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사우대 돌단

작성자강신구|작성시간26.06.14|조회수51 목록 댓글 2

사우대 돌단

 

큰 돌을 네모지게 쌓아 올린 한길 넘는 높이다. 소나무를 가장자리에 심어서 높다랗게 키워 큼직하게 우뚝 섰다. 돌길을 밟아 오르면 펑퍼져 앉을 수 있게 반반한 바닥이 시원하다. 나무 그늘이 좋아 한여름 더위도 주춤하는 곳이다. 내려다보면 들판의 벼와 옥수수, 조, 콩이고 건너다보면 감나무에 싸인 참한 마을, 올려다보면 빙 둘러싼 높은 고갯마루가 가지런하게 달리고 있다.

옆 걸이네 집과 태원이, 그 위 언덕에 선정이, 그 옆 성진이, 학순이, 저 위 대나무 숲 집이 끝이다. 다닥다닥 붙지 않고 띄엄띄엄 늘어선 시골집이다. 그래도 칼국수 하는 저녁나절은 구수한 밀가루 냄새가 솔가지 울타리를 넘어 옆집에서 날아 들어온다. 좀 떨어진 집은 혹부리 아버지 목소리가 커서 산자락 여기까지 들린다.

알밤이 뚝뚝 떨어질 때는 새벽에 올라가 한 바퀴 돌면 아래위 주머니마다 가득가득 넘쳐난다. 그때쯤 서리 아주머니가 올라와 머물며 저쪽에서 소리치며 쫓아온다. 얼른 집으로 들어오곤 하는데 안 보일 땐 다시 올라가 돌멩이를 던져 잘 익은 것을 맞춰 떨어뜨린다. 하도 많이 해서 던졌다 하면 맞아 우수수 떨어진다.

멀쩡하다가 다음날은 오슬오슬 떨리고 열이 올라오는 하루거리를 하면서 보름쯤 뜸했다. 그 뒤부턴 딸아이들 소꿉장난하는 이곳 돌무더기에 동네 아이들을 불러 함께 놀았다. 높은 돌 더미 아랜 넓은 바위가 여러 개 널려 있다. 아무 데나 앉았다간 눕고 소리치며 그저 가만 있질 못한다. 들락날락 오르락내리락 몸부림을 쳐대야 속 시원하다.

앞 못 둘레엔 높다란 나무가 여러 그루 그늘을 만들어 휘파람새가 울고 바람 소리가 난다. 가끔 뜸북뜸북 하고 고요한 들판과 마을을 일깨워주는 뜸부기 소리도 들려온다. 숨바꼭질도 하며 앞 개울 봇물에 들어가 풍덩풍덩 멱을 감고 버들치도 건져 두 손바닥에 담아본다. 겨울엔 건넛마을 불기 아이들도 몰려나와 도끼로 얼음을 깨 타고 다닌다. 마른 나무를 모아 불을 지펴 젖은 옷과 손발을 말리고 쬐며 덜덜 떨던 때가 엊그제만 같다. 다 훌쩍 흘러간 가마득한 어릴 적 일이다.

할아버지 나이가 되어 거기 어떤가 싶어 찾아갔다. 예바위를 지나 불기 가운데를 터덜터덜 걸어서 다리를 건너내려 송장계로 들어섰다. 마당에 감나무가 우뚝하고 뒤꼍엔 대나무가 가득한 집은 문이 닫힌 채 비어있다. 가운데쯤 이곳으로 와 곁방살이하던 성진의 집은 뜯겨 밭이 됐다. 학순이 집은 아직 남아 누군가 사는 것 같다.

사랑채가 있는 태원이 집과 바로 옆 걸이 집은 오래도록 비워졌는가. 무너져내려 지붕이 일그러지고 주저앉았다. 내 집은 뜯겨 돌담만 둘러쳤다. 풀만 어지럽게 자라 여기 내 살던 집터 맞나 싶다. 가방 메고 뛰어다니던 꾸불꾸불 좁은 논두렁길은 넓은 길로 바뀌었다. 길 아래 물긷던 우물은 어디쯤인지 흐릿하다. 진탕 뒹굴었던 돌무더기와 못은 오도카니 남아 있다.

반가워서 가까이 다가갔다. 선비들이 모여 글 짓던 곳이라는 푯말이 못 둑에 적혀있다. 돌단 위에 올라 놀았던 어릴 때를 돌이켜본다. 그때 소나무가 싱싱하게 살아 서 있다. 커다란 나무였는데 아직도 대 위 넓적 바위 사이에 엉덩이를 대고 꼿꼿하다. 부둥켜안고서 누가 이기나 씨름했는데 오래 지나서 더 아름이 커졌나 했지만 그대로인 것 같다.

