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색 소음 (외 2편)
하재연
잘 들어봐 한쪽 눈을 가리고
보이지 않는 것만큼 인간에게 가까운 건 없지
모여들고 있다 북쪽에서 추운 나라에서 얼었다 풀린 땅에서
다가오듯 계속
한다 백의 나라 언어로 말을
하는 손이 오고 있다 검은 손
내 귓속에 들어오는 차갑고 구덩이 같은 것
잘 들어봐 한쪽 마음을 가리고
어쩌면 우리는 너를 구원할 수 있다 너는 이후가 될 것이고
슬픔 이후 종말 이후 재앙 이후
살아남아
살아남아 인간이든 겨울이든 곰팡이든
지속될 수 있다는 것만이
우리의 믿음
훔치고 뒤지고 뒤척이고 뒤덮여서
영혼이 혼이 되고 무덤이 되고 흙투성이 같은
무기물과 유기물과 오물과
빛이라고는 없는 컴컴하고 스멀스멀한 것들이
오고 있고 기어이 오고
잘 들어봐
너였던 생각을 가리고
소량 현실*
우리가 듣는 음악은
우리 안에서 흘러나오는 거야
네가 지금 보는 풍경이
너의 오랜 후년에 떠오르듯이
그것이
아름다움이거나 폐허이거나
우리의 웃음이
세계를 희박하게 만들수록
가벼운 이방인들의 발걸음으로
너와 나는
서로에게 귀 기울이는 당김음이 되는 거야
우리 안의 여린 박자를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의 미래를 바꾸자
여름에 폭설이 내리는
모조 지구에서 살아남아
이끼 전문가가 된
한 사람의 생애를 기록하듯이
오늘도 풍선을 사고
있는 힘껏 숨을 불어넣어
인공 달의 건너편으로 띄워 보내는 거야
우주에 서식하는 새들이
없는 날개를 꺼내
날아오르고 있다
* 앙드레 브르통, 황현산 옮김 『초현실주의 선언』 미메시스 2012, p.27
새
흔한 아름다움이 날아들었다
이 건물의 모든 출구는 투명하다
너는 무의미하게 부딪친다
삶을 이루는 고통이 거기 있었던 것처럼
너를 발견했으므로
나는 이쪽의 문을 연다
더욱 견고하게 사라지는 문을 찾아
너는 날아간다
그 문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이 봄이 끝나도록 나는
너를 뒤쫓을 수 없게 되고
아름다움이라 여겼던 것이 변색된 장미꽃잎 되어 뒹군다
무연한 파닥임이 건물 복도에 울려 퍼지고 있다
이제 너의 창 너머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내리는 비의 사이는 영원하게 좁아지고 있다
들어설 수 없는 세계와 같이
네가 젖지 않는 이 건물의 복도 안에서
이 봄이 끝나도록 나는
비를 맞고 있다
무한처럼 확장되는
빗방울들이 땅에 떨어진다
—시집 『인간이라는 환상처럼』 20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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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연 / 1975년 서울 출생. 고려대학교 대학원 박사. 2002년 제1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 시집 『라디오 데이즈』『세계의 모든 해변처럼』『우주적인 안녕』『인간이라는 환상처럼』 시론집 『무한한 역설의 사랑』『문학의 상상과 시의 실천』 등. 현재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