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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말씀(1):::::

[[기경호 신부]]6월 6일 (녹) 연중 제9주간 토요일 <교회를 떠받치는 숨은 봉헌>

작성자*Anna|작성시간26.06.06|조회수21 목록 댓글 0

2026년 6월 6일 (녹) 연중 제9주간 토요일 <교회를 떠받치는 숨은 봉헌>기경호프란치스코 ofm

 

2026년 6월 6일 (녹) 연중 제9주간 토요일
2티모 4,1-8; 마르 12,38-44


제1독서
<복음 선포자의 일을 하십시오. 주님께서 의로움의 화관을 주실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2서 말씀입니다.4,1-8
사랑하는 그대여,
1 나는 하느님 앞에서, 또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님 앞에서,
그리고 그분의 나타나심과 다스리심을 걸고
그대에게 엄숙히 지시합니다.
2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계속하십시오.
끈기를 다하여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타이르고 꾸짖고 격려하십시오.
3 사람들이 건전한 가르침을 더 이상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을 때가 올 것입니다.
호기심에 가득 찬 그들은 자기들의 욕망에 따라 교사들을 모아들일 것입니다.
4 그리고 진리에는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고 신화 쪽으로 돌아설 것입니다.
5 그러나 그대는 어떠한 경우에도 정신을 차리고 고난을 견디어 내며,
복음 선포자의 일을 하고 그대의 직무를 완수하십시오.
6 나는 이미 하느님께 올리는 포도주로 바쳐지고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
7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8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의로운 심판관이신 주님께서 그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타나시기를 애타게 기다린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38-44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38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이르셨다.
“율법 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긴 겉옷을 입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
39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40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이러한 자들은 더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다.”
41 예수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시어,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셨다.
많은 부자들이 큰돈을 넣었다.
42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와서 렙톤 두 닢을 넣었다.
그것은 콰드란스 한 닢인 셈이다.
43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44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말씀의 씨앗 Semina Verbi: 연중 9주 토요일

교회를 떠받치는 숨은 봉헌



바오로 사도는 티모테오에게 마지막 권고를 하며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하십시오”(2티모 4,2)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선포하다”(κήρυξον)는 왕의 전령처럼 공개적으로 외친다는 뜻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사람들이 “건전한 가르침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을 때”가 올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불편한 진리보다 듣기 좋은 말과 즉각적인 위로를 원합니다. 신앙마저도 세상의 취향에 맞추려는 유혹이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는 성공이 아니라 충실함을 요구합니다. 그는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4,7)라고 고백합니다. 믿음은 안전하게 보존할 때가 아니라 삶으로 내어놓을 때 지켜집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들의 위선을 꾸짖으십니다.
그들은 긴 겉옷을 입고 인사받기를 좋아하며, 신앙을 자신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는다”라고 하시는데, 여기서 “등쳐 먹는다”(κατεσθίω)는 완전히 집어삼켜 버린다는 뜻입니다.


약자를 돌보아야 할 종교가 오히려 약자를 이용하는 모습입니다. 오늘날에도 신앙이 명예나 권력, 자기만족의 수단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직분이 봉사가 아니라 성공의 수단이 되고, 영적인 말이 욕망을 감추는 가면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부자들은 남는 돈을 바쳤지만, 과부는 “생활비를 모두”(마르 12,44) 바칩니다. 과부는 “생활”(βίος(bíos), 곧 가진 것 일부가 아니라 자기 생명을 내어놓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액수보다 마음의 전부를 보십니다. 계산과 효율이 우선되는 시대에 과부는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를 보여 줍니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역시 바로 이러한 복음적 가난을 사셨습니다. 그는 가난을 낭만적으로 추구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께 의지하는 자유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병 환자를 끌어안을 수 있었고, 버려진 성당을 고치며, 작은 이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이가 이 과부처럼 교회를 떠받치고 있습니다. 가족을 위해 매일 기도하는 노인들, 병과 고통을 조용히 봉헌하는 수도자들, 힘겨운 삶 속에서도 더 어려운 이들을 돕는 사람들, 열악한 본당에서 묵묵히 사목하는 사제들, 세상의 이기심에 맞서 진리를 찾으려는 젊은이들이 그렇습니다. 세상은 이런 봉헌을 알아보지 못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모두 보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을 보십니다.


오늘 말씀은 “얼마나 많이 바쳤는가”보다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가”를 묻습니다. 손은 가득 차 있지만 마음은 닫혀 있을 수 있고, 가진 것은 적어도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며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길은 인정받는 삶이 아니라 작은 일 안에서 끝까지 충실한 삶입니다.


바오로처럼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과부처럼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며, 성 프란치스코처럼 단순함과 기쁨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지치고 겉모습에 매달리는 시대 안에서도, 주님께서는 여전히 자신을 온전히 내어놓는 작은 이들을 통해 교회를 지탱하고 계십니다.


▶기경호프란치스코 o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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