뿌리는 가운데 깊게 내렸어도 비바람 거셀 때 어찌 지났을까. 부러지거나 쓰러지지 않고 견뎌낸 게 놀라워라. 시 짓고 읊을 때는 못에 물도 찰랑찰랑했을 것이다. 여태 메우지 않고 있다. 기둥이나 받침으로 쓰기 위해 건넛산 아래 예바위에 얹힌 윗돌이며 시냇가 우리 논 가운데 엄청 커다란 바위는 벌써 어디론가 가져가고 없다. 쓰임새가 많은가 보다. 그 큰 돌을 어찌 끌어갔을까.

이곳 대와 너럭바위는 그대로 있는 걸 보니 제자리에 두고 지켜야 할 돌들인가 남겼다. 안으로 저벅저벅 걸어서 살던 집에 이르렀다. 풀이 길길이 우거졌다. 무엇을 밟을까 두렵다. 작대기로 풀밭을 툭툭 치며 들어갔다. 다니던 길을 어림짐작으로 더듬으면서 어버이와 함께 네 아이 컸던 볏짚 이은 세 칸집을 찾아들었다.

풀이 집터를 덮쳤는데 뜯긴 지 오래된 듯하다. 빈터만 남았는데 그런대로 눈에 익은 돌담이 지키고 있다. 마당이 꽤 넓었다. 오늘 보니 손바닥만 하다. 거름더미와 그 옆 텃밭도 있었는데 이리도 적었나 싶다. 돌담을 돌아 산기슭에 뒷간을 만들어 썼다. 나무를 세모로 세워서 띠로 거적을 덮었다. 그 안에서 볼일 봤는데 추울 때나 눈비 올 때 성가셨다. 밤중에 갈 때는 으슥해서 멈칫했는데 요강을 들였다.

방 둘에 부엌과 외양간도 있었으며 마당에선 밀보리와 콩, 벼 타작도 했다. 그런데 왜 이리 작아졌나. 걸핏하면 무너지던 담벼락은 칡넝쿨과 담쟁이가 정낭 가는 길까지 뒤엉켰다. 그런 가운데 바닥은 온통 머위다. 막대기로 우우 소리치며 두들겼다. 징그러운 뱀은 물러가라 외쳐댔다. 아내는 신났다. 베어 자루에 담기 바빴다.

돌단 위에 올라 피리를 불려다 말고 같이 머위를 꺾었다. 어쩜 이리도 많을까 호박잎처럼 생긴 게 깔렸다. 쌈을 싸 먹거나 줄기를 삶아서 무치면 맛나다. 조금씩 보이는데 여긴 씨를 쏟아 들이부은 것인 양 제멋대로 자라서 밟히고 차인다. 꺾고 뜯는데 너무 많아서 한쪽 구석만 거두고 있다.

불기와 송장계 마을 가운데를 흐르는 시냇물은 생달과 쑥밭에서 내려온다. 봇둑길로 건너거나 징검다리를 밟았는데 여울 바닥을 깊이 파내어 쉽게 건널 수 없다. 저 위 덕고개로 올라가는 다리를 건너 배골마을을 돌아내려 와야 한다. 누구야 부르면 들린다. 뛰어서 건너다녔는데 이젠 한참 돌아가야 하니 먼 곳이 돼 버렸다.

얕은 바닥의 돌덩이와 자갈 모래는 다 어디로 가져갔는가 긁어놨다. 깊숙이 움푹 패었다. 흔하던 피라미와 버들치, 꺾지, 미꾸라지, 모래무지, 가재는 있을까. 하도 깊어 봇둑 막는 건 엄두도 못 낸다. 대나무에 무명실을 매어 달았다. 반짇고리 바늘을 불에 달궈 망치로 두들겨 굽힌 뒤 꿰어 소금쟁이 휘젓던 봇물에 던져 낚시하던 그 고인 물은 이젠 보이지 않는다. 자맥질하며 첨벙첨벙 물장구쳤던 곳이다.

가뭄에 시달리는 논밭에 물을 끌어들이기 위해 가로질러 돌과 거적때기로 막은 데가 여러 곳이었다. 그곳으로 건너다녔는데 그 널리고 깔린 바위와 자갈은 걷어내 파 내려갔다. 아마 장마 때 넘치지 않도록 한 것 같다. 요즘은 시냇물 끌어들이는 게 좋아져서 마을 가운데를 흐르는가 하면 논밭 구석구석을 누비며 철철 소리 내는 도랑이다. 모두 시멘트로 예쁘게 다듬었다. 돌과 흙으로 만들었던 지난날이었다. 터지거나 막혀 자주 손봐야만 했다. 물도 적어 이웃 사이에 삽과 괭이를 들고 메마르게 설쳐대야만 했다.

