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부정
요즘 따라 민수는 부쩍 말이 없어졌다. 각 동아리 모임에도 나오지를 않았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민수의 애인인 진주가 물어보아도 속내를 꺼내지 않으려고 했다.
“난 한 테까지 숨길거야?”
그래도 말을 할 듯 말 듯 얼른 꺼내지 못했다.
“말해봐 왜 그러는지, 답답해 죽겠어..”
그제야 민수는 길게 한숨을 쉬며 말을 시작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아버지가 내게 무리한 요구를 하고 계셔.”
“뭔데.”
그리고도 민수는 한동안 망설이다가 말을 꺼냈다.
“아버지가 간 경변인데 나에게 간을 조금 달라는 거야. 일부 떼어내도 다시 제생되니 별거 아니라며. 조직 검사를 해야 이식이 되는데 맞는 사람을 못 찾은 것 같애. 그래서 친족인 자식 것 이 필요하다는 거지.
“아무리 연관이 없는 내가 보아도 그건 무리한 부탁을 하는 것 같아.”
“이식을 못하면 얼마 못살고 죽는다고 하니 더 내게 매달리는 거지.
“참 너도 난처하겠다. 가족이 그러니 말이다.”
“사실, 난 보육원에서 자랐어. 아버지가 성격이 괴팍한데다가 바람을 피우고 여자를 집안으로 끌어들여 나를 자식처럼 여기지도 않고 구박하며 그 여자와 같이 사니 할 수없이 날 데리고 나왔는데, 식당일을 하려해도 철부지 때라 가게를 난장판으로 만드니 어쩔 수 없이 보육원에 맡기셨나봐. 가끔은 면회를 오셔서 눈물만 보이시고 가곤 했지. 나는 어른스럽게 데려가 달라고 떼를 쓰지는 않았어. 꾀죄죄한 식당 앞치마를 두르고 오시는데, 내가 더 가슴이 아프더라고.”
“안됐구나. 그런데 어떻게 해서 대학까지 다니는 거야?‘
“아버지가 간 경변 판정으로 죽게 되자 보육원에서 나를 데려다 놓고 어찌 보면 치료제로 양육을 한 거지.”
“아무리 원망스러워도 가끔, 심한고통을 받을 때면 안쓰럽기도 해 나는 새엄마가 집을 나갈까봐 걱정이 되는데, 아마도 아버지의 막대한 재산 때문에 붙어사는 것 같아. 아버지가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 할 때는 불쌍하기도 하고. 이게 아마 혈육이라는 정 때문인 것 같아.”
“참, 너도 힘들겠구나.”
“나도 모르겠어. 집안을 빠져나와 친어머니와 같이 살고도 싶고, 아버지 몰골을 보면 아버지 청을 들어줘야 할 것 같고.”
민수는 자신이 어찌해야 하는 것인지 판단이 들어서지를 않았다. 혼자 살기고 어려운 어머니에게 같이 사는 부담을 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버지가 하자는 애로 할 수도 없고, 진수는 어릴 때부터 병원 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어릴 때 팔을 다쳐 치료를 받으러 갔는데 어찌나 아팠는지, 그 기억이 영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팔도 그런데 배를 찢는 수술을 받는 다는 것은 그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공포감을 주는 것이다. 진주는 딱히 해줄 말이 없었다.
그런데 민수가 한 참을 망설이다가 말을 꺼냈다.
“네가 거주하고 있는 원룸에서 잠시 같이 지내면 안 될까?”
“글쎄 남녀가 한방을 쓰는 것은 위험하지 않아?”
“그건 걱정 말아. 이불도 따로 덮고 떨어져서 지낼게. 아직 졸업하려면 일 년은 남았으니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할 거야.”
“알았어. 너 같이 착한 애가 무슨 짓을 저지르겠니. 날이 추울 때니 내 방에서 지내도 괜찮아.”
“고맙다. 진주야. 월세나 의식주에 들어가는 돈도 내가 대부분 부담할게 평소에 용돈을 많이 줘서 통장에 돈은 쓸 만큼 들어있어. 차도 있으니 가는 길은 내 차를 타고 집에까지가.”
민수는 진주를 자취하는 원룸 앞에까지 데려다 주었다. 오층 건물인데도 입구에서 보니 옛날에 지은 건물 같았다. 엘리베이터도 없어 걸어서 삼층에 있는 자기 방까지 걸어 들어가는 것을 보고 돌아서왔다,
그날부터 민수와 진주는 원룸에서 같이 지내게 되었다. 민수는 부모님 집에서 나올 때, 친구 집에서 며칠 있을 거라며 아버지에게 말을 했다.
“차 운전조심하고 무슨 일 있으면 연락 하거라.”
“예. 아버님. 제 걱정 마시고 아버님 건강에나 신경 쓰세요.”
아버지는 대답대신 쓸쓸하게 웃으셨다. 원래 아버지는 국내 굴지의 기업에 기획을 담당하고 있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회사의 회장과는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동문수학을 해서 친밀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는 자주 민수 아버지를 병문안 왔다.
“빨리 나서 회사에 복귀해야지. 다른 직원들 일하는 게 자네 발끝도 못 따라오는 것 같아.”
“나도 하루빨리 건강해져서 일을 하고 싶네. 근데 내가 앞으로 어찌될지를 몰라 그저 자네에게 고맙게만 생각한다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지 않나. 희망을 갖게. 아, 옛날에 우리 둘 만 있으면 아무것도 무서운 것이 없을 때가 있었지 않나? 반드시 자네 건강을 되찾을 거네.”
“고마 우이 친구.”
회장은 민수 아버지의 손을 꽉 잡고 기운을 내라는 말을 남기며 돌아갔다.
진주와 민수는 남들 보기에 동거커플처럼 보이지만, 민수는 한 번도 진주의 침대로 올라 온 적이 없었다. 그건 신뢰였고 민수의 천성이었다. 그는 쇼퍼를 길게 이어서 거기서 자곤 했다. 또한 민수는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며 밤을 샐 때가 많아, 아침에 진주의 얼굴을 못 볼 때도 많았다. 진주는 그런 모습을 볼 때 마다 남편감으로 새겨도 될 사람으로 인식을 했다. 한번은 민수가 진주에게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을 했다.
“도시 생활이 너무 답답한데 여행한번 가지 않을래?”
“느닷없이 여행이야기가 나오니 어안이 벙벙해.”
“바다 구경을 한번 하자, 넓은 바다를 보면 가슴도 시원해지고 맺힌 것들도 풀릴 거야.”
“언제 어디로 가려고?”“조금 있으면 여름 방학이 시작 되잖아. 방학 개시되면 바로 떠나자고. 동해가 깨끗하다하니 동해로 가려고해.”
“동해면 멀지 않아? 사람들도 많고. 고생만 하고 오는 것 아냐?”
“바닷가나 거닐고, 부두며 횟집이나 들러서 올 것이니 지례 걱정 마. 자기나 나나 바다 구경한 번 한적 없잖아.
