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1주간 목요일
1독서: 집회 48,1-14 <엘리야가 소용돌이에 휩싸일 때 엘리사는 엘리야의 영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복음: 마태 6,7-15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제목: 침묵 속에 타오르는 횃불
1. 빈말을 멈춘 자리에 남는 것
예언자 엘리야는 불의 사람입니다. 오늘 제1독서인 집회서는 그를 두고 "엘리야 예언자가 불처럼 일어섰는데 그의 말은 횃불처럼 타올랐다."(집회 48,1)라고 전합니다. 하늘을 닫고 세 번이나 불을 내려보낸 그의 열정은 이스라엘의 신앙을 깨우는 강력한 무기였습니다. 그러나 이 뜨거운 예언자 역시 하느님을 깊이 만난 곳은 크고 강한 바람이나 지진, 불 속이 아니라, 그 모든 폭풍이 지나간 뒤에 들려온 '부드러운 조용한 소리' 속이었습니다. 참된 신앙의 힘은 소란스러운 외침이 아니라 고요한 내면의 울림에서 나옵니다.
이 영적 전통을 이어받은 고대 수도승들은 진정한 기도의 힘이 화려한 말재주나 많은 말에 있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요한 카시아노와 성 베네딕도 같은 영성가들은 기도할 때 말을 많이 하는 것을 엄격히 금했습니다. 그들은 오늘 복음에서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마태 6,7) 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철저히 삶으로 살아냈습니다. 횃불처럼 타오르는 신앙은 입술의 수다스러움이 아니라, 고요함 속에서 드리는 짧고 순수한 기도로 증명되기 때문입니다.
2. 가난한 이들을 위한 거룩한 생명줄
중세 수도원에서는 시편을 중심으로 하루의 시간을 하느님께 바치는 성무일도가 일과의 중심이었습니다. 하지만 글을 읽지 못하는 평수사들이나 고단한 노동으로 성가대 기도에 참석하지 못하는 이들은 그 방대한 시편을 다 바칠 수 없었습니다. 교회가 그 가난한 영혼들을 위해 성무일도를 대신하여 바치도록 한 공식적인 기도가 바로 '주님의 기도'였습니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마태 6,9) 하시며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이 기도는, 가장 단순하지만 복음의 모든 본질을 담고 있는 완전한 요약입니다. 글을 몰라도, 책이 없어도, 오직 하느님을 향한 자녀다운 신뢰만 있다면 누구나 하늘 아버지를 부를 수 있었습니다. 화려한 지식은 없었으나 매일 주님의 기도를 소박하게 반복했던 이들의 삶은, 죽어서도 놀라운 업적을 남긴 엘리사 예언자처럼 성령으로 충만한 삶이 되었습니다.
3. 매일 아침 깨어나는 자비의 처방전
성 베네딕도는 이 주님의 기도를 수도 공동체의 상처를 치유하는 구체적인 처방전으로 삼았습니다. 공동생활을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다툼과 오해, 마음의 가책이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베네딕도 성인은 이 상처들이 마음에 굳은살을 만들지 않도록, 매일 아침기도와 저녁기도 끝에 공동체의 책임자인 아빠스가 모든 이가 듣는 가운데 주님의 기도를 끝까지 소리 내어 낭송하도록 규정했습니다.
수도승들은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마태 6,12)라는 구절을 귀로 들으며, 방금 전까지 미워했던 형제를 향해 마음의 빗장을 열어야 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내가 형제를 용서하는 그 좁은 문을 통해 우리에게 흘러들어옵니다. 복음은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마태 6,14)라며 엄중하고도 명확한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해 줍니다.
말만 앞서는 이방인들의 기도는 허공을 맴돌 뿐이지만, 마음의 소음을 가라앉힌 고요한 기도는 하느님 아버지께 닿습니다. 화려한 미사여구보다 담백한 마음으로 주님의 기도를 온전히 바쳐야 하겠습니다. 매일 마주하는 이웃의 나약함을 마음 깊이 용서함으로써, 우리 삶에 하늘 아버지의 다스림이 온전히 이루어지도록 해야 하겠습니다.