돌단과 못 사이 길섶으로도 콸콸 소리 내어 물이 지나간다. 못에도 물을 채울 수 있다. 비 오길 기다리다가 이글이글 가물면 하늘에 내려달라 빌던 지난날이었다. 타들어 가는 땅바닥을 보면서 애태우던 일꾼이었는데 이젠 물 걱정을 내려놨다. 내 논 앞으로 흘러 쉽게 댈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마을 가운데 논두렁에 우물을 파서 뿌연 샘물을 마셨다. 지렁이와 가재가 구물구물 다니는 그런 걸 퍼먹었다. 그것도 없는 외딴집은 개울물을 길었다. 아침저녁 아낙들이 몰려들어 오지그릇과 양동이가 줄 섰던 곳이다. 집집이 물지게를 지고 져 나르던 게 어제였는데 모두 옛 얘기다. 다 매워져 어디쯤인지 가뭇없다.

어느 집이나 틀면 맑은 물이 펑펑 쏟아져 나오니 바뀌어도 한참 달라졌다. 이리 좋은데 내 집은 누군가 살다가 떠나고 허물어져서 온데간데없다. 예닐곱 집이었는데 아래 셋은 기울어 쓰러졌다. 어른들이 돌아가자 사이좋게 지냈던 동무들이 내려오던 논밭 일을 버려두고 뿔뿔이 어디론가 떠나갔다. 이웃 다니던 골목길은 풀이 자라다 못해 나무까지 커서 쑥대밭으로 바뀌었다. 지척지척 걷다가 나와 돌단에 올랐다.

시골에 어린이도 드물어 소꿉놀이하던 사금파리가 보이지 않는다. 아무도 찾지 않는 이곳엔 풀만 수북이 자랐다. 뽑아내고 그때 나무에 기대어 본다. 아이가 늙어 왔는데 안고 돌던 그 나무다. 솔나방이나 솔수염하늘소가 애벌레를 옮겨 못살게 하는데 아직은 갈잎이 들지 않아 괜찮아 보인다. 바로 집 앞이다. 나며 들면서 기어올랐던 곳이다. 저절로 굴러내린 돌무더긴 줄 알고 그냥 놀았는데 찬찬히 살펴본다.

 

 

민둥산 기슭에다 바위를 눕혀놓고

 반듯이 깎아내어 여러 개 앉혀놨다

     서너씩 둘러앉거나 누워서 쉴 수 있다

 

      네모로 돌을 세워 키 넘게 쌓아 올리고

    커다란 소나무가 선 그늘막 쉼터이다

     네댓이 둘러앉아서 글 짓고 읊조렸다

 

         옆에다 깊게 파내어 빗물을 고이게 한 뒤

    둘레에 나무를 심어 아늑한 연못이다

    붕어가 무리 지어서 다닌다 봉긋봉긋

                                                                  (사우대 전문)

 

바위를 모아 세워 올렸다. 그 큰 것을 어찌 움직였을까. 아래 너럭바위도 여럿인데 조금 기울었지만 앉아 쉴 수 있게 했다. 깎은 듯 모두 반반하다. 땅이 움직였나 똑발랐지만 무슨 일로 기울어졌다. 연못도 쉽나. 많은 사람이 달려들어 파고 둑을 올려야 했으며 물길을 끌어들이는 게 힘들었을 것이다. 어디까지 치솟은 나무가 높다래서 부딪는 바람 소리와 온갖 새 노래, 매미 울음이 어울렸다. 시원했던 나무는 다 베어지고 푹 패인 웅덩이만 남았다. 오래되어 처지는 나무를 베내야만 했다.

하나하나 된 것을 뜯어보니 놀라워라. 이 큰 돌을 쉽게 옮길 수 있나. 울퉁불퉁할 텐데 가지런하다. 아래 펀펀한 바위도 그렇다. 그 옛날 이 시골에서 무슨 수로 이뤘을까 궁금하다. 일으켜 세우고 눕히는 걸 어떻게 했나. 네 분이라니 누구일까. 아는 사람이라곤 가까이 아무도 없다. 들어본 얘기가 없으니 말이다. 건넛마을과 띄엄띄엄 몇 채 남아 있는 여기 살았던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짚으로 뒤덮여 옹기종기 모두 움막 같은 집들로 살기 바쁜 마실이다. 논밭 일로 어렵게 사는 곳에 웬 글 짓는 이들이 있었겠나. 산 좋고 물이 돌아치며 우거진 숲으로 뛰어난 곳은 아니다. 조그만 민둥산 기슭으로 볼품이 하나도 없는 곳이다. 그때 이곳에 논밭도 있었을까 싶다. 흐르는 물길도 없었는데 구덩이엔 어떻게 물을 채웠나.

