자유롭고 자발적인 반응을 시로 표현했고 그것을 경향에 따라 네 부로 나누어 편성한 것이다. 나도 의식의 자유로운 반응을 따라 그의 시를 읽어가려 한다. 주로 미의식의 흐름을 따라 시적 윤기가 짙은 부분에 오래 머물며 그 의미를 음미하려 한다. 강인한 시인은 대상을 보고 상념을 일으키되 그 생각을 직선적 평면적으로 표현하는 예가 거의 없다. 그렇게 하면 시가 구성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환과 승화의 상상력을 통해 두 층위 이상의 다른 형상으로 전위시키거나 병치시켜야 한 편의 시가 이루어진다. 그 작업이 진행되지 않으면 그는 작품 발표를 하지 않는 것 같다. 발표된 작품은 단 하나의 예외 없이 그런 특성을 모두 갖추고 있다. 그는 고도의 직관으로 대상을 성찰하여 의미의 윤곽을 파악한 다음 거기 맞는 시의 의상을 입힌다. 일반적으로 진지한 그의 상상력은 때로는 유머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서 즐거운 삶의 여유를 선사하기도 한다. 새소리 바람에 실린다. 가늘고 뾰족한 깃털을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펼쳐든다. 초록 빗살들 사바나에 바람 불면 수사자 금빛 털도 바람에 날린다. 건너편 풀숲에 숨어 마사이 전사는 숨을 참는다. 먼 데서, 아늑하게 우레가 잦아든다. 풀숲에서 비죽 솟은 창과 창들. 조금 웃고 많이 우는 게 사랑이라고 풍경을 흐리며 낮은 목소리 들린다. 여기 또 저기 켄차야자 기다란 창이 배를 가르면 침묵을 뚫고 환호처럼 새의 부리가 줄줄이 터져 나온다. ―「우레가 지나가는 풍경」 전문 맨 앞에 수록된 「우레가 지나가는 풍경」만 보아도 시인의 고유한 특성을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다. 이 시는 아프리카 사바나 지대 마사이 족의 사냥 장면을 소재로 했다. 시인이 사바나, 마사이 등의 말을 썼으니 그 말을 믿고 그대로 따를 뿐이다. 어디서 이런 장면을 보았는지 따지지 말고 상황에 집중해야 한다. 새소리가 바람에 날리고 사냥을 앞둔 전사들이 조심스럽게 발을 옮긴다. 그 모습을 “초록 빗살들”이라고 표현했다. ‘빛살’이 아니라 ‘빗살’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가는 빗살처럼 정글의 초록 무늬가 가늘게 흔들리고 일렁이는 모습을 묘사했다. 수사자 금빛 털이 바람에 날린다고 했는데 이것은 상황의 긴장감을 고조하는 장면으로 마사이 전사의 깃털까지 수사자의 모습으로 비유하는 효과를 거둔다. 창을 들고 숨을 참고 있다가 목표물을 공격하는 순간 우레가 잦아드는 침묵의 정적을 느낀다고 했다. 결국 목표물은 쓰러지고 그 배를 가르자 “침묵을 뚫고 환호처럼/ 새의 부리가 줄줄이 터져 나온다”라고 했다. 사냥에 성공하여 전사들이 환호하고 사냥물을 포획하는 장면을 표현한 장면일 텐데 거기 ‘새의 부리’를 배치한 점이 이채롭다. 시인의 독특한 상상의 결과다. 그보다 더 특별한 구절은 그 앞에 나오는 “조금 웃고 많이 우는 게 사랑이라고”라는 시행이다. 긴박감 있고 다소 비정한 사냥의 장면에 왜 사랑 이야기가 삽입된 것일까? “조금 웃고 많이 우는 게 사랑”이라는 말은 사랑의 진실을 상징한다. 진정한 사랑이라면 웃는 일은 적고 우는 일이 많을 것이다. 이 고달픈 세상에 상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얼마나 힘들고 서러운 일이 많겠는가? ‘사랑의 환희’라는 말은 그 서러움의 시간이 지난 후 숨을 돌릴 때 나올 수 있는 말이다. 사랑을 키우고 사랑을 지탱하는 매 순간은 고달픈 울음의 연속이다. 이 말의 뜻은 잘 이해할 수 있는데 왜 이 말이 사냥의 긴장 어린 극한의 지점에 등장한 것일까? 여기에 이 시의 비밀이 있고 묘미가 있다. 그 낮은 목소리에 담긴 뜻을 알아야 “침묵을 뚫고 환호처럼/ 새의 부리가 줄줄이 터져 나온다”라는 문맥의 뜻도 제대로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시행을 설명할 자신이 없다. 