“괜히 설레게 만드네.”
“그렇게 알고 준비해. 구경거리는 많을 거야.”
“알았어. 뭔 준비라야 옷 한 벌 더 가져가면 되겠지.”
바다 여행이라니 두렵기도 했지만 진주는 은근히 기대가 되었다. 마침내 여름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동해로 향했다. 고속도로를 타고가도 속초는 먼 거리였다. 속초에 온 김에 부두 구경을 하고 주문진 까지 가서 유명한 오징어 회와 병어회를 시켜 먹었다. 주문진을 나와 얼마 안가니 백사장이 둥그런 모양으로 해변을 따라 깔려 있었다. 민수는 민주를 모래위로 걷게 하고 사진을 찍었다. 파도가 몰아쳐 옷이 젖자 가져간 옷으로 갈아입었다. 옷 위로 입고 속옷을 걷어내는 것이라 알몸을 보라고 해도 볼 수가 없는 옷이었다. 서울서 속초까지 거리가 멀다보니 얼마 시간을 보내지 않았는데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진주야, 이번엔 그냥가자. 여기서 하룻밤 묵는 것도 마땅하지 않고.”
“그래, 좀 아쉽기는 하지만 오랫동안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잖아.”
“세상이 참 넓은 거야. 나와 보면 그런 걸 느껴.”
“어느 세상이든 아등바등 사는 세상이겠지.”
평일인데도 오는 길은 많이 막혀 있었다. 차라리 차에서 내려 뛰는 게 더 빠르다 싶었다.
새벽이나 되어서야 서울 원룸에 도착해서 정신모르고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잠을 잤다.
어느 날인가 진주는 전화를 받으며 나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소리가 커서누구와 전화하는지를 알 수가 있었다. 진주의 친구들이 엠티를 가자고하는 것 같았다. 진주는 내 눈치를 살피더니 내가 눈짓으로 가라고 승낙을 하자 이틀 뒤 아침 9시에 학교 정문 앞에 모두모여 출발하자며 전화를 끊었다. 일정은 일주일로 정했다.
“당신, 나 없으면 어떻해? 혼자 놔두고 가자니 별의별 걱정이 다 드네. 다른 건 몰라도 식사는 꼭 챙기고 부식은 내일 아침 출발하기 전까지 다 사놓을 테니 굶지 말고 꼭 끼니 챙겨 먹어.”
“어니, 어린애 챙기는 것 도 아니고......
“ 여자가 남자를 보면 다 어린애 같다고.”
“아. 알았어. 당신이나 몸성히 잘 다 와.
진주는 새벽같이 일어나 집안 청소도 깨끗이 해놓고 밥은 물론 반찬까지 다해놓고 민수가 깨자마자 잘 지내고 있으라며 이마에 뽀뽀 까지 해주고 원룸을 벗어났다. 문득 민수의 눈에 눈물이 그렁거렸다. ‘언제 내가 어머니로부터 이런 애정을 받아 본적이 있었는가. 그놈의 먹고사는 것, 그놈의 돈벌이 때문에 따듯한 애정 한번 못 보인 어머니. 지금도 남의 집 식당에서 얼마나 험한 일을 하고 계실까?’ 대학을 졸업하면 곧 바로 직장을 얻어 그나마 어머니를 봉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진주가 엠티를 가고나니 무언가 있던 것이 없어진 듯 집안이 허전하면서도 썰렁해졌다. 오후가 되자 더 허전한 생각이 들어 근처 공원으로 바람이나 쐬러 나갔다.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웬 낯선 남자들이 모여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한 서너 명쯤 되어 보였다. 날이 어두워지자 저희들끼리 야구공을 갖고 놀던 그들은 갑자기 민수 앞으로 오더니 시비를 걸었다.
“어이, 친구. 술값 좀 보태주겠나?”
“술값이요?”
“이자식이 어디다 대고 말대답이야.
“옷을 갈아입고 나와서 돈이 없는데요?”
“한번 뒤져보자.”
그중 리더인 듯한 불량배가 민수의 주머니를 뒤지게 했다. 그러나 돈이 없으니 나올 리가 없었다.
“야, 오늘 일진이 왜 이리 더러워, 돈 보기는 틀렸고 재수 없으니 혼이나 내주고 가자.”
말이 끝나자마자 한 놈이 야구배트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민수는 피하려고 몸을 돌리는 순간 야구배트가 그의 옆구리로 향했고 어찌나 세게 휘둘렀는지 갈비뼈가 부러지고 말았다. 갑자기 숨이 막혀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불량배들은 자기들이 저지르고 경찰에 신고할 수 없는 전과자들이라 모두 도망치고 말았다. 사람 살려 달라는 말도 목구멍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저 옆구리만 끌어안고 신음만 토해낼 뿐이었다. 하필이면 핸드폰도 집에 두고 와서 경찰이나 119신고를 할 수도 없었다. 한참을 숨이 멎을 것 같은 고통에 일어나지를 못하고 있는데, 여학생 둘이 그곳을 지나다가 민수를 발견하고 119로 전화를 해줬다. 민수는 병원에 실려가 이틀이나 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통원 치료는 다 나을 때까지 계속 하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와 누워있는데 그렇게 쓸쓸할 수가 없었다.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혼자 있다는 사실이 더 쓸쓸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는 일이다. 만일 공원에 쓰러졌을 때, 그 두 여학생이 안 도와 줬으면 죽었을지도 모른다. 죽을 만큼의 고통을 그는 처음 느낀 것이다. 그는 문득 어머니가 보고 싶어졌다. 자신이 잘못되었다면 다시는 못 뵈었을 어머니 인 것이다. 민수는 그길로 어머니가 일을 하는 식당으로 달려갔다. 깔끔한 옷을 입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형색은 지난번보다도 좋아 보였다.
“엄마, 내가 학교를 졸업하면 엄마랑 살 거예요.”
“우리가 집이 있니, 가진 게 있니. 뭐가 있어야 살지.”
“제가 취직을 하면 되지요. 설마 엄마 한분 못 모시겠어요?
“그래. 말만이라도 고맙다.”
민수는 진주 자취방으로 으로 돌아와 누웠다. 이틀을 병원 다니며 쉬니 다친 곳이 아무는 듯 통증이 사라졌다 그러고 느낀 것이 많았다. 진주가 돌아오고 나서 민수는 집에 좀 다녀오겠다고 하고 집으로 전화를 하니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하셨다고 했다. 점점 더 몸이 심해진다는 것이다. 민수는 아버지 준서가 입원해 있다는 대학병원으로 갔다. 막상 힘없이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를 대하자 눈물이 먼저 앞을 가렸다. 그는 간 부분이식 공여할 사람이라고 의사에게 말을 하니 의사도 반색을 했다. 아버지는 더 말할 나위가 없이 기뻐하시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고맙구나. 아들아.
