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침묵이 품어 안은 신비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1독서: 이사 61,9-11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리라.>
복음: 루카 2,41-51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제목: 침묵이 품어 안은 신비
1. 사흘간의 실종과 어긋난 고백
봄바람이 불면 딱딱하게 굳어 있던 땅을 뚫고 푸른 새순이 돋아나듯, 하느님의 구원은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일상 속에서 시작되곤 합니다. “땅이 새순을 돋아나게 하고 정원이 싹을 솟아나게 하듯,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민족들 앞에 의로움과 찬미가 솟아나게 하시는”(이사 61,11) 분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에 나오는 열두 살 소년 예수님의 이야기가 바로 이 거룩한 싹이 돋아나는 순간입니다.
예수님은 부모님과 함께 예루살렘 축제에 갔다가 갑자기 자취를 감추셨습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아들을 잃어버린 마리아와 요셉은 사흘 동안 피를 말리는 슬픔과 고통 속에서 예루살렘 거리를 헤맸습니다. 사흘 만에 성전에서 학자들 사이에 앉아 있는 아들을 찾아내어 애타는 마음으로 다그치는 어머니에게, 소년 예수님은 우리의 인간적인 기대를 넘어선 뜻밖의 대답을 들려주십니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루카 2,49) 이 첫 번째 선포는 인간적인 혈연의 울타리를 넘어, 모든 민족들을 위해 의로움을 솟아나게 하실 메시아로서의 엄숙한 사명 선언이었습니다.
2. 몰이해의 밤과 신뢰의 무게
성전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소년 예수님의 지혜로운 답변에 감탄했지만, 가장 가까운 부모님에게는 이 대답이 오히려 거대한 장벽처럼 다가왔습니다. 성경은 "그들은 예수님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루카 2,50) 라고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언자 이사야가 선포한 하느님의 영원한 계약과 구원의 계획은, 인간의 짧은 생각과 머리로는 당장 다 헤아릴 수 없는 벅찬 신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사라졌던 '사흘'이라는 시간은, 먼 훗날 예수님이 무덤의 어둠 속에서 보내실 사흘과 그 뒤에 올 부활의 영광을 미리 보여주는 힌트였습니다. 하지만 나자렛의 부모님에게는 아직 다다르지 못한 미지의 밤, 그저 막막하고 두려운 시간이었을 뿐입니다.
우리 역시 살다 보면 하느님의 뜻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열심히 기도를 드려도 아무런 응답이 없는 가혹한 침묵처럼 느껴지거나, 내 생각대로 삶이 풀리지 않아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입혀주실 ‘구원의 옷’과 ‘의로움의 겉옷’(이사 61,10 참조)이 아직 눈에 보이지 않아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지혜가 멈추는 바로 그 자리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하느님을 향한 온전한 신뢰와 사랑입니다.
3. 마음의 성전에서 걷는 신앙의 순례
하지만 마리아 성모님은 당장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걸려 넘어지거나 아들의 사명을 불신하지 않으셨습니다. 복음은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루카 2,51) 라는 소박한 문장으로 성모님 마음의 진면목을 드러냅니다. 당장 명확하게 이해할 수 없는 아드님의 말씀과 깊은 침묵 앞에서도, 그것을 밀쳐내지 않고 마음이라는 기도 공간에 소중히 새겨 두신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알아듣지 못해 고독할지라도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니”(이사 61,10) 라던 예언자의 다짐은 성모님의 이 깊은 마음속에서 조용히 완성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의 본질입니다.
성모님은 서두르거나 조급해하지 않고, 훗날 골고타 언덕에서 그 말씀이 온전히 실현될 때까지 평생을 묵묵히 '신앙의 순례'로 이어가셨습니다. 우리도 삶의 뜻하지 않은 시련과 주님의 침묵 앞에서 조급해하거나 원망하기보다, 성모님의 모범을 따라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해야 하겠습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주님께서 내 삶의 정원에 반드시 구원의 싹을 틔워주실 것을 믿으며, 담담히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