다만 마음으로 그 안에 담긴 뜻을 느낄 뿐이다. 그 느낌을 깊게 간직하고, 조금 웃고 많이 우는 사랑을 충실히 실천해야, 이 의미를 해설할 수 있는 마음의 언덕이 마련될 것이다. 그날이 올 때까지, 아프리카 원주민들에게는 사냥이 동족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행위이고 그 행위가 거기 참여한 사람 누구에게나 조금 웃고 많이 우는 고달픈 작업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할 수밖에 없음을 새롭게 자각할 뿐이다. 이것이 이 시가 내게 베푼 이해의 선물이다. 부드러운 슬픔을 친구의 어깨처럼 기대고 그대는 나직나직이 울고 싶은 게지. 퀸 엘리자베스 장미의 이름으로 피어있는 오늘. 겹겹이 여민 분홍 베일 사이로 향기는 흐른다. 오랜 옛날도 바로 어제처럼 기억하며 내가 타지 않은 열차를 떠나보낸다. 잠들지 못하는 그대에게 보내고 또 하염없이 열차를 떠나보낸다. 작은 장미 정원에서 밤마다 피고 지는 꿈 한 닢 두 닢 헤아리는 그대에게 오월에 떠나보내는 장미 열차. ―「장미열차」 전문 「장미열차」는 분홍색 장미 ‘퀸 엘리자베스’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퀸 엘리자베스는 1954년 미국에서 개발한 분홍색 장미인데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즉위를 기념하는 뜻에서 여왕의 이름으로 명명하겠다고 해서 영국 왕실의 허락을 받아 퀸 엘리자베스로 이름을 정했다는 사연이 담긴 장미다. 강인한 시인은 그런 명명의 사연과는 관련 없이, 아름다운 장미에서 연상되는 사랑과 이별과 아쉬움의 정념으로 한 편의 시를 구성했다. 이 시에도 앞의 「우레가 지나가는 풍경」처럼 공들여 이해해야 할 미지의 국면이 있다. 첫 두 행 “부드러운 슬픔을 친구의 어깨처럼 기대고/ 그대는 나직나직이 울고 싶은 게지”는 시행의 구성만으로 아름답다. ‘부드러운 슬픔’이란 어구가 장미의 색감과 어울려 삶의 진실을 드러낸다. 퀸 엘리자베스의 분홍빛은 슬픔을 연상시키되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그런 슬픔이라면 그런대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는 감정의 여유를 느끼게 한다. 그것은 내가 기댈 수 있는 친구의 어깨에 비유될 만하다. 그런 부드러운 어깨가 있다면 세상의 웬만한 슬픔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을 것 같다. 분홍색 장미의 겹겹 베일 속에 담긴 향기처럼 옛날의 사연이 얽혀 있는 듯하고 과거의 시간이 흐르는 듯하다. “내가 타지 않은 열차를 떠나보낸다”라는 시행도 미지의 여운을 남기면서 삶의 단면을 환기한다. 우리가 사는 생이 내가 타지 않은 열차를 떠나보내는 것 같고 우리가 보낸 사랑의 세월 또한 시간이 지난 다음에는 타지 않은 열차를 떠나보낸 것 같으리라. 삶이든 사랑이든 그런 모순의 착시를 우리에게 가져온다. 그대는 장미가 피어난 오월의 정원에서 하나하나의 꽃잎마다 꿈의 사연을 담아 보내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것들은 한갓 타지 않은 열차를 떠나보내는 것 같은 허망한 추억이 될 뿐이다. 그러니 인생은 장미열차처럼 낭만적이면서도 허망한 그 무엇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이 시의 제목이자 소재인 장미열차는 우리의 사랑과 꿈과 삶의 표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늦가을 아침 산과 나무 그림자가 강물 위에 제 낯을 비추며 기웃거릴 때 큰황새왜가리 외발로 섰다가 오그렸던 다리를 편다. 큰 걸음으로 나선다. 물 냄새가 바람에 실려 오고 수초 사이를 누비는 굵고 기다란 놈에 시선을 꽂는다. 