‘고맙기는요. 자식 된 도리를 하는 것인데요.“
두 사람은 수술실로 옮겨져 간 부분이식을 진행했다. 수술 경과는 좋았다. 얼마 되지 않아 신기하게도 민수 아버지 준서는 언제 아팠느냐 하듯이 말짱하게 병실 안을 돌아다니셨다. 수술한지 얼마 안 되어 아버지는 퇴원을 하고는 집안에서 휴양을 했다. 말랐던 몸도 살이 올라 옛날의 건장했던 모습을 되찾았다. 그동안에 민수와 진주도 대학을 마쳤다. 성미가 급한 아버지는 다시 전에 다니던 회사의 기획부서로 들어가 일을 시작했다. 회장은 준서가 올 때까지 기획부서의 자리 하나는 비어두었다.
어느덧 민수와 진주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번은 준서가 민수 진주를 집으로 오라고 한 뒤, 민수와 함께 식탁 앞에 앉혀놓고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내 생각으로는 너의 둘을 우리 회사에 입사시키고 싶은데 어떠하냐.”
“아무리 내색을 안 해도 우리 둘이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입방아를 찔 것 같은데요.”
“이놈아. 직장 안에서 소문이 나고 입에 오르는 것은 너무 티를 내서 그러는 거다. 아무리 내가 너희들을 보아도 서로 대하는 것이 남 같지가 않아, 직원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지 말고 아예 결혼식을 올리거라 그러면 직원들 앞에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업무도 자유스럽게 볼 수가 있잖아.
“예, 그런데 결혼하기에는 좀 이른 나이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대학교 다니다가도 같이 동거하는 세상인데 뭔 그런 걱정을 하냐? 오히려 부부인 것을 알면 이득이 되면 되지 손해 될 것이 없다, 그러나 일에는 무엇이든 순서가 있으니 양가 상견례를 해야겠구나.”
“사실 저는 부친이 안 계셔요. 그래서 원룸생활을 한 것이고요. 상견례에 빈자리가 없도록 삼촌 한분을 모실 터이니 이해해 주세요. 어머님은 지금 몸이 좀 안 좋으셔서 누워계셔요.”
“이런 민수 놈보다도 더 어렵게 살았겠구나. 아무런 걱정을 말거라. 수일 내로 날을 잡아 만나보자.”
“예, 아버님.”
상견례를 갖은 날은 다음 주 일요일 이었다. 모두 한 회사에 다니니 한꺼번에 결석을 할 수가 없어서였다, 삼촌이라는 사람은 오십대였는데 초등학교의 교장으로 의외로 기품과 위엄을 지니고 있었다. 진주가 반듯하게 자란 것은 삼촌의 엄한 교육에서 비롯된 것 같았다. 삼촌 역시 반듯하게 자란 민수를 마음에 들어 하셨다. 서로에게 신뢰를 가지니 상견례 자리는 즐거움으로 넘쳐났다. 결혼식은 한 달 후 일요일에 올리기로 했다 아무래도 준비할 것이 많아서였다. 우선 둘이 머물 아파트를 마련해야했고 각종 살림살이며 기본적인 것만 준비하는데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막상 부부가 된다하니 민수나 진주나 서로에게 어색한 기운이 돌았다. 그전처럼 함부로 대했던 것이 이제는 조심스러워져서 였다. 결혼식을 올리던 날이 일요일이라 한 직장의 직원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많은 이들의 축복 속에서 결혼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 그러나 진수의 마음 한가운데는 아릿한 아픔이 결혼식이 끝날 때까지 차지하고 있었다. 다 키운 자식의 일생에 한번이라는 혼인식을 참석하지 못하는 어머니가 계속 걸려 있는 것이다. 그래도 진주 측에서는 아프시던 진주 어머니가 회복되어 혼주 석에 앉았지만, 민수 측에서는 계모가 친모자리를 대신 한 것이다. 자신이 나은 자식의 일생일대의 결혼식마저 참석하지 못한 어머니의 가슴은 얼마나 아프셨을까. 민수와 진수의 혼인여행은 남들 다 간다는 설악산으로 갔다. 근래에 들어 관광객이 많이 줄어서 케이블카도 바로 탔고 한갓진 경내구경도 느긋이 했다. 민수는 돌아오는 대로 진주와 함께 어머니를 찾아갔다. 진주는 어머니와 손을 맞잡고 펑펑 울었다.
“우리 며느리 참 착하게도 생겼구나. 애미 노릇을 못해서 원망 많이 했지?”
“아니 예요. 어머니가 계셨으니까, 민수씨가 저렇게 반듯하게 자란 거예요.”
평생 눈물을 모르던 민수의 눈에서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렸다.
“어머니, 죄송해요. 아무리 현실이 막아선다 해도 어머니를 혼주 석에 앉히셨어야 했어요.”
“아니다. 애야.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 살고 나는 나대로 주어진 운명대로 살면 되는 거다. 지금 와서 무엇을 바꿀 수 있겠느냐.”
“어머니, 이제부터 제가 어머니를 집근처로 모시겠어요. 가끔 옛날에 하시던 밥하고 반찬도 해주세요. 아버지도 제 일에 이젠 더 이상 참견 못하실 거예요.”
“지금 남의 집 생활하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겠니?”
“아녜요, 어머니, 직접 가게를 하세요. 우리 사는 아파트 부근에 빈 가게가 나오면 바로 연
락드릴께요.”
“이제껏 음식 조리하는 것을 배우지 않아서 자신이 없구나.”
“우선 한식 조리법을 가르치는 강의를 받으세요. 사람들도 많고 배우는 게 재미있대요. 아마 지금 어머니 일 하시는 그 식당에서는 그렇게 시간을 내주지 않을 거예요. 마침 진주가 쓰던 원룸을 아직 해약하지 않았으니 그곳을 쓰세요. 일요일 회사를 쉴 때 웬만하면 어머니에게 들러서 쓸쓸하지 않게 할께요. 시대가 나이를 불문하고 자격증이 있어야 그 분야에서 알아주니 힘들어도 열심히 다니세요. 다음 주 일요일 모시러 올께요.”
“그래, 알았다 다음 주 일요일 외출준비를 하고 있으마.”
“이젠 고생했던 지난날 다 잊고 행복하게 살아요.”
아파트로 돌아온 민수와 진주는 더 바빠졌다. 회사를 쉬는 일요일뿐만 아니라 조금이라도 낮이 익는 주민들을 만나면 부근에 식당자리가 나온 것을 본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부동산 중개사 사무실로 알아보려했다가 좀 더 자세한 정보를 듣기 위해 주민들에게 물어본 것이다, 가게가 비면 장사가 안 되서 빈 것 인지 음식솜씨가 나빠서 빈 것인지를 알고 식당을 얻으면 승부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민수부부는 일요일 별일이 없으면 원룸으로 어머니에게 찾아갔다. 가끔 전화를 해서 오라고도 하셨다. 음식 자랑을 하고 싶었던 거였다. 학원에서 배운 레시피를 만들어 민수부부 앞에 내 놓았다. 어머니가 내놓는 모든 음식들은 각기 다른 맛과 풍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건 오랜 세월을 식당에서 일을 해서 자연히 몸에 배인 것이다,
“엄마, 너무 맛있어요. 이런 음식은 유명 맛 집에나 가야 먹어볼 수 있어요.
