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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말씀(1):::::

[[기경호 신부]]6월 23일 (녹) 연중 제12주간 화요일 <좁은 문과 신뢰하는 마음>

작성자*Anna|작성시간26.06.23|조회수25 목록 댓글 0

2026년 6월 23일 (녹) 연중 제12주간 화요일 <좁은 문과 신뢰하는 마음>기경호프란치스코 ofm.

 

2026년 6월 23일  (녹) 연중 제12주간 화요일
2열왕 19,9ㄴ-11.14-21.31-35ㄱ.36; 마태 7,6.12-14


제1독서
<나는 이 도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니, 이는 나 자신과 다윗 때문이다.>
▥ 열왕기 하권의 말씀입니다.19,9ㄴ-11.14-21.31-35ㄱ.36
9 히즈키야에게 사신들을 보내며 이렇게 말하였다.
10 “너희는 유다 임금 히즈키야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네가 믿는 너의 하느님이,
′예루살렘은 아시리아 임금의 손에 넘어가지 않는다.′ 하면서,
너를 속이는 일이 없게 하여라.
11 자, 아시리아 임금들이 다른 모든 나라를 전멸시키면서 어떻게 하였는지
너는 듣지 않았느냐?
그런데도 너만 구원받을 수 있을 것 같으냐?’”
14 히즈키야는 사신들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 읽었다.
그런 다음 히즈키야는 주님의 집으로 올라가서,
그것을 주님 앞에 펼쳐 놓았다.
15 그리고 히즈키야는 주님께 이렇게 기도하였다.
“커룹들 위에 좌정하신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
세상의 모든 왕국 위에 당신 홀로 하느님이십니다.
당신께서는 하늘과 땅을 만드셨습니다.
16 주님, 귀를 기울여 들어 주십시오.
주님, 눈을 뜨고 보아 주십시오.
살아 계신 하느님을 조롱하려고 산헤립이 보낸 이 말을 들어 보십시오.
17 주님, 사실 아시리아 임금들은 민족들과 그 영토를 황폐하게 하고,
18 그들의 신들을 불에 던져 버렸습니다.
그것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만든 작품으로서
나무와 돌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이 그것들을 없애 버릴 수 있었습니다.
19 그러나 이제 주 저희 하느님, 부디 저희를 저자의 손에서 구원하여 주십시오.
그러면 세상의 모든 왕국이, 주님, 당신 홀로 하느님이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20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가 히즈키야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 때문에 네가 나에게 바친 기도를 내가 들었다.’
21 주님께서 그를 두고 하신 말씀은 이러합니다.
‘처녀 딸 시온이 너를 경멸한다, 너를 멸시한다.
딸 예루살렘이 네 뒤에서 머리를 흔든다.
31 남은 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나오고 생존자들이 시온산에서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만군의 주님의 열정이 이를 이루시리라.’
32 그러므로 주님께서 아시리아 임금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이 도성에 들어오지 못하고, 이곳으로 활을 쏘지도 못하리라.
방패를 앞세워 접근하지도 못하고, 공격 축대를 쌓지도 못하리라.
33 자기가 왔던 그 길로 되돌아가고 이 도성에는 들어오지 못하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34 나는 이 도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니
이는 나 자신 때문이며 나의 종 다윗 때문이다.’”
35 그날 밤 주님의 천사가 나아가 아시리아 진영에서 십팔만 오천 명을 쳤다.
36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은 그곳을 떠나 되돌아가서 니네베에 머물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7,6.12-1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6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
12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13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14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말씀의 씨앗 Semina Verbi: 연중 12주 화요일

좁은 문과 신뢰하는 마음



오늘 제1독서에서 히즈키야 임금은 아시리아 임금의 위협을 받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입니다. 산헤립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조롱하며 두려움을 심으려 합니다. “네가 믿는 너의 하느님이 너를 속이는 일이 없게 하여라”(19,10). 그러나 히즈키야는 성전으로 들어가 그 편지를 주님 앞에 펼쳐 놓습니다.


