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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말씀(2):::::

[[강론]]6.18.연중 제11주간 목요일; 주님의 기도 “기도도 보고 배웁니다” (이 프란치스코 수사)

작성자*Anna|작성시간26.06.18|조회수22 목록 댓글 0

2026.6.18.연중 제11주간 목요일                                                                             

집회48,1-14 마태6,7-15

 

주님의 기도

“기도도 보고 배웁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삽니다. 기도해서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인간, 인간의 정의입니다. 어디나 기도하라 눈들면 하늘이고, 하늘보고 기도하고 땅에서 일하라 직립인간입니다. 인간의 영성도 인간의 고귀함도 인간다운 품위도 기도에서 나옵니다. 인간이 물음이라면 하느님은 답입니다. 바로 인간과 하느님의 소통이 기도입니다. 

 

하느님과 소통의 기도가 생명과 사랑으로 충만한 하느님을 닮은 참사람으로 만들어줍니다. 물음인 사람만 있고 답인 하느님이 없으면 인간은 영원한 미궁에서, 무지와 허무, 무의미의 어둠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 하늘 향해 쭉쭉 뻗은 나무들이 참 좋은 기도의 모범이자 스승이 됩니다. 수차례 나눴던 수도원 <하늘 길> 산책 때 마다 즐겨 바치는 기도입니다.

 

“하늘 님 그리울 때, 보고 싶을 때

 하늘 길

 하늘 향해 쭉쭉 뻗은 

 하늘의 사신

 메타세콰이어 가로수들 

 사열 받으며

 하늘보고 하늘기운 숨쉬며

 하늘품위 되찾고 하늘의 왕자 되어

 가슴 펴고 힘차게

 하늘 길, 하늘 님, 예수님 따라

 나는 듯 걷는다

 이 기쁨, 이 행복에 산다”<2026.3. 21>

 

칼릴 지브란은 예언자에서 "나무는 땅이 하늘로 쓰는 한편의 시"라 말합니다. 하늘 향한 직립의 나무들 역시 기도하는 사람을 닮았습니다. 오래 전 수도원 성전 창문 밖 바람에 눈부시게 떨리는 나뭇잎들 보며 이맘때쯤 쓴, <기도는 저렇게 하는 거다>란 시도 생각납니다.

 

“기도는 

 저렇게 하는 거다

 하늘 안, 하늘 향한 눈부신 떨림

 나뭇잎들처럼

 성령 충만, 샘솟는 기쁨

 초록빛 온 몸, 온 마음으로

 하느님 사랑, 하느님 찬미, 하느님 감사

 웬만한 병, 다 낫겠다

 기도는 

 저렇게 하는 거다”<2010.6. >

 

저절로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도 부지런히 배우고 공부해야합니다. 사랑처럼 아무리 배우고 공부해도 <초보자>로 머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 날마다 배우고 공부해야할 기도입니다. 바로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이 그 모범입니다. <하느님의 집>인 수도원에서 하느님만을 찾는 <하느님의 사람>인 수도자들에게 <하느님의 일>인 기도는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평생, 날마다 끊임없이, 한결같이 시편 공동전례기도를 성전에서 함께 바칩니다. 베네딕도 규칙서 73장중 1장-7장 까지는 영성의 기초에 대하여, 그리고 8장-20장까지는 공동전례기도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옛 현자 다산의 삶의 수칙 <부지런함>은 기도수행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삶의 격을 높이는 것은 지위나 신분이 아니라 ‘부지런함’이다.”

“어찌하면 뭉툭한 것을 뚫을 수 있는지를 묻자 부지런하라 하셨다.

 어찌하면 막힌 것을 트이게 하는지 묻자 부지런하라 하셨다.

 어찌하며 거친 것을 연마할 수 있는지 묻자 부지런하라 하셨다.”