“한식은 종료가 많으니 모두 꼼꼼하게 배우세요.”
“걱정마라. 너희 부부생각만하면 없던 기운도 펄펄 난다.”
정말 오랜만에 이들 앞으로 웃음이 찾아왔다. 진수가 어렸을 적에 어쩔 수 없이 보육원에 맡기고 얼마나 많은 세월을 눈물 속에서 살았는가. 그래도 한 번도 어머니를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걱정만을 한 대견한 아들. 이제 머지않아 가까이 살게 되면 모든 정성을 다해 아들을 돌봐 주리라 결심을 했다.
어머니가 자격증을 따고 얼마 안 되어 때를 맞춰 주듯이 아파트 입구 쪽에 식당하나가 매물로 나왔다. 한식집 인데다가 오래 장사를 하던 곳이라 단골도 많았다. 그 식당주인이 지병이 있어 어쩔 없이 내놓는 것이라고 했다. 보증금이 천만 원에 월 오 십 만원 월세 가게였다. 주인은 식당에서 쓰던 기구들을 그대로 놓고 나가는 대신 얼마간 권리금을 달라고 했다. 민수내외는 갖고 있는 비상금을 모두 털어 어머니에게 그 식당을 임대해서 오픈을 시켜드렸다. 지나다니는 길목이니 오가며 들여다보면 손님들이 바글바글 했다. 민수 어머니의 음식솜씨가 남달라서 였다. 일요일 같은 때는 민수부부도 가끔씩 어머니 가게에 가서 일을 거들어드렸다.
“잘 배워. 내가 맛있는 식사를 얻어먹으려고 일부러 당신을 데려오는 거야.”
“알았어요. 잘 배울께요.”
민수의 어머니는 그러는 진주가 여간 대견한 것이 아니었다. 두 남녀가 일부러 고르라 해도 고르지 못할 연분인 듯싶었다. 어머니의 식당이 번창하자 혼자 힘이 들어 종업원도 둘이나 두었다. 한 아주머니는 주방을 돕고 다른 아주머니는 배달을 다녔다. 민수는 문득 옛날에 어머니가 남의 집일을 하던 때가 생각났다. 머리위에 쟁반을 얹고 배달을 다닐 때면 목이 하도 가늘어 부러질 듯 보여서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른다. 아버지는 내 몸 던져 살려냈지만, 어머니 역시 어렵게 살게 하지는 않으리라 결심을 했다. 민수내외는 서로 상의해서 식당 근처에에 아파트 전세를 하나 얻어 어머니에게 거주하시라고 했다. 예전의 원룸은 아무래도 불편할 것 같아서였다.
“내가 뒤늦게 이게 무슨 호강이냐. 다 며느리를 잘 드려서 그런 것 같구나.”
“어머니, 원룸은 은근히 살기가 불편해요. 거기선 옆집에 누가 사는지 관심도 없고 만일 중병에 걸리면 병원에 가기도 어려워요.”
“전화기를 가지면 되는 문제 아니냐?”
“거긴 119차량이 다니기가 불편한 곳이예요. 막상 급할 때면 1분이 급 한대 길에서 시간이 지체되면 큰일이지요.”
“그래. 알았다. 며느리 말대로 하마.”
아파트는 방이나 세 개가 달려있고 거실도 넓었다.
“이젠 어머니 취미 생활도 하시고요. 드시고 싶은 것도 냉장고 속에 넣어놓고 요리를 해서 드세요.”
“애야, 나는 꿈을 꾸는 것 같구나. 민수, 너에게 죄만 짓고 살았는데, 어미라고 이렇게 챙겨주다니.”
“이제 어머니 다시는 고생 시켜드리지 않을 거예요.”
“내가 한 가지 당부를 좀 해도 되겠니?‘
“말씀하세요.”
“아무리 내게 못된 짓을 했다 해도 아버지는 아버지 시다. 자주 찾아뵙고 잘 모시 거라.”
“어머니는 바람을 피우다 못해 어머니를 내 쫒은 아버지에게 뭔 애정이 있으시다고 저에게 그런 부탁을 하세요.”
“잘 생각해 보거라. 그 여자 처지가 어떠한지를, 만일 아버지가 잘못되었더라면 그깟 유산이나 나눠받고 어디론가 떠날 처지가 아니겠니?” 내가 비록 이렇게 혼자 산다만 효자효부의 도움을 받는데, 그 여자는 욕만 먹고 떠날 사람 아니더냐. 아버지가 건강하셔도 네가 친자인데 역시 유산이 너에게도 나눠 질 거고. 돈이 인생의 전부가 다도 아니고 그 또한 유산을 받고 살아봐야 평생 좋은 사람이라는 평은 못 듣고 살게다. 민수야, 마음을 크게 갖고 그 어머니에게도 어려운 일이 생기면 보필하거라.“
“예, 명심하겠습니다.”
“비록 내 자식이지만 자식하나는 잘 둔 것 같구나. 거기에다 며느리까지 저리 천성이 고우니
엄마에게는 더 이상 한이 없겠구나.“
“그래도. 한동안 어머니를 남의 집 식당생활을 하게 한 잘못은 평생 후회하고 살거예요.”
“민수야, 너를 보육원에 맡긴 엄마가 잘못이 크지 어린 네가 뭘 할 수 있다고 널 원망하겠니. 이렇게 잘 성장해줘서 자랑스럽기만 하구나.”
“지금 네 부인인 진주가 너를 많이 도와준 것으로 알고 있다. 어미가 무슨 보답이라도 하려고 한다.”
민수의 어머니는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진주를 백화점으로 데려가서 한사코 사양 했으나 고운 정장 한 벌을 사 입혔다. 그도 못마땅한지 보석 코너로 가서 금반지도 해주었다. 그래도 양이 안 차셨는지, 식당으로 데려가 좋아하는 음식을 시켜주었다.
“어머니, 고마워요. 금반지는 오래 오래 간직하며 아껴 낄께요.”
“이젠 나를 친어머니라 여기거라.”
“예, 언제고 편안하게 모시겠어요.
“이제껏 살아왔지만 며느리를 들이고 이처럼 행복해 보기는 처음이구나,“
“앞으로도 자주 만나서 즐겁게 살자. 지난 일들은 이제 다 잊자꾸나.”
“알았어요 어머니,”
“진주야, 이제는 말뿐만이 아니라 너는 내 딸이다.”
“저도 어머니로 모시겠어요.”
“그동안 많이 힘이 들었던 것 알고 있다. 민수 저놈 얌전하기만 하지 처세술이 없어. 말을 하지 않아도 네가 많이 보필한 것으로 안다.”