이 단순한 행동은 성경적 신뢰의 참 의미를 드러냅니다. 히브리어로 신뢰를 뜻하는 "바타흐"(בָּטַח)는 단순한 낙관주의가 아니라, 인간적인 안전이 무너질 때 온전히 하느님께 자신을 의탁하는 것을 뜻합니다. 오늘날 우리도 수많은 위협의 편지들 속에서 살아갑니다.


경제적 불안, 사회적 폭력, 버려짐의 문화, 영적 피로, 그리고 SNS 뒤에 숨겨진 외로움이 그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어느새 두려움에 포위된 상태에 익숙해집니다. 그러나 신앙인의 첫 번째 응답은 절망적인 계산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으로 하느님 앞에 서는 데 있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리스어 "스테노스"(στενός)는 좁고, 힘들고, 편안하지 않은 것을 뜻합니다. 주님께서는 쉬운 길이 아니라 참된 길을 제시하십니다. 오늘 세상은 넓은 문들을 제안합니다. 절제 없는 소비, 책임 없는 말, 자비 없는 판단, 삶을 변화시키지 않는 피상적인 신앙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다른 방향을 가리킵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 7,12). 이 황금률은 단순한 예의범절이 아니라 마음의 깊은 회개입니다. 말의 폭력과 인터넷 속 익명의 잔인함, 약자에 대한 무관심이 만연한 시대 안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는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을 때조차 타인의 존엄을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말씀하십니다.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7,6). “거룩한”(ἅγιος)이란 하느님께 속한 것을 뜻합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을 멸시하라고 가르치시는 것이 아니라 영적 식별을 가르치십니다.


성체성사, 인간의 양심, 용서, 진리, 가난한 이들의 고통과 같은 것들은 가볍게 다루어질 수 없는 현실입니다. 오늘날의 영적 질병 가운데 하나는 모든 것을 즉각적인 소비거리와 의견거리로 바꾸어 버리는 것입니다. 심지어 신앙조차 소비되는 콘텐츠가 되기 쉽습니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이를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버려진 성당들을 보며 눈물을 흘렸고, 사제들의 연약함을 알면서도 "주님의 지극히 거룩한 몸과 피"와 사제직에 깊은 공경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거룩한 것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히 받아들이는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히즈키야의 신뢰와 복음의 좁은 문은 결국 하나의 부르심으로 이어집니다. 권력에 기대는 삶을 버리고 하느님의 단순함으로 돌아가라는 초대입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바로 그 복음적 좁음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힘의 논리를 버리고 가난과 형제애와 평화를 받아들였습니다.


세상의 눈에는 그것이 약함이나 실패로 보였지만, 바로 그 안에 참된 자유가 있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도 내면의 폭력 없이 살아가고, 끊임없이 자신을 주장하지 않으며, 신앙을 이념으로 만들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을 필요로 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반응하기 전에 먼저 듣고, 요구하기 전에 먼저 섬기며, 인정받지 못할 때에도 충실히 머무르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넓은 길은 즉각적인 성공을 약속하지만, 좁은 길은 그리스도를 닮은 마음을 빚어 갑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질문은 우리 밖에 얼마나 많은 위협이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 마음의 중심에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가입니다. 히즈키야는 자신의 불안을 성전으로 가져갔지만, 우리는 종종 세상의 소음 속으로만 가져갑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침묵과 식별과 끈질긴 신뢰를 회복하라고 초대하십니다. 구체적으로 스스로 물어보아야 합니다. 나는 어떤 말로 다른 이들을 상처 입히고 있는가? 나는 참된 기도에 얼마나 마음의 자리를 내어 드리는가? 나는 편안함 때문에 어떤 넓은 문들을 선택하고 있는가? 나는 거룩한 것을 존중과 감사로 대하고 있는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일은 작은 일상적 선택에서 시작됩니다. 인내로 귀 기울이고, 절제 있게 살아가며, 멸시받는 이들의 존엄을 지켜 주고, 절망하기 전에 먼저 기도하며, 즉각적인 해결책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하느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바로 거기에서 참된 생명이 시작됩니다.


기경호프란치스코 o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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