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뇌 서시
글 이정재
마음의 폭풍이 멎은 것은
세상이 온화해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과분한 사치처럼 품었던 기대가 치열한 거절의
벽 아래 하얗게 지쳐
멀어진 까닭입니다.
차가운 행정의 언어들을
더 이상 따져 묻지 않는
것은 그들의 빈 가슴을 이해해서가 아닙니다.
벽을 마주하고 소리치던 무력함 끝에 마지막
지푸라기 같던 희망을
가만히 놓아주었기 때문입니다.
서운함을 입술 뒤로
삼키는 까닭은
영혼 없는 무표정의 얼굴들에게 이제는
단 한 줌의 기대조차
남겨두고 싶지 않은 까닭입니다.
단 하루를 머물다
가더라도 온기도 교양도
없는 저 차가운 손들과
더는 내 귀한 말을
섞지 않으리라.
돌아서서 조용히
빗장을 지릅니다.
육신의 날개는 꺾이고
두 눈의 빛 희미해졌을
지언정 평생 타인을
돌보며 쌓아 올린
내 영혼의 시린 존엄함
만큼은 저들의 탁상
위에 더럽히지 않겠노라
상처 입은 내 등불을
품에 안고 오늘 밤,
고요히 마음을 거두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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