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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지 - 영화감상후기

작성자몬나니|작성시간04.10.11|조회수380 목록 댓글 1

 

제목 :  빌리지 (The Village, 2004)   
감독 :  M. 나이트 샤말란
출연 :  와킨 피닉스,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 윌리암 허트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스릴러 영화라는 선입감에 어떤 공포가, 그리고 어떤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까하는 기대를 가지고 보았다. 마을사람들의 공포의 대상은 숲속이었다. 마을을 벗어남에 대한 공포, 그것은 숲에 사는 실체를 알 수 없는 괴물에서 연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숲이라는 금기를 통해 마을사람들이 철저히 통제되고 언제나 무형의 공포가 그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었다. 감독은 그 공포심을 관객으로 하여금 호기심을 가지고 즐기도록 극을 고조시켜 나간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부분의 스릴러물이 그렇듯이, 그리고 샤말란 감독이 그래왔듯이 영화의 마지막에서 보여주어야 할 반전이 이 영화에서는 중반부에서 일찌감치 제공되어진다. 일종의 허탈감마저 느낄만한 싱거운 반전이다. 이 영화를 스릴러로 기대하고 본다면, 아니면 어떤 형태든 괴물이 등장해서 볼거리를 제공해주길 기대하고 본다면 거기서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편이 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스릴러물이 아니라 드라마라는 정보가 일찌감치 제공되어진다면 오해없이 제대로 영화를 즐길만 하다. 감독의 전작이 보여주는 뉴 에이지적 요소들이 영화에 깊이 스며있음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는 아주 사실적인 드라마다. 샤말란이라는 이름의 선입관에서 벗어나 볼 때 이 영화는 오히려 빛을 발한다고 생각한다. 샤말란의 변신, 또는 다양성이라 이해할만 하다.


그러나 그 허무하도록 때 이른 반전이야말로 이 영화가 제공해주는 진정한 공포다. 공포의 실체를 알게 된 여주인공 아이비(그녀는 맹인이다)가 숲속에서 만나는 괴물, 이 유치하기까지한 트릭에 관객은 또 한 번 속을 수 밖에 없지만, 극중에 등장하는 주인공들, 그리고 아무 것도 모르는 마을 사람들은 이전보다 한층 더 확고한 두려움으로 통제되어 여전히 마을이라는 폐쇄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갈 것임을 영화는 마지막 반전으로 처리하며 맺고 있다.


명작은 질문을 많이 던진다고 했던가? 이 영화는 진지한 관객에게 정말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언브레이커블에서 던져주었던 사회고발 메시지, 그리고 모색이 여기서도 시도되고 있다. 전작에서는 주인공이 사회를 구원할 영웅으로, 개인차원에서 모색되어졌다면; 이 영화에서는 공동체로 그 지평이 확대되어 있다. 전작은 헐리웃적인 영웅주의와 초능력이 요구된 반면 이 영화에서는 초인적 영웅이 없는 대신 괴물이 그 역할을 해주고 있다. 가장 무서운 적이 실체를 알 수 없는 대상이라는 면에서 마을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대상은 가공할만한 괴물이다.

 

상처입은 자들이 더 이상 상처가 없는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한 대안이 과연 정당한지 아닌지, 그런 유토피아가 정말 가능한 일인지, 이 영화는 질문이라기보다는 그냥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정당성에 대한 가치판단은 절제되어 있다. 그래서 마을 설립자들의 숨겨진 고통은 절실히 묘사되고 있지만 용기나 자기 희생은 감추어져 있다. 그들의 2세가 느끼는 고통과 용기만이 한층 더 크게 부각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감독은 영화를 통해 무언가 대안사회 내지는 사회현상의 대안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마을이 세워지게 된 동인도 그렇지만 마을 밖, 숲속을 가로질러 나타난 문명세계의 일별이 더욱 그런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초소 장면에서 소품으로 처리되는 신문지상의 범죄로 가득찬 기사들이 마을 밖 세상의 단면을 아주 정확하게 제공해주고 있다. 마을 원로들의 선택이 정당하다는 감독의 주장으로 본다면 너무 비약일까? 울타리를 치고 야생동물을 보호하듯 철저히 외부로부터 마을을 보호해주고 있는 존재가(Walker라는 이름) 마을 대표와 무관하지 않다는 암시도, 관객으로 하여금 마을 공동체의 안전이 보장됨으로써 그 지속성이 가능하겠구나 하고 생각하게끔 해준다.

 

유토피아로 건설한 마을에서 일어난 범죄, 그래서 역시 유토피아란 허구다 하고 생각할지 모르는 관객에게 영화는 그 범죄와 그로 인한 상처를 사랑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으며, 내부에서는 숲속의 공포가, 그리고 숲 외부에서도 같은 편이 지켜주고 있기에 어쩌면 가능하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하게 해준다. 그것은 동시에 마을 원로들의 희망이요 꿈이기도 하다.


