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강론말씀(2):::::

[[강론]]연중 제11주일; 품어 안으시는 날개와 십자가의 신비 ; 최 빠코미오 수사

작성자*Anna|작성시간26.06.14|조회수19 목록 댓글 0

연중 11주일

1독서: 탈출 19,2-6ㄱ <너희는 나에게 사제들의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

2독서: 로마 5,6-11 <아드님의 죽음으로 화해하게 되었다면 그 아드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복음: 마태 9,36-10,8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을 보내셨다.>

 

제목: 품어 안으시는 날개와 십자가의 신비

 

1. 독수리 날개에 얹어진 삶

인간은 자기 힘만으로는 삶의 근본적인 한계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는 나약한 존재입니다. 메마르고 거친 광야를 걸어갈 때 마주하는 것은 결국 스스로의 무력함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에게 어떤 의무를 요구하시기 전에, 먼저 아무런 대가 없이 베풀어 주신 은총을 기억하게 하십니다. "너희는 내가 이집트인들에게 무엇을 하고 어떻게 너희를 독수리 날개에 태워 나에게 데려왔는지 보았다."(탈출 19,4)

성경에서 독수리는 가장 강한 힘과 든든한 보호를 상징합니다. 어미 독수리는 새끼를 둥지에서 떨어뜨려 강하게 훈련시키면서도, 새끼가 바닥에 부딪히기 직전 쏜살같이 내려가 자신의 깃털 위에 얹어 나릅니다. 이처럼 '독수리 날개'는 거친 세상에서 우리를 단련시키시면서도, 결정적인 위험 속에서는 자상하게 품어 주시는 하느님의 깊은 사랑을 보여줍니다. 고통스러운 노예 생활에서 벗어난 것은 백성의 능력이 아니라 전적인 은총의 결과였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계약을 지킬 때, 인간은 온 세상을 향해 하느님의 현존을 증거하는 거룩한 백성이 되는 사명을 받습니다.(탈출 19,5-6 참조) 신앙의 구원은 무거운 의무가 아니라, 과분한 사랑에 감사하며 자발적으로 응답하는 과정에서 완성됩니다.

 

2. 원수였던 이들을 향한 완전한 화해

광야에서 백성을 품어 안으신 독수리 날개의 신비는 훗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교회의 교부들은 이 신비를 묵상하며, 주님께서 십자가에 오르시어 두 팔을 넓게 벌리신 모습이 바로 새끼들을 덮어 주기 위해 날개를 펼친 독수리의 형상과 같다고 성찰했습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하느님을 배반하고 죄를 지었지만, 하느님께서는 심판 대신 더 큰 사랑으로 응답하십니다.

사도 바오로는 우리가 아직 나약한 죄인이었을 때, 심지어 하느님과 원수처럼 지내고 있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셨음을 선포합니다.(로마 5,6.8.10 참조) 세상의 상식으로는 의롭거나 착한 사람을 대신해 목숨을 바치는 일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아무런 자격이 없는 이들을 위해 당신의 보혈을 흘리심으로써 하느님 사랑의 확실한 증거가 되어 주셨습니다. 십자가는 단순히 죄의 벌을 면해 주는 자리가 아니라, 깨어진 하느님과의 관계를 본질적으로 회복하는 완전한 화해의 사건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벌리신 두 팔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펼치신 날개이며, 이 무조건적인 사랑은 인간으로 하여금 이웃과 화해하고 세상의 갈등 속에서 일치를 이루게 하는 새로운 부르심이 됩니다.

 

3. 애간장이 끊어지는 연민의 실천

이 화해의 신비는 군중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시선 속에서 더욱 따뜻한 육신을 입고 나타납니다. 주님께서는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는 사람들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십니다.(마태 9,36 참조) '가엾은 마음'을 뜻하는 성경의 본래 단어는 오장육부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을 뜻합니다. 단순히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을 넘어, 상대방의 아픔이 나의 창자를 뒤흔드는 실존적인 통증이 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듯 애간장이 녹는 마음으로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장벽을 허무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 하고 당부하십니다.

인간은 이미 하느님의 독수리 날개 위에 얹어져 인생의 수많은 광야를 건너왔고, 십자가 위에서 두 팔을 펼치신 주님의 피로 무상한 화해를 선물 받은 존재입니다. 이제는 그 은총의 기억을 지니고 삶의 자리로 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내 곁에서 삶의 무게에 시달리고 기가 꺾인 이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나의 아픔으로 삼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장벽을 허무는 화해의 일꾼이 되어, 주님께 거저 받은 자비와 희망을 세상에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참된 제자의 길을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최 빠코미오 수사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