밋밋한 데에 왜 모였을까. 이점 저점 궁금한 게 한둘이 아니다. 만들어놓고 보니 참 멋지다. 바위를 모아 쌓아 올리고 한 그루 소나무를 길러냈다. 아래엔 덩치 큰 펀펀한 바위를 여러 개 맞붙여 깔아 놓거나 따로 앉혔다. 못 둘레에 나무를 총총 심었다. 다 갖췄는데 눈비와 햇볕, 추위, 더위 피하는 집을 지은 터는 안 보인다.

위아래에서 글 짓고 소리 내어 읊조리며 봄가을 맑은 날 모여 하루를 즐기다가 아쉽게 헤어지곤 했을 것이다. 창마와 서리, 무양, 압동, 생달 시오리쯤 되는 곳곳에서 이곳을 찾은 이들로 날 잡아 모여든 것으로 보인다. 여기 외딴곳에 머물며 글 짓고 읊으며 맑은 바람을 쐬었던 그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임금 곁에서 나랏일을 보았거나 여기저기 고을살이 사또 벼슬길을 걸었던 것으로 느껴진다. 모두 허름한 시골인데 ㄱ자와 ㄷ자 반듯한 집이 모인 마을이 있다. 여러 곳에 다니며 고을 원을 오래 한 분이 있었는데 모은 것을 다 바쳐 날아갈 듯한 번듯한 집들을 이루었다. 다니며 뒷돈을 챙겨서 만든 것이라 말하진 않는다.

아니면 벼슬에 나가지 못한 채 글깨나 하는 살림 넉넉한 사람들일 수 있다. 어버이 잘 만나 글방에서 오래도록 익혀서 아는 게 많다. 아득한 중국 복희와 신농, 헌원, 요순 삼황오제에다 공맹, 노장을 섬기고 하 상 은 주와 한, 수, 당나라 역사를 훤히 꿰뚫는다. 천자문과 계몽편, 소학, 통감의 첫길에 들었다가 논어와 맹자, 중용, 대학의 가운뎃길로 올라선다. 시경과 서경, 주역, 예기, 춘추의 사서오경을 익힌 선비 무리의 젊은이다. 고만고만한 벗들끼리 만나 이곳 외딴 데에서 시 짓는 모임을 열었던 것일 수 있다.

아무도 알 수 없는 낯선 조용한 곳에 학문을 논하고 시를 쓰던 멋진 사람들이다. 사는 게 부대끼며 어려운데 드러내 보이기 민망해서 이런 곳으로 찾아들었던 것이리라. 앉히고 세운 바위를 보면서 자꾸만 되새기게 된다. 산 고개에 안개 피어오르듯 그리움만 가득하다. 어쨌든 해맑은 얘기를 나눈 그들이 돋보인다. 느닷없이 다 떠나고 돌만 덩그러니 남았다. 저적저적 걸으며 돌단을 어루만졌다.

어른과 아이 너나없이 모두 사오대라 부르며 지났는데 사우대四友臺 글자를 찾아냈다. 이끼에 가려 오래도록 묻혀 지냈는데 긁어 밝혀냈다. 또렷하게 깊이 파인 글씨를 골 따라 훑고 만지작거리면서 다시금 선비들을 떠올린다. 짓고 읊으며 왁자지껄한 너털웃음이 맴도는 곳을 서성거렸다.

해마다 오뉴월이면 집터의 머위가 뒤덮는다. 한 그루 높이 솟은 늙은 소나무 그늘이 시원하다. 더더욱이나 글 읊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내버려진 보잘것없는 돌단과 너럭바위, 못이 오래오래 남아 있었으면 한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박호 | 작성시간 26.06.16 옛 고향을 찾아 추억을 더듬어 푹 빠졌습니다
    아름다운 글 눈물이 날 지경 예요
    농촌은 허물어지고 모두 떠나고 없으니
    사우대 너럭바위 생각하는 이 누가 남겠어요
    수고하셨습니다 감동 예요
  • 작성자강신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6 작년에 찾아갔습니다.
    다들 사오대로 알고 있었는데
    바위에 사우대가 적혀 있었어요.
    마음 맞는 네 글벗들이 모였던 곳입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