시대적 배경이 궁금했다. 분명 자막을 통한 시간적 배경이 제공되지 않았는데, 등장인물들은 중세를 연상케하는 의상을 입고 나온다. 유무형의 문화 수준이 완전 중세 그대로다. 자동차는 물론 TV조차 보이지 않는 마을, 신문도 없고 경찰도 없고 완전히 외부의 세계와 교통 및 연결이 단절된 마을이 영화의 공간적 배경이다. 분명 시간도 공간도 현대지만 건설된 대안공동체는 근대이전의 문명과 문화를 누리고 있다. 현대 문명에 대한 회의요 비판이라 하겠다. 동시에 철저한 우민화 정책의 결과로 볼수도 있겠다. 감독의 의도는 아니겠지만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말이다. 그만치 원로들이 마을을 통치하는 방식을 숙고해보면 정말이지 고도로 조작되고 계산된 수법이다. 조지 오웰의 1984년보다 어쩌면 더 무서운 방식의 통치다.


지금 우리는 그렇지 않은가? 우리 역시 온갖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점점 더 첨단 무기로 강화되어가는 군사력을 요구하고, 갈수록 정예화 되어가는 치안수단을 모색하는 이 세대가 바로 두려움 속에 살고 있지 않은가? 전쟁과 식민지화를 통해 통제하고 간섭하고 의식을 세뇌시켜 대중을 지배하는 것이 이 세대의 통치 메카니즘이 아닌가?


노아, 영화 속에서 유토피아를 위협하는 인물이다. 금기시된 선을 넘어가는 이이기에 그렇고, 범죄를 일으키는 인물이기에 그렇다. 극증에서 그는 정신이상자로 묘사된다. 그런데 위기를 가져다 준 이 인물이 도리어 결말부분에서는 그 마을을 유지시켜주는 결정적 인물이 된다. 노아라는 이름값을 하고 있는 것이다.

범죄자이기에 분명 그는 괴물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는 괴물의 실체를 알기에, 그리고 괴물을 조종하는 자들의 실체를 알기에 필연적으로 미쳐버릴 수밖에 없다.

누가 그 놀라운 음모 앞에서, 무서운 진실 앞에서 미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만 육체의 눈이 멀었듯이, 사랑에 눈 먼 여주인공만이 이성이 마비되어 정신병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경험한 실제 괴물의 공포는 더 이상 그녀 자신의 잠시 눈을 떴던 이성의 계속적 사용을 불가능하게 해줄 뿐 아니라 눈이 먼 채로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의 눈까지도 뜨지 못하게 해줄 것이다.


21세기의 대한민국만이 갖고 있는 숲속의 괴물이 있다. 관객들이 이미 그 실체를 알고 허탈해하듯 세계 모든 민족이 알고 있는 사실을 대한민국이란 마을 사람들만이 모른다. 마을을 벗어나 숲속을 들어간다거나 숲속 이야기를 하는 것조차 금기시된다. 국가보안법이라는 무시무시한 법으로 그 공포는 수호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이 마을에도 밖에서 울타리를 치고 지켜주는 야생동물 보호 순찰대가 있다. 미국이라는 이름의 순찰대가 그것이다.

 

숲속엔 나쁜 색이 있다. 바로 빨간색이다. 빨간색 물건을 갖고 있으면 보안법에 따라 수사를 받고 벌을 받아야 한다. 빨간색만으로도 마을이 위협을 받기 때문이다. 아무리 순수해도 숲속을 들어가면 안 된다. 무조건이다. 예외가 없다. 그리고 그 공포를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조작이 행해지고 있다. 영화에서처럼. 제주에서, 여수 순천에서, 부산과 마산에서, 민청학련 사건,.... 그리고 무엇보다도 80년 광주에서.

그때마다 원로들의 전언에 따르면 무시무시한 괴물이 등장해서 수많은 민중을 죽였고, 그 괴물을 때려잡는 전쟁으로 또 수많은 민중들이 피를 흘렸다. 그럴수록 보안법은 강화되었고, 빨간색은 더 나쁜 색이 되어갔다.

지금 이 땅엔 이미 더 이상 미치지 않은 수많은 노아가 있는데도 원로들은 괴물을 들먹거리며 숲속을 들어가지 말라고 한다. 이제 원로들의 주장은 더 이상 조작이 아니다. 그것은 목숨걸고 지켜야 할 진실이고 진리이다. 메멘토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그들은 자신의 생존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자기 자신의 기억까지도 세뇌시켜 버린 것이다.

 

보안법이 폐지되는 날, 숲속에서 괴물이 나와 마을을 전멸시킬 것이다.

에구 무서워라.                                출처 : 몬나니네집(제 블로그입니다. 클릭해서 놀러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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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이상록 | 작성시간 04.10.21 국가보안법으로 미국이라는 나라의 전쟁의도를 막을 수 있다면, 북한의 전쟁의지를 막을 수 있다면...난 국가보안법 찬성이다. 그러나 그럴리는 없겠지요?? 그래서 난 국가보안법 폐지 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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