“그렇지 않아요. 어리벙벙한 사람이라면 제가 민수 씨를 택했겠어요?”
“모든 것이 다 내게는 고마운 일이다. 이렇게 만났으니 이젠 한 가족처럼 살자꾸나.”
“예 어머니. 명심하겠습니다.
민수 어머니는 아들 내외를 들인 후 늘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았다.
소설 부정
요즘 따라 민수는 부쩍 말이 없어졌다. 각 동아리 모임에도 나오지를 않았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민수의 애인인 진주가 물어보아도 속내를 꺼내지 않으려고 했다.
“난 한 테까지 숨길거야?”
그래도 말을 할 듯 말 듯 얼른 꺼내지 못했다.
“말해봐 왜 그러는지, 답답해 죽겠어..”
그제야 민수는 길게 한숨을 쉬며 말을 시작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아버지가 내게 무리한 요구를 하고 계셔.”
“뭔데.”
그리고도 민수는 한동안 망설이다가 말을 꺼냈다.
“아버지가 간 경변인데 나에게 간을 조금 달라는 거야. 일부 떼어내도 다시 제생되니 별거 아니라며. 조직 검사를 해야 이식이 되는데 맞는 사람을 못 찾은 것 같애. 그래서 친족인 자식 것 이 필요하다는 거지.
“아무리 연관이 없는 내가 보아도 그건 무리한 부탁을 하는 것 같아.”
“이식을 못하면 얼마 못살고 죽는다고 하니 더 내게 매달리는 거지.
“참 너도 난처하겠다. 가족이 그러니 말이다.”
“사실, 난 보육원에서 자랐어. 아버지가 성격이 괴팍한데다가 바람을 피우고 여자를 집안으로 끌어들여 나를 자식처럼 여기지도 않고 구박하며 그 여자와 같이 사니 할 수없이 날 데리고 나왔는데, 식당일을 하려해도 철부지 때라 가게를 난장판으로 만드니 어쩔 수 없이 보육원에 맡기셨나봐. 가끔은 면회를 오셔서 눈물만 보이시고 가곤 했지. 나는 어른스럽게 데려가 달라고 떼를 쓰지는 않았어. 꾀죄죄한 식당 앞치마를 두르고 오시는데, 내가 더 가슴이 아프더라고.”
“안됐구나. 그런데 어떻게 해서 대학까지 다니는 거야?‘
“아버지가 간 경변 판정으로 죽게 되자 보육원에서 나를 데려다 놓고 어찌 보면 치료제로 양육을 한 거지.”
“아무리 원망스러워도 가끔, 심한고통을 받을 때면 안쓰럽기도 해 나는 새엄마가 집을 나갈까봐 걱정이 되는데, 아마도 아버지의 막대한 재산 때문에 붙어사는 것 같아. 아버지가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 할 때는 불쌍하기도 하고. 이게 아마 혈육이라는 정 때문인 것 같아.”
“참, 너도 힘들겠구나.”
“나도 모르겠어. 집안을 빠져나와 친어머니와 같이 살고도 싶고, 아버지 몰골을 보면 아버지 청을 들어줘야 할 것 같고.”
민수는 자신이 어찌해야 하는 것인지 판단이 들어서지를 않았다. 혼자 살기고 어려운 어머니에게 같이 사는 부담을 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버지가 하자는 애로 할 수도 없고, 진수는 어릴 때부터 병원 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어릴 때 팔을 다쳐 치료를 받으러 갔는데 어찌나 아팠는지, 그 기억이 영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팔도 그런데 배를 찢는 수술을 받는 다는 것은 그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공포감을 주는 것이다. 진주는 딱히 해줄 말이 없었다.
그런데 민수가 한 참을 망설이다가 말을 꺼냈다.
“네가 거주하고 있는 원룸에서 잠시 같이 지내면 안 될까?”
“글쎄 남녀가 한방을 쓰는 것은 위험하지 않아?”
“그건 걱정 말아. 이불도 따로 덮고 떨어져서 지낼게. 아직 졸업하려면 일 년은 남았으니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할 거야.”
“알았어. 너 같이 착한 애가 무슨 짓을 저지르겠니. 날이 추울 때니 내 방에서 지내도 괜찮아.”
“고맙다. 진주야. 월세나 의식주에 들어가는 돈도 내가 대부분 부담할게 평소에 용돈을 많이 줘서 통장에 돈은 쓸 만큼 들어있어. 차도 있으니 가는 길은 내 차를 타고 집에까지가.”
민수는 진주를 자취하는 원룸 앞에까지 데려다 주었다. 오층 건물인데도 입구에서 보니 옛날에 지은 건물 같았다. 엘리베이터도 없어 걸어서 삼층에 있는 자기 방까지 걸어 들어가는 것을 보고 돌아서왔다,
그날부터 민수와 진주는 원룸에서 같이 지내게 되었다. 민수는 부모님 집에서 나올 때, 친구 집에서 며칠 있을 거라며 아버지에게 말을 했다.
“차 운전조심하고 무슨 일 있으면 연락 하거라.”
“예. 아버님. 제 걱정 마시고 아버님 건강에나 신경 쓰세요.”
아버지는 대답대신 쓸쓸하게 웃으셨다. 원래 아버지는 국내 굴지의 기업에 기획을 담당하고 있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회사의 회장과는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동문수학을 해서 친밀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는 자주 민수 아버지를 병문안 왔다.
“빨리 나서 회사에 복귀해야지. 다른 직원들 일하는 게 자네 발끝도 못 따라오는 것 같아.”
“나도 하루빨리 건강해져서 일을 하고 싶네. 근데 내가 앞으로 어찌될지를 몰라 그저 자네에게 고맙게만 생각한다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지 않나. 희망을 갖게. 아, 옛날에 우리 둘 만 있으면 아무것도 무서운 것이 없을 때가 있었지 않나? 반드시 자네 건강을 되찾을 거네.”
“고마 우이 친구.”
회장은 민수 아버지의 손을 꽉 잡고 기운을 내라는 말을 남기며 돌아갔다.
진주와 민수는 남들 보기에 동거커플처럼 보이지만, 민수는 한 번도 진주의 침대로 올라 온 적이 없었다. 그건 신뢰였고 민수의 천성이었다. 그는 쇼퍼를 길게 이어서 거기서 자곤 했다. 또한 민수는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며 밤을 샐 때가 많아, 아침에 진주의 얼굴을 못 볼 때도 많았다. 진주는 그런 모습을 볼 때 마다 남편감으로 새겨도 될 사람으로 인식을 했다. 한번은 민수가 진주에게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을 했다.
“도시 생활이 너무 답답한데 여행한번 가지 않을래?”
“느닷없이 여행이야기가 나오니 어안이 벙벙해.”
“바다 구경을 한번 하자, 넓은 바다를 보면 가슴도 시원해지고 맺힌 것들도 풀릴 거야.”
“언제 어디로 가려고?”“조금 있으면 여름 방학이 시작 되잖아. 방학 개시되면 바로 떠나자고. 동해가 깨끗하다하니 동해로 가려고해.”
