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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유야무야有耶無耶 (외 1편) /박상천

작성자박호|작성시간26.06.15|조회수0 목록 댓글 0

유야무야有耶無耶 (외 1)

 

   박상천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있으며 또한 없는 것일까

아니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것일까

이런 생각으로 우주를 향해 날아가다가 밤을 지새우는 날이 있다.

하룻밤 시간이 또 흐지부지 지나가 버렸다.

유야무야有耶無耶.

 

창밖의 새벽은

물 속에 푸른 잉크 한 방울 풀어놓은 듯 흐릿하고

내가 던진 질문들은

대답 없는 별 사이를 떠돌고 있을 것이다.

손을 뻗으면 잡힐 듯한 허공은

가득 차 있으나 비어있고비어있으나 묵직하다.

나라는 존재 역시 어둠 속에 섞여들면 사라지고

빛 아래 서면 그림자만으로 남고

언젠가 우주 먼지로 가라앉게 될 것이다.

 

흐지부지 흘러간 시간의 끝자락에서

나는 겨우 나의 테두리를 만져본다.

명확한 선도, 확실한 색채도 없이

유야무야有耶無耶  번져가는 이 불투명한 삶이야말로

우주가 내게 허락한 가장 정직한 형상일지 모른다.

동이 터오는 지평선 너머로

밤새 앓던 질문들이 하얗게 휘발된다.

있지도 없지도 않은 나를 데리고

나는 또다시 오늘의 안개 속으로 한 걸음을 내디뎌 본다.

 

 

 

대파

 

 

 

뿌리 자르고 이파리 끝부분도 자르고

껍질까지 한 번 더 벗겨

깨끗하게 손질한 대파,

하얗고 매끈한 그 대파를 냉장고에 넣었다가

며칠 후에 꺼내 보면

뿌리 쪽 잘라낸 곳에서

그는 속대를 쑤욱 밀어 올리고 있다.

살아있었음.

 

잘라낼 거 잘라내고

한 꺼풀 껍질까지 벗겨

보기 좋게 손질해놓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사람들을 만나고

실실 웃으며 TV를 보고

자판을 두드리며 일을 하는 사이,

그는 날카로운 칼질을 비웃으며

슬금슬금 속대를 밀어 올리고 있었다.

 

자기애 또는 내면의 외로움이라는 꽃말을 가진

수선화과의 대파는 그렇게 살아있다.

 

 

 

              —시집 어느 시골 정류장에 앉아 있겠다』 20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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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천 / 1955년 전남 여수 출생. 198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시집 사랑을 찾기까지』『말없이 보낸 겨울 하루』『5679는 나를 불안케 한다』『낮술 한잔을 권하다』『그녀를 그리다』 . 현재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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