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8일 (녹)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너희는 기도할 때에.”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
|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제1독서 <엘리야가 소용돌이에 휩싸일 때 엘리사는 엘리야의 영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 집회서의 말씀입니다.48,1-14 1 엘리야 예언자가 불처럼 일어섰는데 그의 말은 횃불처럼 타올랐다. 2 엘리야는 그들에게 굶주림을 불러들였고 자신의 열정으로 그들의 수를 감소시켰다. 3 주님의 말씀에 따라 그는 하늘을 닫아 버리고 세 번씩이나 불을 내려보냈다. 4 엘리야여, 당신은 놀라운 일들로 얼마나 큰 영광을 받았습니까? 누가 당신처럼 자랑스러울 수 있겠습니까? 5 당신은 죽은 자를 죽음에서 일으키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말씀에 따라 그를 저승에서 건져 냈습니다. 6 당신은 여러 임금들을 멸망으로 몰아넣고 명사들도 침상에서 멸망으로 몰아넣었습니다. 7 당신은 시나이 산에서 꾸지람을 듣고 호렙 산에서 징벌의 판결을 들었습니다. 8 당신은 임금들에게 기름을 부어 복수하게 하고 예언자들에게도 기름을 부어 당신의 후계자로 삼았습니다. 9 당신은 불 소용돌이 속에서 불 마차에 태워 들어 올려졌습니다. 10 당신은 정해진 때를 대비하여 주님의 분노가 터지기 전에 그것을 진정시키고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되돌리며 야곱의 지파들을 재건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1 당신을 본 사람들과 사랑 안에서 잠든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우리도 반드시 살아날 것입니다. 12 엘리야가 소용돌이에 휩싸일 때 엘리사는 엘리야의 영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엘리사는 일생 동안 어떤 통치자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아무도 그를 굴복시키지 못하였다. 13 그에게는 어떤 일도 어렵지 않았으며 잠든 후에도 그의 주검은 예언을 하였다. 14 살아생전에 엘리사는 기적들을 일으켰고 죽어서도 그의 업적은 놀라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7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8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11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12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13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14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15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의 강론말씀 “너희는 기도할 때에.” ‘집회서 集會書, Wisdom of Jesus the Son of Sirach’는 유대교에서는 성경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지만 초대 그리스도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그 칭호도 ‘교회의 책’이라는 뜻으로 ‘에끌레시아스티꾸스 ecclesiaticus'라고 붙여졌습니다. 그전에는 책 말미에 붙여진 저자의 이름을 붙여서 ‘벤 시라의 책’이라는 ‘세페르 벤 시라 ספר בן סירא’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BC 180~175경에 유대교 율법과 관습에 정통한 저자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있는 유대인들이 조상의 믿음과 관습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내용이 희랍 철학의 영향을 받아 사고적(思考的)인 것 같으면서도 사람의 일상생활의 세세한 지혜의 지침을 담고 있습니다. 집회서 저자는 유대인들에게는 대표적인 인물인 엘리야 예언자의 업적에 대해서 칭송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시대에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엘리야는 삶의 위로와 희망이고 메시아였습니다. “야곱의 지파들을 재건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신을 본 사람들과 사랑 안에서 잠든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우리도 반드시 살아날 것입니다.”(집회 48,10-11) 당시 나라를 잃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그가 야곱의 지파들을 재건하리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에 대한 희망은 낯선 고국을 떠난 낯선 이국의 생활에서 삶을 살아가는 버팀목이 었습니다. 이어서 저자는 엘리야의 제자 엘리야에 대해서도 훌륭한 예언자임을 칭송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바빌론 유배 후의 자료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인정하지 않는 집회서를 통해서 고국을 떠나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의 모습을 그나마 볼 수 있습니다. ‘다아스포라’는 그리스어 διασπορά에서 왔는데 '흩뿌리거나 퍼트리는 것'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해외 교포 공동체를 뜻하는 것입니다. 집회서 저자의 입장에서 더 자세한 이 말의 의미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이스라엘 동포 공동체를 의미한다고 하겠지요. 그들의 말은 이스라엘의 말인 히브리(hebrew)였는데 그들의 후손 세대는 당시 통용어 였던 희랍어(greek)여서 이 성경도 희랍어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인의 국수주의(國粹主義) 사상에서 히브리 말이 아니라는 이유와 초대 그리스도교인이 함께 쓰고 있다는 배타적인 이유로 디아스포라에서 이미 쓰고 있던 소중한 이 집회서를 성경의 정경에서 제외 시켰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들어서 사해문헌과 알렉산드리아 에즈라 회당 창고에서 히브리어 성경이 발견 되는 바람에 유대인들의 결정이 잘못된 것이 드러났습니다. 