“동해면 멀지 않아? 사람들도 많고. 고생만 하고 오는 것 아냐?”
“바닷가나 거닐고, 부두며 횟집이나 들러서 올 것이니 지례 걱정 마. 자기나 나나 바다 구경한 번 한적 없잖아.
“괜히 설레게 만드네.”
“그렇게 알고 준비해. 구경거리는 많을 거야.”
“알았어. 뭔 준비라야 옷 한 벌 더 가져가면 되겠지.”
바다 여행이라니 두렵기도 했지만 진주는 은근히 기대가 되었다. 마침내 여름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동해로 향했다. 고속도로를 타고가도 속초는 먼 거리였다. 속초에 온 김에 부두 구경을 하고 주문진 까지 가서 유명한 오징어 회와 병어회를 시켜 먹었다. 주문진을 나와 얼마 안가니 백사장이 둥그런 모양으로 해변을 따라 깔려 있었다. 민수는 민주를 모래위로 걷게 하고 사진을 찍었다. 파도가 몰아쳐 옷이 젖자 가져간 옷으로 갈아입었다. 옷 위로 입고 속옷을 걷어내는 것이라 알몸을 보라고 해도 볼 수가 없는 옷이었다. 서울서 속초까지 거리가 멀다보니 얼마 시간을 보내지 않았는데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진주야, 이번엔 그냥가자. 여기서 하룻밤 묵는 것도 마땅하지 않고.”
“그래, 좀 아쉽기는 하지만 오랫동안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잖아.”
“세상이 참 넓은 거야. 나와 보면 그런 걸 느껴.”
“어느 세상이든 아등바등 사는 세상이겠지.”
평일인데도 오는 길은 많이 막혀 있었다. 차라리 차에서 내려 뛰는 게 더 빠르다 싶었다.
새벽이나 되어서야 서울 원룸에 도착해서 정신모르고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잠을 잤다.
어느 날인가 진주는 전화를 받으며 나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소리가 커서누구와 전화하는지를 알 수가 있었다. 진주의 친구들이 엠티를 가자고하는 것 같았다. 진주는 내 눈치를 살피더니 내가 눈짓으로 가라고 승낙을 하자 이틀 뒤 아침 9시에 학교 정문 앞에 모두모여 출발하자며 전화를 끊었다. 일정은 일주일로 정했다.
“당신, 나 없으면 어떻해? 혼자 놔두고 가자니 별의별 걱정이 다 드네. 다른 건 몰라도 식사는 꼭 챙기고 부식은 내일 아침 출발하기 전까지 다 사놓을 테니 굶지 말고 꼭 끼니 챙겨 먹어.”
“어니, 어린애 챙기는 것 도 아니고......
“ 여자가 남자를 보면 다 어린애 같다고.”
“아. 알았어. 당신이나 몸성히 잘 다 와.
진주는 새벽같이 일어나 집안 청소도 깨끗이 해놓고 밥은 물론 반찬까지 다해놓고 민수가 깨자마자 잘 지내고 있으라며 이마에 뽀뽀 까지 해주고 원룸을 벗어났다. 문득 민수의 눈에 눈물이 그렁거렸다. ‘언제 내가 어머니로부터 이런 애정을 받아 본적이 있었는가. 그놈의 먹고사는 것, 그놈의 돈벌이 때문에 따듯한 애정 한번 못 보인 어머니. 지금도 남의 집 식당에서 얼마나 험한 일을 하고 계실까?’ 대학을 졸업하면 곧 바로 직장을 얻어 그나마 어머니를 봉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진주가 엠티를 가고나니 무언가 있던 것이 없어진 듯 집안이 허전하면서도 썰렁해졌다. 오후가 되자 더 허전한 생각이 들어 근처 공원으로 바람이나 쐬러 나갔다.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웬 낯선 남자들이 모여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한 서너 명쯤 되어 보였다. 날이 어두워지자 저희들끼리 야구공을 갖고 놀던 그들은 갑자기 민수 앞으로 오더니 시비를 걸었다.
“어이, 친구. 술값 좀 보태주겠나?”
“술값이요?”
“이자식이 어디다 대고 말대답이야.
“옷을 갈아입고 나와서 돈이 없는데요?”
“한번 뒤져보자.”
그중 리더인 듯한 불량배가 민수의 주머니를 뒤지게 했다. 그러나 돈이 없으니 나올 리가 없었다.
“야, 오늘 일진이 왜 이리 더러워, 돈 보기는 틀렸고 재수 없으니 혼이나 내주고 가자.”
말이 끝나자마자 한 놈이 야구배트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민수는 피하려고 몸을 돌리는 순간 야구배트가 그의 옆구리로 향했고 어찌나 세게 휘둘렀는지 갈비뼈가 부러지고 말았다. 갑자기 숨이 막혀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불량배들은 자기들이 저지르고 경찰에 신고할 수 없는 전과자들이라 모두 도망치고 말았다. 사람 살려 달라는 말도 목구멍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저 옆구리만 끌어안고 신음만 토해낼 뿐이었다. 하필이면 핸드폰도 집에 두고 와서 경찰이나 119신고를 할 수도 없었다. 한참을 숨이 멎을 것 같은 고통에 일어나지를 못하고 있는데, 여학생 둘이 그곳을 지나다가 민수를 발견하고 119로 전화를 해줬다. 민수는 병원에 실려가 이틀이나 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통원 치료는 다 나을 때까지 계속 하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와 누워있는데 그렇게 쓸쓸할 수가 없었다.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혼자 있다는 사실이 더 쓸쓸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는 일이다. 만일 공원에 쓰러졌을 때, 그 두 여학생이 안 도와 줬으면 죽었을지도 모른다. 죽을 만큼의 고통을 그는 처음 느낀 것이다. 그는 문득 어머니가 보고 싶어졌다. 자신이 잘못되었다면 다시는 못 뵈었을 어머니 인 것이다. 민수는 그길로 어머니가 일을 하는 식당으로 달려갔다. 깔끔한 옷을 입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형색은 지난번보다도 좋아 보였다.
“엄마, 내가 학교를 졸업하면 엄마랑 살 거예요.”
“우리가 집이 있니, 가진 게 있니. 뭐가 있어야 살지.”
“제가 취직을 하면 되지요. 설마 엄마 한분 못 모시겠어요?
“그래. 말만이라도 고맙다.”
민수는 진주 자취방으로 으로 돌아와 누웠다. 이틀을 병원 다니며 쉬니 다친 곳이 아무는 듯 통증이 사라졌다 그러고 느낀 것이 많았다. 진주가 돌아오고 나서 민수는 집에 좀 다녀오겠다고 하고 집으로 전화를 하니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하셨다고 했다. 점점 더 몸이 심해진다는 것이다. 민수는 아버지 준서가 입원해 있다는 대학병원으로 갔다. 막상 힘없이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를 대하자 눈물이 먼저 앞을 가렸다. 그는 간 부분이식 공여할 사람이라고 의사에게 말을 하니 의사도 반색을 했다. 아버지는 더 말할 나위가 없이 기뻐하시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고맙구나. 아들아.