작은 물고기들이 방향을 틀며 소란하다. 한순간 깃을 쳐 레다를 덮친 거대한 백조처럼 큰황새왜가리 훨훨 날갯짓으로 바람을 일군다. 늠름한 이륙, 낚아챈 먹이가 부리에서 꿀꺽 목을 넘어 사라진다. 왜가리 뱃속에 캄캄하게 갇힌 물뱀, 물뱀은 꼬리가 송곳 안 되면 될 때까지, 안 되면 되고야 말 때까지 송곳으로 찌르고 또 찔러라. 마침내…… 피를 뿜으며 죽어가는 왜가리 목덜미를 뚫고 우산 지붕을 받친 굵은 우산대, 혹은 신성한 사랑의 배설물처럼 드높은 허공에서 죽음을 이겨낸 물뱀이 떨어지고 있었다. ―「레다를 덮친 백조처럼」 전문 「레다를 덮친 백조처럼」은 몇 가지 형상이 중첩된 독특한 작품이다. 이 시를 이해하려면 우선 제목에 나온 레다와 백조의 관계를 알아야 한다. 그것은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다. 레다는 스파르타 왕 틴다레오스의 아내로 뛰어난 미모를 지녔다. 올림포스의 신 제우스는 레다의 미모에 매혹되어 사냥꾼에 쫓기는 백조로 변신해 레다의 품에 안겼고 그녀와 정을 통하는 데 성공했다. 커다란 백조가 여인 레다와 동침했으니 상상해 보면 그 장면은 기이했을 것이다. 이 신화 이야기에 겹친 실제의 사건은 물뱀을 삼킨 왜가리의 목을 물뱀이 뾰족한 꼬리로 뚫고 탈출한 기사 내용이다. 강인한 시인은 이 두 장면을 접합하여 한 편의 시로 엮어냈다. 대상을 평면적으로 서술하지 않고 둘 이상의 층위로 병합시키는 그의 상상력이 이러한 전환 구조를 창조한 것이다. 처음에는 큰황새왜가리가 외발로 섰다가 큰 걸음으로 나서서 “수초 사이를 누비는 굵고 기다란 놈”을 삼키는 장면을 묘사했다. 이 장면을 “깃을 쳐 레다를 덮친 거대한 백조처럼” 먹이를 삼켰다고 서술했다. 다음에는 뱃속의 물뱀이 송곳 같은 꼬리를 이용해 왜가리 목덜미에 구멍을 내고 탈출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왜가리는 피를 뿜으며 죽어가고 물뱀은 허공을 받치는 굵은 우산대처럼 공중에 떨어지는데 그 모습을 “신성한 사랑의 배설물”로 비유했고 “죽음을 이겨낸” 든든한 존재로 상징화했다. 시인은 그 기사를 보고 살기 위해 끝까지 분투하다가 삶의 통로를 뚫은 생명의 표상에 우선 감동했을 것이다. 그리고 생명 현상이라는 점에서 그것을 백조와 레다의 성적 결합에 연결 지었다. 커다란 백조가 여인과 성적 결합을 한 것도 기이한 일이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생명의 신비는 왜가리 굵은 목을 뚫고 탈출에 성공한 물뱀의 생명력이다. 시인은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에서 출발하여 현대판 동물의 신화를 소개함으로써 생명 현상의 신비로움을 하나의 축으로 연결했다. 그냥 흥미로 읽어 넘길 만한 두 이야기를 엮어서 생명의 오묘한 운동으로 재창조했다. 거기 작용한 시인의 전환적 상상력에 경이와 쾌감을 느낀다. 시 읽는 맛은 평범이 비범으로 변하는 돌발적 상황에서 감득하게 된다. 이 시집에는 이처럼 평범함을 오묘함으로 바꾸고 상식을 경이로 전환하는 극적인 발견의 시편들이 즐비하다. 이 시집을 정독하며 참신한 발상과 기발한 사유와 경이로운 상상력에 묘미를 느끼고 그것을 통해 시 읽는 기쁨을 새롭게 누리시기를 눈 밝은 독자들에게 적극적으로 권한다. 권컨대, 강호의 시객들이여, 형적 없는 장미열차에 동승하여 부드러운 슬픔에 나직한 어깨를 기대어 보시기를! ―《아토포스》 2024년 여름호 --------------------- 이숭원 / 1986년 《한국문학》으로 등단. 저서 『백석 시, 백 편』 『시 읽는 마음』 『김종삼의 시를 찾아서』 『미당과의 만남』 등이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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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