 

저 역시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늦은 나이에 신학을 공부하던 학창시절, 두 어른(정하권 몬시뇰, 김승혜 수녀)의 “이수철 수사님은 <대단한 노력가>시네요.” 이구동성의 격려 말씀을 잊지 못합니다. 베네딕도 성인의 기도에 대한 가르침도 우리에게는 참 좋은 가르침이자 깨우침이 됩니다.

 

“만물의 주님이신 하느님께는 온갖 겸손과 순결한 경건심으로 간청해야 할 것이다. 많은 말로써가 아니라, 마음의 순결함과 통회의 눈물로써 우리 간청이 들어 허락되는 것임을 알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가 하느님의 은총에서 영감을 받은 경우가 아니라면, 기도는 짧고 순수해야 한다.”<성규20,2-4>

 

기도뿐 아니라 글도 시도 강론도 행동도 짧고 순수하면 좋습니다. 오늘 복음중 주님의 가르침도 성인과 일치합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끊임없이, 한결같이 기도하는 까닭은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기도하면서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고 마침내 주님의 뜻과 하나 되어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필요한 것 하나 하느님만 남을 것입니다. 하느님만으로 만족하고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기도의 대가, 기도의 달인 예수님께 기도를 배우듯, 그 옛날 엘리사도 기도의 대가이자 달인인 엘리야 스승 예언자로부터 기도뿐 아니라 모든 것을 보고 배우며 전수받았음을 알게 됩니다.

 

“엘리야가 소용돌이에 휩싸일 때, 엘리사는 엘리야의 영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엘리사는 일생 동안 어떤 통치자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아무도 그를 굴복시키지 못했다. 그에게는 어떤 일도 어렵지 않았으며, 잠든 후에도 그의 주검은 예언을 하였다.”

 

과연 그 스승 엘리야에 그 제자 엘리사였음을 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말씀하시면서 당대 제자들을 물론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우리에게 “주님의 기도”를 통해 당신의 기도 노하우를 공개하십니다. 

 

<주님의 기도>야말로 만고불변의 진리를 담고 있는 성서의 요약 같은 예수님의 삶과 영성이 그대로 녹아있는, 일체의 거품이나 허영, 환상이 배제된 오늘 지금 여기서 살아내야 할 단순 소박한 본질적 깊이의 투명한 기도입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닮아 참사람의 참나의 실현에 이르게 하는 주님의 기도입니다. 비단 그리스도인뿐 아니라 사람이 되기 위한 모든 인류를 위한 보편적 기도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결코 주님께 맡겨 드리는 무책임한 일방적 기도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파트너로서 우리의 자발적 기쁨의 협조와 응답을 필요로 합니다. 우선 하느님 아버지 중심의 삶이 강조됩니다. 하느님은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며 우리는 모두 아버지의 자녀들이 됩니다. 아버지의 이름, 아버지의 나라, 아버지의 뜻이 잘 드러나고 이뤄지도록 우리 모두 하느님 중심의 삶에 온힘을 다해야함을 배웁니다.

 

이어지는 일상에서 겪게 되는 본질적 청원 넷입니다. 오늘 일용할 양식, 잘못의 용서와 용서받음, 유혹에 빠지지 않음, 악에서의 구원을 위해 청원과 더불어 우리의 최선을 다한 노력의 협조와 응답도 절대적임을 배웁니다. 평생 하루하루 날마다 <오늘> 새롭게 바치고 새롭게 시작하여 살아내야 할, 선물 같은 하루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의 기도 후에 주님께서 다시 강조하시는 용서입니다. 아버지께 용서를 받으려면 먼저 타인의 허물을 먼저 용서하라하십니다. 타인을 용서할 때 비로소 아버지께 용서를 받습니다. 용서하지 못하면 우선 내가 다치고 자유롭지 못합니다. 내가 살고 자유롭기 위해서도 용서는 필수요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이래서 미사 중 주님의 기도를 바치고 일용할 양식인 성체를 모시는 우리들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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