‘고맙기는요. 자식 된 도리를 하는 것인데요.“
두 사람은 수술실로 옮겨져 간 부분이식을 진행했다. 수술 경과는 좋았다. 얼마 되지 않아 신기하게도 민수 아버지 준서는 언제 아팠느냐 하듯이 말짱하게 병실 안을 돌아다니셨다. 수술한지 얼마 안 되어 아버지는 퇴원을 하고는 집안에서 휴양을 했다. 말랐던 몸도 살이 올라 옛날의 건장했던 모습을 되찾았다. 그동안에 민수와 진주도 대학을 마쳤다. 성미가 급한 아버지는 다시 전에 다니던 회사의 기획부서로 들어가 일을 시작했다. 회장은 준서가 올 때까지 기획부서의 자리 하나는 비어두었다.
어느덧 민수와 진주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번은 준서가 민수 진주를 집으로 오라고 한 뒤, 민수와 함께 식탁 앞에 앉혀놓고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내 생각으로는 너의 둘을 우리 회사에 입사시키고 싶은데 어떠하냐.”
“아무리 내색을 안 해도 우리 둘이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입방아를 찔 것 같은데요.”
“이놈아. 직장 안에서 소문이 나고 입에 오르는 것은 너무 티를 내서 그러는 거다. 아무리 내가 너희들을 보아도 서로 대하는 것이 남 같지가 않아, 직원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지 말고 아예 결혼식을 올리거라 그러면 직원들 앞에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업무도 자유스럽게 볼 수가 있잖아.
“예, 그런데 결혼하기에는 좀 이른 나이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대학교 다니다가도 같이 동거하는 세상인데 뭔 그런 걱정을 하냐? 오히려 부부인 것을 알면 이득이 되면 되지 손해 될 것이 없다, 그러나 일에는 무엇이든 순서가 있으니 양가 상견례를 해야겠구나.”
“사실 저는 부친이 안 계셔요. 그래서 원룸생활을 한 것이고요. 상견례에 빈자리가 없도록 삼촌 한분을 모실 터이니 이해해 주세요. 어머님은 지금 몸이 좀 안 좋으셔서 누워계셔요.”
“이런 민수 놈보다도 더 어렵게 살았겠구나. 아무런 걱정을 말거라. 수일 내로 날을 잡아 만나보자.”
“예, 아버님.”
상견례를 갖은 날은 다음 주 일요일 이었다. 모두 한 회사에 다니니 한꺼번에 결석을 할 수가 없어서였다, 삼촌이라는 사람은 오십대였는데 초등학교의 교장으로 의외로 기품과 위엄을 지니고 있었다. 진주가 반듯하게 자란 것은 삼촌의 엄한 교육에서 비롯된 것 같았다. 삼촌 역시 반듯하게 자란 민수를 마음에 들어 하셨다. 서로에게 신뢰를 가지니 상견례 자리는 즐거움으로 넘쳐났다. 결혼식은 한 달 후 일요일에 올리기로 했다 아무래도 준비할 것이 많아서였다. 우선 둘이 머물 아파트를 마련해야했고 각종 살림살이며 기본적인 것만 준비하는데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막상 부부가 된다하니 민수나 진주나 서로에게 어색한 기운이 돌았다. 그전처럼 함부로 대했던 것이 이제는 조심스러워져서 였다. 결혼식을 올리던 날이 일요일이라 한 직장의 직원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많은 이들의 축복 속에서 결혼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 그러나 진수의 마음 한가운데는 아릿한 아픔이 결혼식이 끝날 때까지 차지하고 있었다. 다 키운 자식의 일생에 한번이라는 혼인식을 참석하지 못하는 어머니가 계속 걸려 있는 것이다. 그래도 진주 측에서는 아프시던 진주 어머니가 회복되어 혼주 석에 앉았지만, 민수 측에서는 계모가 친모자리를 대신 한 것이다. 자신이 나은 자식의 일생일대의 결혼식마저 참석하지 못한 어머니의 가슴은 얼마나 아프셨을까. 민수와 진수의 혼인여행은 남들 다 간다는 설악산으로 갔다. 근래에 들어 관광객이 많이 줄어서 케이블카도 바로 탔고 한갓진 경내구경도 느긋이 했다. 민수는 돌아오는 대로 진주와 함께 어머니를 찾아갔다. 진주는 어머니와 손을 맞잡고 펑펑 울었다.
“우리 며느리 참 착하게도 생겼구나. 애미 노릇을 못해서 원망 많이 했지?”
“아니 예요. 어머니가 계셨으니까, 민수씨가 저렇게 반듯하게 자란 거예요.”
평생 눈물을 모르던 민수의 눈에서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렸다.
“어머니, 죄송해요. 아무리 현실이 막아선다 해도 어머니를 혼주 석에 앉히셨어야 했어요.”
“아니다. 애야.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 살고 나는 나대로 주어진 운명대로 살면 되는 거다. 지금 와서 무엇을 바꿀 수 있겠느냐.”
“어머니, 이제부터 제가 어머니를 집근처로 모시겠어요. 가끔 옛날에 하시던 밥하고 반찬도 해주세요. 아버지도 제 일에 이젠 더 이상 참견 못하실 거예요.”
“지금 남의 집 생활하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겠니?”
“아녜요, 어머니, 직접 가게를 하세요. 우리 사는 아파트 부근에 빈 가게가 나오면 바로 연
락드릴께요.”
“이제껏 음식 조리하는 것을 배우지 않아서 자신이 없구나.”
“우선 한식 조리법을 가르치는 강의를 받으세요. 사람들도 많고 배우는 게 재미있대요. 아마 지금 어머니 일 하시는 그 식당에서는 그렇게 시간을 내주지 않을 거예요. 마침 진주가 쓰던 원룸을 아직 해약하지 않았으니 그곳을 쓰세요. 일요일 회사를 쉴 때 웬만하면 어머니에게 들러서 쓸쓸하지 않게 할께요. 시대가 나이를 불문하고 자격증이 있어야 그 분야에서 알아주니 힘들어도 열심히 다니세요. 다음 주 일요일 모시러 올께요.”
“그래, 알았다 다음 주 일요일 외출준비를 하고 있으마.”
“이젠 고생했던 지난날 다 잊고 행복하게 살아요.”