희랍어 성경만 있는 줄 알고 성경에서 배제 시켰던 그들의 편협된 사고가 얼마나 문제가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집회서의 역사적 배경을 떠나서 지금도 인간이 만든 종교적 ‘정통성’ ‘아집’ 때문에 단절된 세계를 만드는 것을 우리는 흔히 보고 있습니다. 나라를 떠나 세상을 떠돌면서 유다인들에는 선조들로부터 전해 받은 엘리야의 이야기는 큰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회서 저자는 엘리야의 메시아적인 업적을 찬미합니다. “엘리야여, 당신은 놀라운 일들로 얼마나 큰 영광을 받았습니까? 누가 당신처럼 자랑스러울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죽은 자를 죽음에서 일으키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말씀에 따라 그를 저승에서 건져 냈습니다.“(집회 48,4-5) 그래서 집회서 저자는 엘리야를 찬미합니다. “당신을 본 사람들과 사랑 안에서 잠든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우리도 반드시 살아날 것입니다.”(48,11) 저자는 엘리야를 그 어떤 예언자보다도 존경하며 ‘기적들을 일으켰고 죽어서도 그의 업적은 놀라웠다.’(48,14)라고 마무리 합니다. 후대 유다인들의 엘리야에 대한 신앙을 집회서가 대변한다고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군중을 보시고 제자들에게 산상설교를 하시고 나서 실생활에서 필요한 교훈의 말씀들을 이어서 하십니다. 예를 들어 올바른 자선과 기도에 대해서 제자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주님의 기도를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그 기도문의 구조는 하느님께 대한 것(6,9-10)과 인간과 관련된 부분(11-13절) 그리고 주님께서 덧붙여서 용서에 대한 가르침을 전하십니다.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14-15) 구약의 전형적인 십계명의 하느님과 인간과 관련된 구조(탈출 20,3-17; 신명 5,7-21)와 비슷 합니다. 첫째 부분에서는 하느님 이름이 거룩하게 드러내시며, 하느님 나라의 도래, 그리고 하느님 뜻의 성취를 기원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둘째 부분에서 인간에게 중요한 매일의 양식, 잘못한 이를 용서하는 것, 유혹과 악에서 구해주시기를 청하는 내용입니다. 눈에 띄게 독특한 것은 예수님께서 구약의 근엄하신 하느님을 다정하신 아버지로 소개해 주신 다는 것입니다. 신앙인은 하느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바위처럼 든든하신 하느님을 찬미하고 그분을 마음껏 사랑하는 일이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행복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 없이는 공허하고 텅 빈 것이 인간의 모습인 것이지요. 그리고 매일 밥 먹고 사는 것이 때로 쉽게 보일 수 있습니다. 단순한 것 같은데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것은 미래의 양식이 아닌 오늘의 양식을 구하라는 가난한 마음을 요구하십니다. 인간의 끝없는 욕심은 양식을 쌓아놓아야 안심하는데, 그래서 여벌의 것은 청하지 않고 오늘도 도와주시듯이 내일도 도와주실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오늘 것만 청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크고 작은 것들을 이웃과 나누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며 이웃과의 관계에서 좋은 것도 있지만 서로 잘못하고 상처도 줄 수 있습니다.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는 것 때문에 힘겨워 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섬세하다보니 쉽게 그 상처를 잊을 수도 없고 감정적으로 섭섭하고 분한 마음에 갇혀 용서하는 것이 사 실 하느님 없이는 용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주님께서는 먼저 우리가 용서하려고 애쓰라고 하십니다. 그 용서가 완전하지 않더라도 먼저 용서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사실 용서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용서하기 위해서도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셔야 그리스도의 사랑의 마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우리는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얻고 그리스도의 말씀과 사랑으로 용서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달콤한 유혹의 덫에서 그리고 막강한 악의 세력 앞에서 인간은 사실 약합니다. 이것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이런 것들에게 맞서지 말고 처음부터 하느님의 도움을 청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주님의 강한 손길만이 유혹에서 악의 세력에서 우리를 구하실 수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새겨 주시는 말씀을 겸손한 마음으로 다시 새겨야 할 것입니다.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14-15) 낯선 타향의 땅에서 믿음의 공동체가 즐겨 읽고 힘과 위로를 받았던 집회서 저자의 기도를 되새기며 우리에게도 하느님께서 우리의 길잡이가 되어주시도록 청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도 낯선 땅에서 주님을 향해 걷는 순례자의 삶을 이끌어 주시도록 또한 기도해야겠습니다. 하루를 지내며 어떤 악에도 기울어지지 않고 용서하고 이해하는 넓은 마음을 주시도록, 그리고 욕심을 버리고 오늘의 빵만을 청할 수 있는 가난한 마음을 주시도록, 그리고 무엇보다 이 땅에 하느님 나라가 오시도록 기도합니다. 주님께 우리의 발걸음을 기쁨과 평화로 이끌어 주시며 주님의 어지심과 사랑을 익히는 우리가 되도록 오늘도 기도합시다. 출처: 구름 흘러가는 원문보기 글쓴이: 말씀사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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