아파트로 돌아온 민수와 진주는 더 바빠졌다. 회사를 쉬는 일요일뿐만 아니라 조금이라도 낮이 익는 주민들을 만나면 부근에 식당자리가 나온 것을 본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부동산 중개사 사무실로 알아보려했다가 좀 더 자세한 정보를 듣기 위해 주민들에게 물어본 것이다, 가게가 비면 장사가 안 되서 빈 것 인지 음식솜씨가 나빠서 빈 것인지를 알고 식당을 얻으면 승부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민수부부는 일요일 별일이 없으면 원룸으로 어머니에게 찾아갔다. 가끔 전화를 해서 오라고도 하셨다. 음식 자랑을 하고 싶었던 거였다. 학원에서 배운 레시피를 만들어 민수부부 앞에 내 놓았다. 어머니가 내놓는 모든 음식들은 각기 다른 맛과 풍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건 오랜 세월을 식당에서 일을 해서 자연히 몸에 배인 것이다,
“엄마, 너무 맛있어요. 이런 음식은 유명 맛 집에나 가야 먹어볼 수 있어요.
“한식은 종료가 많으니 모두 꼼꼼하게 배우세요.”
“걱정마라. 너희 부부생각만하면 없던 기운도 펄펄 난다.”
정말 오랜만에 이들 앞으로 웃음이 찾아왔다. 진수가 어렸을 적에 어쩔 수 없이 보육원에 맡기고 얼마나 많은 세월을 눈물 속에서 살았는가. 그래도 한 번도 어머니를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걱정만을 한 대견한 아들. 이제 머지않아 가까이 살게 되면 모든 정성을 다해 아들을 돌봐 주리라 결심을 했다.
어머니가 자격증을 따고 얼마 안 되어 때를 맞춰 주듯이 아파트 입구 쪽에 식당하나가 매물로 나왔다. 한식집 인데다가 오래 장사를 하던 곳이라 단골도 많았다. 그 식당주인이 지병이 있어 어쩔 없이 내놓는 것이라고 했다. 보증금이 천만 원에 월 오 십 만원 월세 가게였다. 주인은 식당에서 쓰던 기구들을 그대로 놓고 나가는 대신 얼마간 권리금을 달라고 했다. 민수내외는 갖고 있는 비상금을 모두 털어 어머니에게 그 식당을 임대해서 오픈을 시켜드렸다. 지나다니는 길목이니 오가며 들여다보면 손님들이 바글바글 했다. 민수 어머니의 음식솜씨가 남달라서 였다. 일요일 같은 때는 민수부부도 가끔씩 어머니 가게에 가서 일을 거들어드렸다.
“잘 배워. 내가 맛있는 식사를 얻어먹으려고 일부러 당신을 데려오는 거야.”
“알았어요. 잘 배울께요.”
민수의 어머니는 그러는 진주가 여간 대견한 것이 아니었다. 두 남녀가 일부러 고르라 해도 고르지 못할 연분인 듯싶었다. 어머니의 식당이 번창하자 혼자 힘이 들어 종업원도 둘이나 두었다. 한 아주머니는 주방을 돕고 다른 아주머니는 배달을 다녔다. 민수는 문득 옛날에 어머니가 남의 집일을 하던 때가 생각났다. 머리위에 쟁반을 얹고 배달을 다닐 때면 목이 하도 가늘어 부러질 듯 보여서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른다. 아버지는 내 몸 던져 살려냈지만, 어머니 역시 어렵게 살게 하지는 않으리라 결심을 했다. 민수내외는 서로 상의해서 식당 근처에에 아파트 전세를 하나 얻어 어머니에게 거주하시라고 했다. 예전의 원룸은 아무래도 불편할 것 같아서였다.
“내가 뒤늦게 이게 무슨 호강이냐. 다 며느리를 잘 드려서 그런 것 같구나.”
“어머니, 원룸은 은근히 살기가 불편해요. 거기선 옆집에 누가 사는지 관심도 없고 만일 중병에 걸리면 병원에 가기도 어려워요.”
“전화기를 가지면 되는 문제 아니냐?”
“거긴 119차량이 다니기가 불편한 곳이예요. 막상 급할 때면 1분이 급 한대 길에서 시간이 지체되면 큰일이지요.”
“그래. 알았다. 며느리 말대로 하마.”
아파트는 방이나 세 개가 달려있고 거실도 넓었다.
“이젠 어머니 취미 생활도 하시고요. 드시고 싶은 것도 냉장고 속에 넣어놓고 요리를 해서 드세요.”
“애야, 나는 꿈을 꾸는 것 같구나. 민수, 너에게 죄만 짓고 살았는데, 어미라고 이렇게 챙겨주다니.”
“이제 어머니 다시는 고생 시켜드리지 않을 거예요.”
“내가 한 가지 당부를 좀 해도 되겠니?‘
“말씀하세요.”
“아무리 내게 못된 짓을 했다 해도 아버지는 아버지 시다. 자주 찾아뵙고 잘 모시 거라.”
“어머니는 바람을 피우다 못해 어머니를 내 쫒은 아버지에게 뭔 애정이 있으시다고 저에게 그런 부탁을 하세요.”
“잘 생각해 보거라. 그 여자 처지가 어떠한지를, 만일 아버지가 잘못되었더라면 그깟 유산이나 나눠받고 어디론가 떠날 처지가 아니겠니?” 내가 비록 이렇게 혼자 산다만 효자효부의 도움을 받는데, 그 여자는 욕만 먹고 떠날 사람 아니더냐. 아버지가 건강하셔도 네가 친자인데 역시 유산이 너에게도 나눠 질 거고. 돈이 인생의 전부가 다도 아니고 그 또한 유산을 받고 살아봐야 평생 좋은 사람이라는 평은 못 듣고 살게다. 민수야, 마음을 크게 갖고 그 어머니에게도 어려운 일이 생기면 보필하거라.“
“예, 명심하겠습니다.”
“비록 내 자식이지만 자식하나는 잘 둔 것 같구나. 거기에다 며느리까지 저리 천성이 고우니
엄마에게는 더 이상 한이 없겠구나.“
“그래도. 한동안 어머니를 남의 집 식당생활을 하게 한 잘못은 평생 후회하고 살거예요.”
“민수야, 너를 보육원에 맡긴 엄마가 잘못이 크지 어린 네가 뭘 할 수 있다고 널 원망하겠니. 이렇게 잘 성장해줘서 자랑스럽기만 하구나.”
“지금 네 부인인 진주가 너를 많이 도와준 것으로 알고 있다. 어미가 무슨 보답이라도 하려고 한다.”
민수의 어머니는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진주를 백화점으로 데려가서 한사코 사양 했으나 고운 정장 한 벌을 사 입혔다. 그도 못마땅한지 보석 코너로 가서 금반지도 해주었다. 그래도 양이 안 차셨는지, 식당으로 데려가 좋아하는 음식을 시켜주었다.
“어머니, 고마워요. 금반지는 오래 오래 간직하며 아껴 낄께요.”
“이젠 나를 친어머니라 여기거라.”
“예, 언제고 편안하게 모시겠어요.
“이제껏 살아왔지만 며느리를 들이고 이처럼 행복해 보기는 처음이구나,“
“앞으로도 자주 만나서 즐겁게 살자. 지난 일들은 이제 다 잊자꾸나.”
“알았어요 어머니,”
민수 어머니는 아들 내외를 들인 후 늘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